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피가 아닌 피난이죠. 한국전쟁 때 피란 갔던 것보다 기분이 더 나쁩니다."
구미 국가산업4단지 내 화학제품 제조공장 ㈜휴브글로벌의 불산 누출사고에 따른 2차 피해로 환경재앙을 맞은 구미 산동면 봉산'임천리 일대 주민 300여 명이 6일 산동면 백현리의 구미시 환경자원화시설과 해평면의 구미시 청소년수련원으로 각각 피난했다.
2차 피해로 병원 진료를 받는 사람들이 급증하고, 농'축산물 피해가 눈덩이처럼 커지고 있지만 정부의 불산 잔류 측정 등 정밀 조사는 늑장을 부리면서 불안감에 빠진 주민들이 자체적으로 피난을 결정한 것. 그러나 피난은 사고 발생 9일 만에 이뤄진 일이어서 주민 건강이 우려되는 상황이다.
6일 간단한 옷가지만 챙겨든 채 피난처로 옮긴 주민들은 6일과 7일 이틀간을 거의 뜬눈으로 밤을 지새웠다. 그러나 불안감이 더 큰 것은 피난 생활이 언제까지 계속될지 모르기 때문.
7일 오후 찾은 구미시 청소년수련원. 이곳엔 산동면 임천리 주민 190명이 피난왔다. 주민 홍선표(61) 씨는 "건강 상태가 시원찮은 가축들은 놔두고 급하게 옷가지만 대충 챙겨 마을을 떠났다. 잠자리, 먹거리도 문제지만 기약없는 피난 생활이 더 불안하다"고 했다. 주덕상(73) 씨는 "피난 온 주민 상당수가 고령인데다 머리가 아프거나 목이 붓는 등 건강 이상을 호소하는 상황이어서 장기화할 지 모르는 피난 생활이 건강을 해치지 않을까 걱정"이라고 했다.
서홍(56) 씨는 "정부 합동조사단이 7일 불산 노출 시 장기 후유증은 거의 나타나지 않는다는 내용의 문서 수천장을 주민들에게 배포하다 주민 저지를 받았다"며 "합동조사단이 불산 누출에 따른 문제가 없다는 전제하에 조사를 하는 것 같아 주민 불안감을 키우고 있다"고 비판했다.
산동면 봉산리 주민 112명이 피난 온 구미시 환경자원시설도 사정은 마찬가지. 강당에서 새우잠을 자고 구미시가 제공하는 음식을 먹는 주민들은 피곤한 기색이 역력하다.
박명석 봉산리 이장은 "불안해하는 주민들이 많아 피난을 결정했으며, 함께 피난하지 않은 주민들은 친인척 집 등으로 모두 떠나 마을은 상태가 좋지 않은 가축들만 있을 뿐 텅 빈 상태"라고 전했다.
주민 상당수가 마을을 떠난 봉산'임천리 등 2개 마을은 폐허처럼 황량하다. 메케한 냄새로 가득한 마을은 콧물, 기침 증세를 보이는 한우 등 가축들과 허옇게 말라 죽은 농작물만이 마을을 지키고 있다. 가을걷이를 앞둔 벼는 허옇게 말라 죽었고, 과수나무 잎들은 검고 누렇게 변해 어지럽게 떨어져 있다. '불산 누출사고 피해지역 절대 식용 불가'라고 써 놓은 붉은색 현수막들이 을씨년스럽게 곳곳에 매달려 있다.
구미'이창희기자 lch888@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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