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등학교에 입학한 학생들은 적응력이 대단하다. 여기저기서 깔깔깔. 여고생들의 힘찬 웃음소리가 넘쳐난다. 하지만 교사들 경우 새 학교로 전근하게 되면 한동안 적응기가 필요하다. 나 또한 '나는 경북여고 교사다'라는 생각을 가지기까지 계절이 두 번 지났다. 차츰 아이들의 얼굴, 마음과 행동이 눈에 익숙해진다. 처음에는 조용한 듯 얌전한 듯한 여학생들이 점점 자신의 본색을 드러낸다. 학생들은 활기가 가득 차 있고, 명랑하고 날마다 새로운 것을 찾아낸다.
그러나 아이들의 이런 기질과는 달리 고교 생활은 하루의 대부분을 가만히 앉아서 예습, 복습을 해야만 수업 분량을 공부해낼 수 있는 환경으로 변한 지 오래이다. 학습 분량이 너무 많아 선행학습을 기본으로 하고 잠시도 쉬지 않아야 수능시험 범위까지 공부해서 시험을 칠 수 있다. 이런 점을 잘 알고 있는 입장에서 학생들에게 선뜻 활동을 함께 하자고 제안하기가 망설여지곤 한다.
올해 '과학싹잔치' 공모안내방송을 했다. 관심을 가지고 열심히 참여할 사람은 모이라는 방송을 듣고 학생들이 자발적으로 물리실로 모여들었다. 거의 '모여라 꿈동산' 수준이었다. 행사 개요도 모르면서 자발적으로 찾아오는 이 학생들에게 어떤 도움을 줄 수 있을까? 학생들을 행복하게 만드는 것이 무엇일까? 자율형 학교에서만 느낄 수 있는 특별한 맛을 어떤 식으로 느낄 수 있게 할까? 나의 고민은 여기에서 비롯된다. 모인 아이들은 초등학교, 중학교에서 거의 과학 관련 경험이 없는 학생들이 대부분이었다.
"얘들아, 2012년 과학반 동아리 하모니카에서 함께 하모니를 만들어 보지 않겠니?" "그게 뭔데요?" "같이 과학 공부를 해서 2학년이 되면 과학싹잔치, 탐구실험대회, 탐구토론대회에 나가 보고 과학논술도 공부하면서 재미있는 실험도 구상하는 모임이지. 선생님의 하모니카 활동계획에 대해 어떻게 생각해?"하고 묻자 큰 소리로 한 아이가 말한다. "선생님, 재미있을 거 같아요." "저도 해도 되지요?" "하지만 공부 시간도 빼앗기고 따로 공부해야 할 것도 많아. 행사를 준비하고 진행하려면 힘이 많이 들 거야." 내가 우려를 나타내자 학생들은 웃는다.
우리의 모임은 이렇게 시작되었다. 아이들 중에는 독서량이 엄청난 아이도 있고, 활동량이 대단한 아이도 있다. 구성원들의 생각은 조금씩 다르지만 공통점은 과학 활동에 관심이 많고, 2학년이 되면 많은 과학 관련 행사에 참여하겠다는 열정으로 가득 차 있다는 점이다.
우리 학교는 교육과정 집중 이수로 과학 시간이 일주일에 네 시간이나 된다. 게다가 다른 학교에서는 잘 하지 않는 물리I 수업을 1학년을 대상으로 가르친다. 나는 아이들에게 '맛있는 물리'라는 콘셉트를 가지고 수업 시간을 운영한다. 공간 의미를 전달하기 위해 오렌지에 우리나라 위치 표현하기, 전동기 원리를 설명하기 위해 팝콘 기계를 빌려 전동기로 돌리면서 팝콘 만들어 먹기 등 다양한 활동을 병행한다. 나는 새로운 것을 별 것 아닌 것으로 여기고 도전에 뛰어드는 아이들과 함께 사실은 '대단히 별 것에 속하는 것'을 오늘도 만들어가고 있다.
김미영 경북여고 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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