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춤꾼'을 넘어 '명무'(名舞)로 불리는 승무의 대가 김묘선이 5일 대구 동구문화체육회관 무대에 선다. 김죽엽무용단의 열한 번째 무대인 '죽향지무' 공연에 초청 인사 자격이다.
김묘선은 유명인사다. 전국적으로도 그렇고 일본에서는 더 유명하다. 그러나 정작 그가 태어나고 자란 대구에서는 상대적으로 알려지지 않았다. 1957년생인 김묘선은 대구 신암초등학교를 졸업했다. 경상여중을 다니다 아버지 직장을 따라 고령으로 옮겨 거기서 고등학교를 졸업했다. 그리고는 서울로 가서 본격적인 춤 인생을 시작했다. 지역을 떠난 지 38년 만에 대구 무대에서 춤을 추는 것이다. 5일 공연에는 그의 초등학교 친구들도 많이 참석한다. 40년도 넘는 세월의 벽을 넘어 친구를 만난다. 그는 내년 초 대구에서 무용 강습을 벌일 계획도 갖고 있다. 그동안 두텁고 높기만 했던 대구 문화계의 벽 때문에 시도하지 못했던 춤 공연을 해보겠다는 희망도 밝혔다. 대구 출신으로서 대구 무대에서 자신만의 춤 세계를 펼쳐보이고 싶다고 했다. 그러면서 '대구 문화계의 개방성'이 부족하다는 아쉬움도 나타냈다.
김묘선은 인간문화재 이매방 선생의 수제자로 2005년 중요무형문화재 27호인 승무의 전수조교로 지정됐다. 전수조교란 인간문화재 문하의 전수자와 이수자 과정을 거쳐 문화재청으로부터 후계자로 인정을 받은 사람들이다. 그래서 '준인간문화재'라고도 한다. 당시 그는 불교의 고장인 일본 시코쿠의 88개 사찰 가운데 하나인 대일사(大日寺)와 부속 사찰인 국중사(國中寺)의 주지이던 오구리 고에이 스님과 결혼을 한 지 10년째에 접어들고 있었다. 1995년 일본 도쿠시마 공연을 본 오구리 스님의 끈질긴 구애로 40살에 한 결혼이었다. 2남 4녀의 장녀로서 일찍 세상을 떠난 엄마를 대신해 동생들 뒷바라지에 청춘을 보내다 보니 결혼이 늦었다고 했다. 일본에서 생활하는 그가 우리 춤 승무로 대한민국 정부의 인정을 받은 것이다. 그의 실력과 존재를 말해주는 방증이다.
그는 지금 대일사와 국중사의 주지다. 대일사는 특히 1천200년 역사를 가진 고찰이다. 남편이 2007년 입적을 하는 바람에 우여곡절 끝에 주지직을 이어받았다. 외국인 주지로도, 여성 주지로도 1호다. 여자가, 그것도 외국인이 주지가 된다는 것은 상상하기 힘든 일인데도 그는 모두 1호를 기록했다. 주지를 맡은 지 이제 3년. 자신의 절에 집안의 대소사를 맡기고 있는 267가구의 각종 행사를 주재하고 참배객들의 뒷바라지를 하는 데도 하루 24시간이 부족하다. 일본인들은 절에 족보를 보관할 만큼 절과 실생활은 밀접하다. 절의 살림도 순전히 그의 몫이다. 경영을 잘못하면 파산을 할 수도 있다. 그만큼 대일사 주지, 김묘선이 맡아서 해야 할 일이 많다.
그러면서도 40년을 같이한 춤을 놓지 않았다. 어쩌면 스님인 김묘선이 승무의 대가가 된 것은 숙명 같다. 바로 자신의 춤인지도 모른다. 그는 절 옆 공터에 자신의 연습실을 두고 우리 춤에 정진하고 있다. 일본 전역에 걸쳐 한국 춤 알리기에도 열심이다. 매년 연초가 되면 도쿠시마 오츠카 극장에서 김묘선의 춤 공연을 펼친다. 한국예총 일본 관서지회 회장도 맡고 있다. 지난해에는 우리 정부로부터 문화훈장을 받았다.
이동관기자 dkdk@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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