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수암칼럼] 시민이 문화에 빠져야 도시가 산다

캘리포니아 대학 연구팀은 '음악을 들으면 두뇌 활동이 촉진되고 지능이 향상된다'는 세칭 '모차르트 효과' 이론을 내놓은 바 있다. 일부 반론도 있었지만 음악의 리듬이 뇌신경세포를 자극하고 창조력과 집중력 감성 발달에 도움을 준다는 것은 정설로 돼 있다.

우리의 전통 태교(胎敎)에서도 '좋은 말과 소리'를 '듣는 것'뿐 아니라 '빛이 나고 아름다운 것'을 '보는 것'이 태아 교육에 이롭다는 것을 가르쳤다.

지금 대구는 집 대문 밖으로 나서는 순간 곳곳에서 수많은 '아름다운 소리'와 몸짓, 그리고 '빛나고 아름다운' 그림과 사진들을 만날 수 있다.

고추잠자리가 코스모스 잎에 입맞춤하는 10월, 대구시내서 열리는 공연만도 120여 가지가 넘는다.

컬러풀 대구 페스티벌, 뮤지컬, 희망 콘서트, 극단열전, 색소폰 콘서트, 그랜드피아노 페스티벌 콘서트, 재즈 리사이틀, 국악단 연주회, 오페라 청라언덕, 어린이 뮤지컬, 청년 합창의 도시 연극, 판소리….

전시회는 어떤가. 대구 사진 비엔날레를 비롯해 이인성 탄생 100주년 기념전, 목가구전, 꽃그림전, 퀼트 아틀리에전, 팔공예술인회 조각전, 대구 사우회원전, 분재 전시회, 야생초 전시회, 섬유미술전, 도예전, 대구 원로화가 회원전과 수많은 작가의 개인전 등 140여 전시가 가을을 수놓고 있다. 거의 모든 예술 분야의 장르가 두루 펼쳐져 있다.

문화도시 대구의 창작열과 지역 예술인들의 마그마가 얼마나 깊고 뜨거운지를 감탄케 해준다. 정치가 엉망이라 그렇지 '문화 기반 시설 전국 최하위'라는 열악한 문화도시 인프라 속에서도 이만큼 풍성한 예술 마당을 펼쳐내는 도시는 없다. 지역 문화단체와 예술인들에게 박수쳐 줄 일이다.

문제는 관객이다. 대구 예술계는 평소에도 부산, 광주, 인천보다 최고 2~4배 더 많은 공연 무대를 만들어내고 있다.(연간 평균 477건). 그러나 한 달에 한 번이라도 오페라 같은 공연을 본다는 시민은 달랑 5.2%이다. '그런 거 본 적도 없다'는 시민이 33.8%다. 이건 아니다. 이러고서는 경제고 정치고 아무것도 안 만들어진다.

이런 척박한 문화 향유 분위기 속에 학교 폭력 문제로 힘들어해 온 대구시 교육청이 모처럼 박수받을 만한 교육 정책을 냈다. 지금까지는 음악, 미술 같은 예술 교육은 저학년 때 한 학기에 죄다 몰아서 한꺼번에 비빔밥 곱빼기 먹이듯 때워 버렸다. 전국이 다 그랬다. 입시에 지장 있으니 음악, 미술 같은 거야 대충 수업 일수만 채우고 입시로 가자는 계산 때문이었다. 그걸 앞장서서 확 바꿨다. 예술 교육을 학기마다 고루 나눠서 지속적으로 가르치기 시작했다. 예술 교육은 지레 말려 버리고 입시로만 몰아가는 교육으로는 정서가 부드러운 아이, 감성 있는 인격이 나올 리 없다. 폭력과 일진회도 결국 문화 예술의 치유력이 못 미쳐서 나온 거다.

학교나 사회가 예술과 문화를 쪽박 깨듯 차 던져 버리면 전시관들은 텅텅 비고 공연장은 썰렁해질 수밖에 없다. 아름다운 소리, 빛나는 그림들은 저절로 숨죽고 바래져 버리는 것이다. 그런 메마른 도시에 무슨 문화가 꽃피고 경제가 살아나겠는가. 아바타 영화 한 편에 3조 원을 버는 저력도 문화에서 나오는 세상인데….

문화를 만나야 한다. 문화 공간 속에서 예술인과 함께 숨 쉬어야 한다. 그게 대구를 살리고 예술을 살리고 문화도시의 긍지를 되살리는 길이다. 전시'공연장에 줄 서는 광주를 보라. 부산 시민들을 보라. 우리에겐 곳곳에 더 아름다운 소리와 빛이 기다리고 있다.

이 가을, 가장 아름다운 가족은 아이들이 아빠 엄마 손잡고 문화 공간을 찾아가는 문화도시인다운 가족이다. 대구 사진 비엔날레, 미술관 전시 같은 곳엔 65세 이상 어르신들은 그냥 모신다. 무료다. 공원, 디스코텍 같은 데서 건강 챙기시는 것도 좋지만 문화 공간을 찾아 감성을 일깨워보는 것도 멋있게 젊어지는 비결이 된다. 어른들이 관람료나 따지고 문화예술의 가치를 가볍게 여기면 젊은 말춤 세대들의 존경심을 잃게 된다.

10월 한 달, 250만 시민 모두 예술 속에 한바탕 '풍덩' 빠져 보시라. 시민이 문화에 빠져야 그 도시가 산다.

김정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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