매일신문

[자연음식 이야기] 묵 (1)

옛날 겨울철 구황식…칡 뿌리'도토리 주로 쓰여

묵은 곡식 또는 나무열매나 뿌리 등을 맷돌이나 분쇄기에 갈아 가루를 물에 가라앉혀 얻은 앙금을 물과 함께 죽 쑤듯이 되게 쑤어 식혀서 굳힌 것으로 우리나라 전통음식이다.

묵의 원료가 되는 앙금, 즉 녹말을 얻을 수 있는 것들로는 메밀, 녹두, 옥수수, 도토리, 밤, 칡 등이 있으며 그 재료에 따라 메밀묵, 녹두묵(청포묵), 도토리묵, 올챙이묵, 밤묵, 칡묵이라 불린다. 묵의 용도는 매우 다양하며 묵 자체가 주식으로 될 수도 있고 나물, 볶음, 장아찌 등의 반찬으로도 훌륭한 음식이다. 그 외 별미식, 간식, 술안주, 시절음식, 향토식, 구황식 등 그 쓰임새가 다양하며 조리법 또한 여러 가지이다.

묵의 겔상(gel type)과 부드러우면서 쫄깃한 질감은 어느 음식에서도 쉽게 찾아볼 수 없다.

묵의 제조 원리도 비교적 간단하여 특별한 기술 없이도 조리 가능하기 때문에 대량조리가 가능하고 나누어 먹기에 알맞아 공동의식의 풍속을 지닌 우리 정서에 잘 맞는 음식이기도 하다.

묵은 앙금을 만들어 보관해 두면 언제든지 요긴하게 쓸 수 있어 먹을 것이 귀하던 시절. 구휼음식이기도 했다. 특히 겨울을 나는 구황식으로 칡 뿌리, 도토리가 많이 이용되었는데 구황식으로서의 도토리는 많은 애환이 서려 있기도 하였다.

신라 때부터 조선조 숙종 때까지 옛 시문을 집대성한 '동문선'에 윤여형이 지은 '상률가'(도톨밤의 노래)에 도토리에 얽힌 애환이 사무치게 깃들어 있는데 소개해 볼까 한다.

상률가-도톨밤의 노래

도톨밤 도톨밤 밤 아니거늘,

누가 도톨밤이라 이름 지었는고

맛은 씀바귀보다 쓰며, 색은 숯보다 검으나

요기하는 덴 반드시 황정(黃精)보다 지지 않나니,

촌집 늙은이 마른 밥 싸 가지고,

새벽에 수탉 소리 듣고 도톨밤 주우러 가네.

저 만 길 벼랑에 올라,

칡넝쿨 헤치며 매일 원숭이와 경쟁한다.

온종일 주워도 광주리에 차지 않는데,

두 다리는 동여 놓은 듯 구린 창자 쪼르륵,

날 차(寒)고 해 저물어 빈 골짜기에 자네,

솔가지 지펴서 시내 나물 삶는다.

밤이 깊자 온몸이 서리에 덮이고 이슬에 젖어,

남자 여자 앓는 소리 너무나 구슬퍼라.

내 촌집에 들러 늙은 농부에게 물으니.

늙은 농부 자세히 나보고 얘기한다.

요사이 세력 있는 사람들 백성의 토지를 뺏어

산이며 내로써 한계 지어 공문서(公文書) 만들었소,

혹은 토지에 주인이 많아서

도조(賭租)를 받은 뒤 또 받아 가기 쉴 새 없소.

혹은 수한(水旱)을 당하여 흉작일 때에는

해묵은 타작 마당엔 물만 엉성하다.

살을 긁고 뼈를 쳐도 아무것도 없으니,

국가의 조세는 어떻게 낼꼬.

몇 천 명 장정은 흩어져 나가고,

노약(老弱)만 남아서 거꾸로 달린 종(鐘)처럼 빈 집을 지키누나.

차마 몸을 시궁창에 박고 죽을 수 없어,

마음을 비우고 산에 올라 도토리며 밤이며 줍는다고,

그 말이 처량하여 간략해도 자세해

듣고 나니 가슴이 미어질 것 같아라.

그때 보잖았나, 고관집(高官) 하루 먹는 것이 만전(萬錢)어치

맛있는 음식이 별처럼 벌여져 있고 다섯 솥이 널려 있지

하인도 술 취하여 비단 요에 토하고

말은 배불러 금마판에서 소리치네,

그들이 어찌 알기나 하랴 그 좋은 음식들이,

모두 다 촌 늙은이의 눈 밑의 피(血)인 줄을….

신아가 참자연음식연구소 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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