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상품권 '깡'…유통질서 '꽝'

추석 후 수백억 쏟아져, 음성적 현금교환 기승

추석 명절 전후 백화점 등 대형소매점 상품권이 대량 유통되면서 사설 상품권 깡 시장이 성행하고 있다. 사진은 대구 수성구의 한 기업형 상품권 환전 업소. 성일권기자 sungig@msnet.co.kr
추석 명절 전후 백화점 등 대형소매점 상품권이 대량 유통되면서 사설 상품권 깡 시장이 성행하고 있다. 사진은 대구 수성구의 한 기업형 상품권 환전 업소. 성일권기자 sungig@msnet.co.kr

"저렴하게 살 수 있어 좋긴 하지만, 대형마트 할인행사 가격보다 동네가게 물건이 더 쌀 수 있는지 납득이 가지 않아요."

직장인 김모(38) 씨는 추석 후 동네 슈퍼에 들렀다 눈이 휘둥그레졌다. 라면, 커피, 과자류 가격이 이전 판매 가격의 80~90% 수준에 팔리고 있었다. 그는 유통 기한과 상품의 질을 살펴봤지만 이상이 없는 물건이었다.

◆싼 물품 등장 이유는

동네 슈퍼에서 일부 품목의 값이 대형마트보다 싼 것은 명절 후에 성행하는 각종'깡'탓이다. 깡은 일정한 선 수수료를 떼고 상품권이나 신용카드 등을 현금으로 바꾸는 것이다.

평소 가격보다 저렴한 상품이 시장에 나오는 것은 ▷상품권의 대량 할인 유통 ▷덤핑물량에 의한 저가상품 공급 ▷사채업과 연계한 카드 깡 때문이다.

명절 후 상당수 소비자들은 명절 선물로 받은 상품권을 쓸까, 말까를 고민하다 현금을 받고 상품권을 되파는 경우가 많다. 또 할당된 상품권을 구매한 직원과 업체도 상품권 업자들에게 일정 수수료(7~10%)를 떼고 상품권을 팔면 상품권을 산 업자는 대형마트를 돌며 '차떼기 물품 깡'을 한다.

이때 대상 상품은 환금성이 좋은 커피, 음료, 라면, 쌀, 술 등이다. 싸게 구입한 상품권을 이용해 물건을 사고 마진을 조금만 남겨 다시 슈퍼에 넘기는 방식이다. 이 때문에 시중에 평소보다 싼 물건이 유통된다.

깡은 일부 대형소매점에서 매출을 올리는 편법으로 동원되기도 한다. 한 대형마트 관계자는 "대량 구매가 가능한 대형소매점 직원들은 물량을 대는 납품업자들에게 평소보다 더 싼 가격에 제품을 납품받고 이를 다시 깡 업자들에게 차떼기로 넘겨 매출을 보전하는 관행이 있다"고 귀띔했다.

깡이 불법 사금융과 연계된 거래로 이어지는 경우도 있다. 각종 카드값 연체로 더 이상 신용카드 발급이 어렵고 대출도 받을 수 없는 이들이 전문 사채업자에게 10%의 선이자를 떼고 카드와 신분증을 넘기면 깡 업자들은 이 카드로 물건을 사고 일정 부분 마진을 붙여 시장에 내놓는다.

◆기업형 깡 업소도 생겨나

유통업계에 따르면 대구경북 지역에서만 추석이나 설 명절 때 풀리는 상품권 규모는 500억~700억원에 이르고 대량으로 물품을 사들이는 차떼기 깡까지 합치면 규모는 훨씬 더 커진다.

상품권 깡 시장이 커지면서 이를 전문으로 하는 기업형 업소도 생겨나고 있다. 4일 오후 대구 수성구 대형마트 앞 상가 건물 1층. 문을 열고 들어서자 유니폼을 입은 여직원 3명이 인사했다.

은행 VIP룸에 온 듯 "고객님 무엇을 도와드릴까요"하며 친절하게 맞았다.

"요즘은 명절 뒤라 상품권 매물이 많습니다. 예약을 하시면 억 단위로도 구입이 가능합니다."

한 여직원이 건넨 안내문에는 백화점과 제화 상품권 시세가 빼곡히 적혀 있었다.

업계 관계자는 "수억원 어치의 상품권을 한 번에 살 수도, 되팔 수도 있을 정도로 엄청난 규모의 상품권 업소가 영업을 하고 언론 홍보를 통해 손님을 모으고 있는 곳도 있다"고 밝혔다.

하지만 기업형 깡 업소는 유통 질서를 교란시키는 주범이기도 하다. 이들은 상품권으로 대형마트에서 물건을 대량 구매한 뒤 소매점 등에 차떼기로 넘기는 경우가 다반사이기 때문이다.

유통업체 관계자들은 "유통업체별로 상품권 판매 실적 경쟁이 심해지면서 유통량이 해마다 늘고 있다"며 "실제 소비량을 초과한 상품권 판매는 결국 유통 시장을 교란시키는 부작용을 가져온다"고 말했다.

임상준기자 news@msnet.co.kr

◇깡 메커니즘

10만원 상품권 또는 급전이 필요한 신용카드 사용자→깡 업자에게 10% 선 이자를 떼고 현금으로 세탁→업자들은 시세보다 싸게 사들인 상품권이나 신용카드로 대형마트 등에서 차떼기로 물품을 구매→2~5% 마진을 붙여 슈퍼 등에 다시 물품을 되팜→적정 소비자가 보다 낮은 물품이 시중에 유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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