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수'라는 말을 흔히 쓰지만 백수만 알았다간 대화에 끼기가 쉽지 않다. 화백이니 불백, 마포불백 등으로 진화하는 속도가 빨라서다. 수시로 골프 치고 여행 가는 화려한 백수인 '화백'이나 집에 틀어박혀 있다가 누가 불러주면 나가서 밥 먹는 불쌍한 백수인 '불백'을 모르면 곤란해진다. 가장 비참한 백수인 '마포불백'(마누라도 포기한 불쌍한 백수)에 이르면 웃음이 절로 난다.
말은 전염성이 강하다. 같은 말을 쓰고 서로 통한다는 동질감으로 인해 신조어는 피할 수 없다. 주변에서 신조어나 축약어를 쓰는데 멍하니 있다면 말 그대로 '멘붕'이다. 언어학자 기 도이처는 "언어는 같은 말을 쓰는 집단의 생활과 사고방식을 나타내는 문화의 산물인 동시에 언어 집단의 행동 양식에 영향을 주는 요소"라고 주장했다. 이처럼 말은 문화나 지역, 또래 집단과 같은 사회적 관계에 큰 영향을 준다. 또 복잡한 말보다는 간단하고 직관적인 줄임말의 사용은 언어의 경제성 측면에서 보편적인 현상이다.
요즘 청소년들 사이에 대세가 된 줄임말도 그런 경우다. 안습이나 까도남, 놀토, 지못미 등은 웬만한 어른들도 알아듣는 초급 수준이다. 광클(광란의 클릭질), 열폭(열등감 폭발), 생파(생일파티), 솔까말(솔직히 까놓고 말해서) 정도는 알아야 중급 수준이다. 하지만 스릉흔드(어금니를 물고 사랑한다를 발음한 것)나 흑역사(암울한 과거'흔히 다이어트 전 뚱뚱했던 때를 이르는 말), 갈비(갈수록 비호감), 볼매(볼수록 매력 있는) 등 고급 수준에 이르면 대다수 기성세대는 알아듣지 못한다.
영어권에서도 트위터 등 SNS나 문자 메시지에 WRUD?(What are you doing?), LOL(laughing out loud)과 같은 줄임말이 흔히 쓰인다. 인터넷 사전 넷링고(netlingo)에 따르면 온라인에서 사용되는 영문 축약어도 2천여 개가 넘는다고 한다.
엄친아나 지못미, 흑역사 등과 같은 용어가 방송 매체에까지 확산돼 널리 쓰이다 보니 요즘 부모들은 아이들이 즐겨 쓰는 말쯤은 대충 알아들어야 할 상황에 처했다.
아랫사람이 높임말을 쓰지 않고 반말투로 말할 때 흔히 "싸래기로 밥 해 먹었냐"며 꾸지람 한다. 황당한 줄임말이나 신조어를 더 이상 발칙한 외계어로 취급할 필요는 없지만 무분별한 줄임말의 사용은 결국 싸래기 말을 양산한다는 점에서 깊이 생각해 볼 문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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