탄탄대로일 것만 같던 박근혜 후보의 대선 가도에 빨간불이 켜졌다. 3자 대결의 대선 구도에서 박 후보의 경쟁력은 여전히 월등하다. 하지만 안철수 후보의 전면등장으로 3자 구도가 고착화 되었다기보다는 선거에 임박해 문(文)'안(安) 단일화가 성사되어 대선이 양자 구도화 될 것이고, 양자 구도 하에서는 누가 본선에 출전해도 박 후보가 고전할 것이라는 주장이 설득력 있게 제기되고 있다.
대부분의 선거가 그렇지만 보수와 진보가 30% 정도 요지부동의 지지층을 확보하고 있는 한국의 대통령선거는 나머지 30% 정도 중도성향의 유권자가 위치한 '중원'(中原)을 점령해야만 승리할 수 있는 싸움이다. 중원에서 우세를 보이는 안 후보가 문 후보 쪽으로 가든, 고정 진보 표를 가지고 문 후보가 안 후보 쪽으로 가든, 막판에 한쪽으로 표를 몰아주는 단일화가 성사된다면 엔간해서는 박 후보가 승리하기 어렵다. 주적이 파악되어야 전력을 집중하고 전술적 대응을 정교화하며 전쟁을 효율적으로 수행할 텐데, 박 후보는 앞으로도 두 달 정도 두 명의 적을 동시에 상대해야 하는 버거운 싸움을 벌여야 한다. 박 후보의 고전에는 이러한 구조적 요인이 크게 작용하고 있다.
하지만 이러한 상황을 예측 못 한 것도 아니고, 단일화가 불법이 아닌 이상 모든 시나리오를 상정하고 전투에 임하는 수밖에 없다. 난국을 타개하기 위해 적지 않은 주문이 당 안팎에서 나오고 있다. 인적쇄신론이 나오고 있고, 후보가 '머리를 풀고 몸뻬 바지 입고 더 뛰어야' 한다는 주장도 제기되고 있다. 그러나 후보의 '가열찬' 노력과 인적쇄신만으로는 현 난관을 극복하기 어려워 보인다. 선거의 승패는 공약의 검증을 통해서가 아니라 후보들의 이미지, 그리고 그들이 제시하는 다소 막연하지만 차별화된 미래상에 의해 결정되는 경우가 많다.
박 후보가 향후 단일화의 파고를 헤쳐나가기 위해서는 문'안 모두를 압도할 수 있는 박 후보 만의 미래상을 제시할 수 있어야 한다. 그렇지만 정치의 탈정치화를 염원하는 많은 국민들에게 박 후보는 여전히 과거의 이미지가 강하고, 상대적으로 정치초짜인 문'안 후보는 미래가치 싸움에서 박 후보에 비해 비교우위를 누리고 있는 형국이다. 이러한 프레임으로 선거가 치러진다면 박 후보는 어느 단일 후보를 상대로도 힘든 싸움을 할 수밖에 없다.
물론 박 후보가 비전 제시를 게을리했다고 할 수만은 없다. 야당보다 한발 앞서 적극적인 분배정책을 제시해 복지 담론을 선점했다. '경제민주화'를 먼저 치고 나온 쪽도 박 후보이다. 복지와 경제민주화를 통해 '국민대통합'의 대한민국 미래상을 제시하기도 했다. 하지만 복지와 경제민주화는 보수정치인 박근혜에게 사안의 성격상 '방어용'일 수밖에 없는 담론이었다. 야당은 더 공세적인 복지와 경제민주화 정책을 공약화할 태세이고, 국민들은 복지와 경제민주화를 박 후보만의 차별화된 상품으로 인식하고 있지 않다. 국민대통합은 중요한 미래가치이나 많은 국민들은 이를 구현할 적임자로 소통에 능해 보이는 다른 후보를 염두에 두고 있는 듯하다. 따라서 다수의 국민들은 아직도 박 후보가 선장이 된다면 어떤 미래좌표를 향해 대한민국호를 조타(操舵)해 갈지 궁금해하고 있다.
대통령에 당선된 후보들은 모두 그들만의 차별화된 비전 제시에 성공했음을 알 수 있다. 어찌 되었든 이명박 후보는 경제 대통령, 선진 한국이라는 미래상 제시에 성공했다. 노무현 후보가 대통령이 된다면 '차떼기'와 같은 정경유착이 사라지고, 정치개혁과 사회정의가 구현될 것 같은 기대감을 주었다. 박 후보가 집권하면 어떤 세상이 오는 것일까? 문민-국민-참여-실용의 정부가 출범, 퇴장한 한국 민주주의 역사의 연장에서 한 단어로 축약될 수 있는 박근혜 정부의 시대정신은 무엇일까? 박근혜 하면 아직도 많은 국민들이 박정희 전 대통령을 가장 먼저 떠올린다는 최근 여론조사결과는 박 후보가 비교우위를 형성할 수 있는 차별화된 이미지 구축과 미래상 제시에 실패하고 있다는 사실을 방증한다. 박근혜만의 세일즈 포인트가 아직 약하다는 뜻이다. 친박들에게 잘못이 있다면 너무 오래 이러한 전략적 공백상태를 방치한데 있다. 18대 대선이 16대 대선의 재판이 될 것인가? 이는 몇 개의 단어와 구호로 압축될 수 있는 박 후보의 차별화된 미래상이 얼마나 국민들에게 설득력 있게 제시되느냐와 무관하지 않을 것이다.
김재천/서강대 교수 정치학
댓글 많은 뉴스
이재명 90% 득표율에 "완전히 이재명당 전락" 국힘 맹비난
권영세 "이재명 압도적 득표율, 독재국가 선거 떠올라"
이재명 "TK 2차전지·바이오 육성…신공항·울릉공항 조속 추진"
대법원, 이재명 '선거법 위반' 사건 전원합의체 회부…노태악 회피신청
포항 찾은 한동훈 "박정희 때처럼 과학개발 100개년 계획 세울 것"