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기도 포천은 소 사육 농가가 거의 없다. 그런데 '포천 이동갈비'는 전국적인 명성을 자랑한다. 왜 그럴까? 한우는 물론 육우도 생산하지 않는 포천시지만 이동갈비로 소문난 이동면에 들어서면 도로변 전부가 갈비구이집일 정도로 간판이 촘촘하게 늘어서 있다. 이동갈비는 60여 년 전에 시작됐다고 전한다. 1960년대 초 면 소재지에 들어선 '이동갈비집'과 '느타리갈비집'이 인근 군부대 군인들을 상대로 한 장사에 크게 성공하면서 식당이 줄줄이 들어섰다. 이제는 면 소재지뿐만 아니라 인근 백운계곡과 산정호수 일대에 이르기까지 200여 개의 크고 작은 업소가 저마다 독특한 맛을 자랑하며 성업 중이다.
평일에도 전국에서 찾아온 손님들로 북적이지만 휴일에는 고기가 모자라 손님을 제대로 맞지 못할 정도로 붐빈다. 이동갈비는 소갈비의 기름기를 제거하고 화학조미료를 쓰지 않아 시골의 소박한 맛 그대로를 낸다는 평을 듣는다. 더구나 값이 싸고 양도 많다. 어떻게 비싼 소갈비를 이렇게 싸게 팔 수가 있을까?
돼지농장 한 곳 없는 봉화 봉성면이 돼지숯불구이로 명성을 얻은 것처럼 소 사육을 하지 않는 포천 이동면이 이뤄낸 전국적인 명성은 소갈비로 외식사업에 나선 전국 음식점에서 눈여겨볼 만한 가치가 있다.
◆포천 이동면은 소갈비 요리 경연장
이동갈비는 원래 미군부대에서 나오는 질긴 고기를 양념해 숙성시켜 판매하기 시작한 것이 원조로 알려졌다. 비프스테이크 등 소고기 요리를 하고 남은 뼈 붙은 고기가 부대 밖으로 반출되면서 이를 재료로 한 소갈비 요리가 탄생한 것. 질긴 고기는 고기의 육질을 부드럽게 하는 양념숙성 등 요리 기술을 낳았고, 이는 이동갈비의 비법으로 자리 잡게 됐다.
그렇게 출발한 이동갈비는 재료가 질긴 수입쇠고기에서 부드러운 한우고기로 바뀌면서 전국으로 소문이 나기 시작했다. 고기 다루는 손맛에다 재료마저 좋아졌으니 이동갈비의 명성은 하루가 다르게 높아졌다.
이동갈비는 일반 소갈비보다 갈비 두께가 두껍다. 소위 왕갈비다. 이는 고기를 굽는 과정에서 육즙이 마르는 것을 막기 위해서다. 또 식감을 좋게 하기 위해서 굵직굵직하게 토막 내 손님상에 낸다. 어쩌면 너무 단순해서 아무것도 아닌 듯하지만 이동갈비의 맛을 내는 기본이다. 두 번째는 고기를 구울 때 강한 불을 쓴다. 참숯만 고집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센불이라야 고기의 육즙이 마르지 않으면서 겉을 노릇노릇하게 재빨리 구울 수 있기 때문이다. 이 두 가지는 200여 개 업소의 공통적인 조리 방법. 그렇지만 집집마다 고기를 재우는 양념은 조금씩 다르다. 마늘, 양파는 물론 키위, 배 등 육질을 부드럽게 하는 다양한 재료로 숙성과정을 거친 뒤 손님상에 올린다. 이 같은 이동갈비 주방장들의 대단한 손맛 덕분에 이곳에서는 수입 소갈비도 국내산 한우 갈비 못지않게 인기를 얻고 있다. 아예 수입산이라고 써붙이고 장사하는 곳도 적지 않다. 덕분에 값이 싸면서도 양이 많고 맛도 일품이라는 입소문이 퍼지고 있는 것이다.
◆이동갈비 입소문은 군인들과 군부대 면회객들
기껏해야 미군부대 뒷고기 수준의 질긴 소갈비를 재료로 갈비구이를 해 온 이동면 사람들. 소고기 육질을 부드럽게 하는 조리비법을 터득해낸 이들의 프로근성은 이동갈비의 전국적인 명성으로 이어졌다. 질기고 맛없는 못난 소고기도 이동면으로 들어오면 잘난 고기로 변신한다. 이 같은 명성은 포천이 휴전선 전방의 군부대 도시인 덕분에 더욱 빠르게 전국으로 확산됐다. 군인들과 군대 간 아들을 면회 온 가족들과 이웃, 친지, 친구, 연인들이 입소문의 매개체가 됐다. 외출해서 먹어보고 면회 와서 먹어보고, 제대해서 고향으로 돌아가 이동갈비의 맛을 알리게 되고…. 그러다 보니 자연스럽게 전국에 알려지게 된 것이다. 특히 소비층이 많은 대도시 서울과 멀지 않은 점도 큰 장점으로 꼽힌다.
"서울을 끼고 있다고 해도 수원갈비와는 원천적으로 다릅니다. 수원갈비는 왕소금 양념이지만 이동갈비는 간장양념이지요. 많은 양념재료가 있지만 우리 전통 간장의 깊은맛이 이동갈비 특유의 감칠맛을 냅니다." 이동갈비 전문점 '갈비 1987'(포천시 이동면 장암리)을 운영하는 황성환(32) 씨는 이동갈비 예찬론자다. 호텔경영학을 전공하고 와인 소믈리에로 활동해 온 황 씨는 와인을 접목한 이동갈비로 세계화를 꿈꾸고 있다. 그가 직접 화롯불에 구워낸 이동갈비의 첫 맛은 입안에 착 달라붙는 느낌이다. 부드럽고 고소하기 이를 데 없다. 감칠맛은 기본이고 고소한 냄새와 매끈매끈한 식감이 입 안 가득히 퍼진다. 겉은 바삭한 느낌을 주지만 속은 육즙을 잡아 쫄깃한 고기가 혀에 감긴다.
일반적으로 생갈비보다 좀 질이 떨어지는 재료로 양념갈비를 만들지만 이곳은 재료의 질도 높다. 소스로 낸 강된장은 갈비맛을 더욱 진하게 만드는 추임새 역할을 한다. 곁들인 무김치와 김치피자, 고추장 파스타도 일품이다. 이를 안주 삼아 살구즙으로 칵테일한 이동막걸리 한잔은 '신선이 따로 없다'는 느낌을 준다.
◆와인+갈비, 이동갈비 세계화에 앞장
황 씨는 이동갈비를 숙성시키는 전통 기법에 서구의 와인 숙성 기법을 더해 새로운 이동갈비 맛을 추구하고 있다. 그는 포천시가 추진 중인 이동갈비의 세계화 사업에 첨병 역할을 맡고 있다. 오랫동안 외식업체에서 소믈리에로 활동한 그는 와인과 전통 갈비를 접목한 새로운 숙성 방식을 도입해 지금의 식당을 꾸몄다.
스페인과 포르투갈에서 직접 찍은 사진을 벽면 가득히 채웠고, 식당 내부 곳곳에 포도주 수입박스를 쌓은 실내 인테리어도 꽤 자연스럽다. 널찍한 방에 가득 모여 앉아 허리띠를 풀고 질펀하게 먹고 가는 이동갈비집의 분위기를 이국적으로 바꿔놓은 첫 집이다. 고기 굽는 연기가 방안 가득 매캐한 일반 이동갈비집에 질린 요즘 고객들에게 어필하기 위해서다. 가장 중점은 환기에 뒀다. 음식 맛도 중요하지만 환경도 무시할 수 없다. 연기 배출 시설은 에어컨 시설과 연동시켜 한쪽에서는 연기를 빨아들이고 에어컨은 연기를 밀어내는 식으로 설치한 점도 눈길을 끈다. 식당 내부에 연기라고는 찾아볼 수 없다.
"5년 전 갈비 가게를 운영하시던 아버지가 제게 도와 달라고 하셨어요. 마침 잠시 쉬고 있는 터라 아버지 일을 도와주러 왔다가 이동갈비에 반해 눌러앉은 거지요." 황 씨는 이동갈비의 세계화를 위해서는 '퓨전화'가 기본이라고 믿는다. 간판명을 색다른 '갈비 1987'이라고 바꾼 것도 아버지가 창업한 원년을 가게 역사의 시작으로 삼기 위해서다. 프랑스 유명 포도주 사또의 연호표시처럼 이동갈비도 섬세한 소믈리에 스타일로 퓨전화하고 있는 셈이다. 황씨는 "한국처럼 식탁에서 음식을 조리하는 일이 익숙하지 않은 외국인들에게 어떻게 하면 이동갈비의 완성도를 높여 친근감을 줄 수 있는지가 세계화의 관건"이라고 말했다.
황 씨는 이동갈비의 퓨전화 과정에서 간과하기 쉬운 한국적 음식의 정체성을 잃지 않기 위해서 간장게장과 고사리 나물을 곁들여 내는 것도 잊지 않는다. 고기 굽는 화로도 전통적인 모양의 놋화로를 써 갈비구이 상차림의 친근감을 높였다.
향토음식산업화특별취재팀
최재수기자 biochoi@msnet.co.kr
김병구기자 kbg@msnet.co.kr
권동순기자 pinoky@msnet.co.kr
강병서기자 kbs@msnet.co.kr
엄재진기자 2000jin@msnet.co.kr
사진작가 차종학 cym4782@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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