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도 '한국 의학도 수필공모전'이 있었다. 많은 응모가 있었고 글의 수준도 높았다. 대상은 '10년 만의 바둑 한 판'이 수상했다. '초등학교 때 바둑에 재능을 보여 프로를 꿈꿨다. 서울까지 유학 가서 지도를 받았는데 전국 각지에서 올라온 뛰어난 아이들 속에서는, 더 이상 눈에 띄는 영재가 아니었다. 또래의 아이들은 프로 입단을 눈앞에 두고 있는데 자신은 제자리에 멈춰 서 있었다. 결국 다른 길을 가게 되었고 그 후 다시는 바둑판을 돌아보지 않았다.
의과대학 임상실습에 정신분열증 환자들과 함께 생활하는 정신과 실습과정이 있었다. 소개 시간이 있어 말하고 들어가려는데 누군가 '특기가 무엇이냐'고 물어 엉겁결에 바둑을 두는 것이라고 대답해 버렸다. 자리에 돌아오자 옷도 남루하고 음침한 기운을 풍기는 할아버지가 자판기 커피를 뽑아다 주면서 점심시간에 바둑 한 판 두기를 요청했다.
그래서 10년 만의 대국이 시작됐는데 처음에는 빨리 끝내고 싶어 약간의 속임수를 시도했지만 할아버지는 곧바로 간파하시고 안정적으로 두어나가셨다. 예상과는 달리 탄탄한 실력자여서 등에 땀이 흐를 만큼 혼신의 힘을 다했고 결국 할아버지가 사소한 실수를 하는 바람에 이길 수가 있었다.
바둑판 위에서는 할아버지와 자기는 한 수를 주고받는 상대일 뿐, 환자와 실습생이 아니었다. 대국을 하기 전까지는 정신분열증 환자일 뿐이었는데 끝나고 나니 자기와 똑같이 바둑을 잘 두시는 평범한 할아버지로 변해 있었다.
정신분열병을 가진 환자라고 해서 이상한 사람이 아니었다. 그들은 조금 아플 뿐, 우리와 같이 평범한 일상을 살아가고 있는 사람들이었다. 의사는 환자를 사람이 아닌 환자로만 보기 싶다. 나도 모르게 내가 그런 시선을 가지고 있었음을 바둑 한 판을 통해 알게 되었다. 환자는 환자 이전에 우리와 동등한 사람이라는 것을.'
이것이 대상 작품의 줄거리다.
나는 의사들을 대상으로 한 공모전을 통해서 수필잡지에 등단을 했기 때문에 체계적인 글의 배움 없이 글을 쓰곤 했다. 어느 날 이래서는 안 되겠다는 생각이 들어 글 쓰는 모임에 참가했다. 거기서 정말로 글을 잘 쓰는 분들을 만났고 내가 얼마나 부족한 글을 써 왔는지를 깨달았다. 지금도 글을 써서 합평을 받을 때는 등에 땀이 흐르도록 긴장하고 얼굴이 벌겋게 될 만큼 지적을 받는다.
결국 환자들도 의사와 똑같은 사람들이고 어떤 면에서는 의사보다 월등한 부분을 가지고 있을 수도 있다. 대상을 탄 학생이 깨닫고 필자가 느꼈듯이 그들도 의사와 똑같은 사람이고 의학 이외의 어떤 분야에서는 의사보다 월등할 수 있다는 점을 알아야 할 것 같다.
임만빈 계명대 동산병원 신경외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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