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신남희의 즐거운 책 읽기] 시턴 동물이야기/ 어니스트 시턴/사계절

야생동물의 눈으로 바라보는 세상

시턴 동물기를 처음 읽었을 때, 동물생태에 대한 치밀한 관찰, 수려한 문장, 아름다운 삽화에 매혹되었다. 여러 판본이 있지만, 사계절에서 펴낸 '시턴 동물이야기'는 청소년 이상이 읽을 수 있도록 공들여 만든 책이다. 이 책에는 고귀하고 당당하며 아름답기까지 한 동물들의 일생과 그들에게 잊지 못할 상처를 주는 인간들의 이야기가 펼쳐진다.

'코요테의 정신적 지주 티토' 이야기는 이렇게 시작된다.

"빗방울 하나가 벼락을 비끼게 할 수도, 한 오라기 머리카락이 제국을 멸망시킬 수도 있다. 일찍이 거미집 하나가 스코틀랜드의 역사를 바꿔 놓았듯이. 그리고 어떤 작은 조약돌 하나가 없었다면, 티토의 이 이야기도 없었을지 모른다."

아기 코요테 티토는 사냥꾼에게 가족이 몰살당한 뒤, 아이들의 장난감으로 선사되기 위해 우연히 살아남는다. 티토는 코요테를 잡기 위해 사람들이 놓는 독약, 덫, 사냥개의 습성 등을 익힌 다음 탈출에 성공하여 야생으로 돌아가서 코요테 무리를 이끌게 된다. 이 이야기에서 우리는 사나운 야생동물이 아닌, 영리하고 사랑스러울 뿐 아니라 자연의 무한한 신비를 간직하고 있는 존재로서 코요테를 보게 된다.

"숲의 창조자이자 만물의 어머니인 대자연은 온갖 동물을 만들고 그중에서 숲의 정령을 뽑기로 했다. …검은 가면을 쓴 밤의 방랑자, 아메리카너구리가 큰키나무 자라는 숲 속에서 부름에 답을 했다. 어머니 대자연은 아메리카너구리에게 숲과 나무의 요정 드리아스의 재능을 안겨 주었다. 떡갈나무 구멍 속의 천진한 거주자인 아메리카너구리는 논밭에서 멀리 떨어진 물가 숲의 정령이 되었다."

죽은 커다란 단풍나무의 텅 빈 구멍을 보금자리로 삼고 살아가는 아메리카너구리 가족이 있다. 호기심 많은 개구쟁이인 아메리카너구리 웨이앗차는 어머니의 경고를 무시하고 혼자서 냇물 위쪽으로 올라가다가 사람에게 잡히고 만다. 웨이앗차는 사람들에게 애완동물처럼 사육되다가 탈출하여 다시는 사람들 주변에 얼씬하지 않고 자신들의 세계에서 행복한 삶을 살아간다. 티토와 웨이앗차는 시튼 동물기에서 드물게 행복한 존재들이다.

어미 곰이 사냥꾼에게 살해된 뒤 홀로 남은 새끼 곰 왑은 수많은 적에 시달리면서 성질이 점점 더 거칠어진다. 왑은 자신의 숲을 차지한 흑곰, 악의에 찬 붉은 스라소니, 자신을 죽이려는 사람을 미워하게 된다. 회색곰 왑과 고독한 늑대왕 로보, 연락 비둘기 아녹스 등은 잊을 수 없는 사랑스러움과 애틋함, 비장함으로 읽는 이들의 가슴을 아릿하게 한다.

이 이야기들 속에서 인간은 너무나 잔혹한 존재들이다. 독약과 덫으로 동물들을 죽이고, 동물 가족의 평화로운 삶을 파괴한다. 대자연 속에서 평화롭게 살아가던 동물들은 자신들의 영역을 무자비하게 파괴하며 침입해 들어오는 인간들의 공격에 속수무책이다. 늑대나 코요테는 사람들에게는 가축을 물어가고 죽이는 약탈자이기에 인간과 이들 간의 치열한 싸움은 불가피하기도 하다. 하지만 그 속에서도 영리한 녀석들은 살아남아 종족을 보존한다.

이 책의 저자인 어니스트 시턴은 세계적인 동물학자이자 에세이스트이며, 박물학자이자 화가이다. 그는 어린 시절 캐나다로 이주하여 혹독한 추위를 이겨내며 수많은 농장에서 일을 했고, 거친 동물들로부터 자신을 보호하는 법을 터득해야 했다. 이 시기에 자연의 아름다움에 눈을 떠 자연에 대한 동경과 호기심을 평생 갖게 된다. '시턴 동물기'로 알려진 일련의 동물 소설들은 동물에 대한 정확한 지식과 관찰을 기초로 한 사실적인 것으로 그 후의 동물 문학에 커다란 영향을 주었다. 시턴의 대표작으로는 '늑대왕 로보'를 비롯해 '아름답고 슬픈 야생동물 이야기' '작은 인디언의 숲'이 있다. 자서전으로 '야생의 순례자 시튼'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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