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교도소 등 사회포교 명성, 도심 속으로…

'불교 불모지' 대구 서구에 포교당 연 원일 스님

#20여년 수감자에 법문 설파…경찰서 지도법사로 활동

#트로트 음반도 낸 '가수' …국전 입선 서예가이기도

원일 스님을 만나고 세 번 놀랐다. 놀라운 동안, 눈물겨운 포교활동 그리고 화려한 그의 취미.

한국전쟁이 발발했던 1950년에 태어났다. 63세다. 출가한 지도 36년이나 되었다. 그런데 실제 얼굴을 마주하고 보면 40대 후반이라 해도 믿을 만한 동안(童顔)이다. 스님에게 나이가 무슨 의미랴?

그의 본질은 포교승이다. 군대를 제대한 뒤 출가한 원일 스님은 포교승으로는 제법 이름이 나 있다. 이른바 '전국구'다. 1994년 충남 아산 정토불교대학을 시작으로 창원 금강불교대학, 대구 수성구 관음불교대학 등 전국구로 활동하며 불자들이 사회봉사활동에 더욱 활발히 참여할 수 있는 길을 열어주었다. 올 2월에는 상대적으로 조계종 소속의 도심 사찰이 거의 없는 서구 평리동에 진명사라는 사찰 겸 포교당을 열었다. 불교의 불모지라 불리는 서구에 조계종의 뿌리를 제대로 내려보자는 취지에서다.

원일 스님은 특히 교도소 법문 전파에도 심혈을 기울였다. 청송 제2감호소, 대구구치소, 김천교도소 등을 다녔다. 1986년부터 2007년까지 수감자들을 상대로 심지법문(心地法門, 세상의 중심은 마음이라고 설법하는 법문)을 했다. 마음의 문을 여는 그의 간절한 법문에 매번 수십명의 수감자들이 눈물을 흘렸다고 한다.

그는 일반 포교와는 달리 교도소 포교에 더 큰 방점을 두고, 열정을 다바쳤다. 이들에 대한 법문이 일반인들을 대상으로 하는 것보다 이 세상에 미치는 순 영향이 훨씬 크다는 생각에서였다.

"맨 앞줄에 앉은 수감자 50명이 눈물을 비오듯 흘리고 있는 모습을 보면서 포교승으로서 이보다 더 큰 보람이 어디 있을까 여겼습니다. 지금도 이들로부터 받은 편지 박스들은 소중하게 간직하고 있습니다."

동국대학교 불교대를 졸업한 그는 사회 포교활동 전문가 스님으로 활동 폭을 더욱 넓히고 있다. 운불회(운전자불자연합회) 지도법사를 비롯해 성주경찰서, 성서경찰서 지도법사 등 단체나 기관의 포교도 활발하게 하고 있다. 더불어 각 기관들의 초청 강의에서 ▷급한 성격으로 살지마라, 급류엔 고기가 못산다 ▷까탈스럽게 살지 말고 어수룩하게 살아라 ▷분위기에 휩쓸리지 마라 등 현실적인 삶의 교훈도 설파한다.

무료급식소 운영에도 모범을 보이고 있다. 그는 수성구 범물동 범물사회종합복지관에서 매달 2번 500여 명이 식사를 할 수 있는 급식소를 열고 있다. 급식소는 불자들의 자발적인 후원금이 전달되는 급식통장을 통해 투명하게 운영되고 있다.

마지막으로 기자를 놀라게 한 대목이 바로 화려한 취미생활이다. 서예는 국전 입선자, 동양화는 전시회를 열 정도로 수준급이었다. 2년 전 부터는 매년 가을 대구 팔공산에서 열리는 승시(僧市)에서도 불교의 성구를 써주는 서예 코너를 맡고 있는데 해마다 인기 부스로 손꼽힌다.

이뿐만이 아니다. 그는 1집 음반을 낸 트로트 스님 가수였다. 7년 전 1집을 냈는데 내년 쯤 2집을 준비 중이란다. 1집 음반에는 그가 직접 작사한 '삶의 길' '인생이란'이란 곡과 함께 스님과는 전혀 어울리지 않는 제목의 '여자는 왜?'가 타이틀곡으로 실렸다. 만나면 팬이 될 수밖에 없는 포교승, 원일 스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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