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大幹 숨을 고르다-황악] <40> 잊힌 소왕국 감문국(甘文國)(1)

황악산 아래 첫 왕국, 옛 영화 흔적 연못에

김천 개령면 동부리 마을 입구에 있는 동부연당. 감문국의 궁궐에 있던 연못으로, 수백 년 된 왕버들이 있어 주민들의 쉼터로 인기를 끌고 있다. 태풍
김천 개령면 동부리 마을 입구에 있는 동부연당. 감문국의 궁궐에 있던 연못으로, 수백 년 된 왕버들이 있어 주민들의 쉼터로 인기를 끌고 있다. 태풍 '셀마' 때 감천제방이 유실되면서 토사가 밀려들어 연못의 규모가 줄어들었다고 한다.
연못가 국도변에 서 있는 수백 년 된 왕버들은 주민들이 즐겨 찾는 쉼터이다.
연못가 국도변에 서 있는 수백 년 된 왕버들은 주민들이 즐겨 찾는 쉼터이다.
동부리 주택가에 있는 감문국 궁궐의 초석
동부리 주택가에 있는 감문국 궁궐의 초석

"둥 둥 둥~!" "대왕마마 큰일났사옵니다. 사로국 병사들이 쳐들어왔습니다."

이른 새벽 북소리와 함께 들려온 다급한 목소리에 감문국 금효왕은 잠에서 깨어났다. 문밖은 어지러운 발걸음 소리와 병졸들의 고함이 뒤섞여 소란스럽다.

'드디어 올 것이 왔구나.' 금효왕은 신하의 절박한 보고를 듣는 순간 결국 우려하던 '전쟁이 터졌다'는 생각에 눈앞이 캄캄했다. 경산의 압독국과 의성의 소문국이 차례로 사로국에 점령됐다는 말을 전해 들은 것이 불과 얼마 전이었다. 만약을 대비해 군사들을 훈련시키고 나름 준비를 해왔지만 사로국의 대군이 쳐들어올 경우 싸움에서의 승리는 장담할 수 없는 것이 현실이었다. 잘 훈련된 사로국 군사와 싸울 경우 절대적으로 전세가 불리하기 때문이다. 왕이 황급하게 몸을 일으켜 밖으로 나오니 벌써 궁궐 안은 아비규환이었다. 우왕좌왕하는 신하와 백성들이 자신만을 쳐다보고 있는 듯했다.

이때 한 장수가 나서며 "어서 산성으로 몸을 피하소서"라며 채근했다. 평지인 왕궁에서 적을 맞이하다가는 위험하기 때문에 산성으로 피해 장기전에 대비하자는 것이었다. 신하들은 이웃한 변한의 여러 소국들에 도움을 청하고 시간을 벌어가며 싸움을 벌이자고 말했다.

왕은 떠밀리듯 병사들에 이끌려 인근 감문산성으로 황급히 몸을 피했다. 왕이 도망치듯 지나가는 모습을 본 백성 중에 흐느껴 우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당당하게 맞서 싸우자며 길을 막고 대드는 사람들도 있었다. 사로국 병사가 지척에 다가온 듯 북소리가 요란하고 병기 부딪치는 소리가 천지를 진동했다. 머뭇거리던 왕의 일행이 바삐 발길을 옮기자 그동안 왕을 모셨던 시녀들은 통곡했다.

왕은 왕궁에서 10여 리 떨어진 감문산성으로 몸을 피했다. 얼마 되지 않아 파죽지세로 밀어닥친 사로국 병사들에 의해 왕궁은 함락됐다. 왕이 궁궐을 떠나자 군사들은 사기가 떨어져 제대로 싸움 한 번 하지 못하고 왕궁은 적의 수중에 떨어졌다. 사로국 병사들은 전리품을 챙기기 위해 집집마다 들이닥쳐 약탈을 하고 부녀자들을 희롱했다. 적국 병사의 손길을 피해 달아나던 아낙네들은 치욕을 면하려고 왕궁 앞 연못에 몸을 던졌다. 감천 변에 있던 평화로운 왕궁이 사로국 왕족인 대장군 석우로의 병사 수천 명에 의해 철저하게 유린됐다. 금효왕이 피해 있던 산성도 20여 일을 버티지 못하고 마침내 정복당했다. 이때가 231년이다. 황악산 아래 처음 세워진 나라인 감문국은 이렇게 역사 속으로 사라졌다.

◆궁궐 터에는 연못만 남아 있어

김천의 젖줄인 감천(甘川)과 나란히 난 국도 59호선을 따라 선산 쪽으로 가다가 개령면 동부리 이정표를 만나면 왼쪽으로 난 길로 접어든다. 들판은 따뜻한 가을 햇살을 받아 황금 물결로 출렁인다. 마을로 통하는 길가에 수백 년 된 아름드리 왕버들이 그림자를 드리우고 서 있다. 그 가운데 수초와 나무들로 잘 어우러져 아름답게 꾸며진 연못이 있다. 유동산(柳東山) 아래에 자리한 동부연당(東部蓮塘)이다. 이 연못은 감문국 궁궐에 있었던 연못이라고 전한다.

축구장 반 크기의 연못에는 연(蓮)이 군데군데 소담스럽게 자라고 있다. 주변에는 정자가 있고 운동기구까지 갖춰져 있어 주민들의 휴식공간으로 활용되고 있다.

국도변에 설치된 나무의자에는 이 마을 어르신들이 모여 앉아 이야기꽃을 피우고 있었다. 버드나무 그늘이 지고 동네가 한눈에 보이는 연못 주변은 어르신들에겐 더없이 좋은 쉼터가 되고 있었다. 이 마을 권희집(82) 옹은 "연못이 옛날 궁궐 앞에 있던 연못이라고 하지만 잘 알지 못한다"며 "원래 연못 크기가 마을 길 앞까지 닿아 있어 지금의 10배가량 됐다. 그런데 1987년 태풍 '셀마' 때 폭우로 감천 제방이 터지면서 토사가 밀려들어 지금처럼 줄어들었다"고 말했다. 그는 "정자 옆에 있는 왕버들은 못 안의 섬에 심겨져 있던 것이고 이곳 연못에 자라는 연꽃이 아름다워 좋은 구경거리를 제공했는데 연못이 메워지면서 연꽃이 거의 사라졌다"고 아쉬움을 나타냈다.

연못 옆에 세워진 안내문에는 "감문국은 멸망하기 전에 감천의 풍부한 물과 하천변의 비옥한 경지를 기반으로 가야'사벌국 등과 교류하며 독자적인 세력을 구축하였다"고 전한다.

◆감문국 존재는 한'중국 사서 등에 기록 남아

김천에 처음 세워진 감문국은 어떤 나라일까? 감문국은 삼한시대 대부분의 소국이 그러하듯 1700년 세월의 풍상 속에서 대부분의 유적이 훼손되고 멸실되어 흔적을 찾기 어렵다. 하지만 감문국은 많지 않은 사료(史料)나 전설'문학작품 등을 살펴볼 때 기원전 1, 2세기에 성립해 기원 후 231년에 멸망한 것으로 보인다.

우리나라 사서(史書)에는 김부식 등이 편찬한 삼국사기에서 감문국이 가장 먼저 등장한다. 신라 조분이사금(助賁尼師今) 2년 7월조(條)에 '신라가 이찬 석우로(昔于老)를 대장으로 삼아 감문국을 토멸하고 그곳을 감문군으로 삼았다'는 기록이 있다. 또 삼국사절요 제3권 신해(辛亥)년 조분왕조(助賁王條)에도 '가을 7월 신라에서 이찬 석우로를 대장으로 삼아 감문국을 쳐서 깨뜨리고 그 땅은 군(郡)으로 삼았다. 우로(于老)는 내해왕(柰解王)의 아들이었다 '고 유사한 내용을 적고 있다.

그러나 중국 문헌에는 이보다 훨씬 앞서 감문국에 대한 기록이 전한다.

중국의 사서인 '후한서동이전'에 '마한에는 54국, 진한에는 12국, 변한에는 12국, 모두 78국이 있었다'고 기록하고 있다. 3세기 후반에 저술된 '삼국지위지동이전'에 따르면 '3세기 중엽 영남지방에는 진한계 12국과 변한계 12국이 있었다'고 적고 있다. 사료에는 김천지역 주조마국(走漕馬國)과 감로국(甘路國)을 변한에 속한 소국으로 분류하고 있다. 이 중 감로국의 위치에 대한 논란이 있었는데, 정약용'이병도 등은 감로국 위치가 김천 개령지방 일대이며 삼국사기에 등장하는 감문국과 감로국은 같은 것이라고 봤다.

◆김천지역 토착세력이 처음 세운 왕국

김천문화원 송기동 사무국장은 "기원전 1세기경 위만조선이 한나라에 멸망하면서 북방의 선진문물을 가졌던 위만조선의 유민들이 한반도 남쪽으로 내려와 세련된 정치결사체인 초기국가 형태의 소국을 형성하기 시작했다. 유민들이 한반도 남부지방에 내려오면서 이곳에 있던 토착민들에게 북방의 선진문화를 전해주고 이후 읍락국가를 형성시켰다고 불 수 있다"는 설명이다.

김천지역의 경우 구성면 송죽리 감천변에서 신석기'청동기 시대 주거지와 유물이 대량 출토됐고 같은 감천 유역인 개령'감문 일대에서 동시대의 대표적인 묘제(墓制)인 청동기시대 지석묘가 집단으로 발견됐다. 이는 감문국을 세운 주요 세력이 감천 유역에 흩어져 살던 토착민들로 청동기, 철기시대를 거치면서 상대적으로 넓은 생산기반을 가진 감천 중'하류 개령'감문 일대로 이동해 주변 읍락을 통합 흡수하면서 형성한 대표적인 읍락국가라는 것이다.

흥미로운 것은 삼국지위지동이전에는 진한, 변한의 규모에 대해 '큰 나라는 4천~5천, 작은 나라는 600~700가구이며 모두 4만~5만호'라는 기록이 있다. 구전에 따르면 '동사'(東史)라는 책에 '아포(牙浦'지금의 아포면 일대)가 반란을 일으키자 30인의 대군(?)으로 밤에 감천을 건너려 했으나 물이 불어나 되돌아왔다'는 기록이 남아 있는데, 이를 근거로 볼 때 감문국의 당시 규모를 짐작할 수 있다.

감문국은 600~700가구에 달하는 백성이 살고 있었으며 군사 30인을 대군으로 표현할 정도의 국력을 보유한 소왕국이었을 것으로 추정된다. 현재 개령군 동부리 양천리 서부리의 궁궐터와 초석, 감문면 송북리 오성리 등에 산재한 유적과 지명 등을 통해 당시 감문국의 면모를 미루어 짐작할 뿐이다.

글'박용우기자 ywpark@msnet.co.kr 사진'서하복작가 texcafe@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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