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청소년들 입만 열면 X가 줄줄…부끄러운 한글날

"세종대왕이 통곡한다"…교사에게 훈계받고선 "X발 별일도 아닌데"

대구의 한 아파트 놀이터에 있는 미끄럼틀에 욕설이 가득 적혀 있다. 이지현기자
대구의 한 아파트 놀이터에 있는 미끄럼틀에 욕설이 가득 적혀 있다. 이지현기자

#1. 대구 북구 한 중학교 여교사 A씨는 얼마 전 수업 시간에 떠드는 학생을 훈계하다 당황스런 상황을 겪었다. 수업을 마친 뒤 학생을 불러내 꾸중하고 돌아서는데 뒤통수 너머로 '×발, ×같네. 별일도 아닌 걸 가지고'라는 말이 들려온 것. A씨는 "욕설이 일상화된 탓에 요즘 아이들은 자신이 욕을 하고 있다는 인식 자체가 없다"며 "특히 남학생 경우 어설픈 영웅 심리 때문인지 다른 학생들이 보는 앞에서 여교사에게 욕설을 내뱉는 경우가 많아 더욱 지도하기 힘들다"고 호소했다.

#2. '씨× 오늘 참 ×같네.' 올 초 개봉한 한 영화에 나오는 대사다. 폭력성과 심한 욕설 때문에 영상물등급위원회로부터 청소년관람불가 등급 판정을 받았지만 전국에서 468만여 명이 이 영화를 관람했다. 영화 장면마다 거침없는 욕설이 나오고 있지만 관람객 상당수는 '욕설이 맛깔나다'는 반응을 보였다. 영화를 본 B씨는 "영화 속에서 욕설은 이미 일상 언어처럼 쓰이고 있다"고 했다.

9일 한글날 566돌을 맞았지만 바른말'고운말 교육을 무색게 하는 욕설과 비속어가 난무하고 있다. 특히 어린이와 청소년들이 놀이터'카페'인터넷 등에서 욕설을 일상 언어처럼 사용하고 있어 인성교육과 바른 언어 사용 교육이 시급하다.

◆놀이터'카페'인터넷 욕설로 몸살

8일 오후 대구 달서구 한 아파트 놀이터. 미끄럼틀과 구름다리 같은 놀이기구 곳곳에 '×까' '××년' '××는 병신' 등 욕설이 빼곡히 적혀 있었다. 주민 서은지(34'대구 달서구) 씨는 "놀이터에 다녀온 7살 난 아들이 '지×하네'가 무슨 뜻인지 물어 당황했다"고 말했다.

중'고교생들이 많이 찾는 서구 비산동에 있는 한 카페 벽면도 욕설이 가득했다. 한쪽 벽면이 '×오크' '엠창'(거짓이면 너희 엄마는 창녀다) 등 뜻을 알기 힘든 욕설로 도배가 돼 있다.

온라인에서는 욕설 사용이 더 심각하다. 인터넷 포털 사이트에 '욕카페'를 검색하면 수백 개가 뜬다. 욕카페는 같은 반 친구끼리 다른 친구나 담임 선생님을 욕하거나, 모르는 사람이라도 상관없이 서로 모여 누군가를 욕하기 위해 만든 사이트다.

카카오톡 등 모바일 메신저나 휴대폰 문자메시지, 인터넷 포털에서도 욕설이 금지어로 등록돼 있지 않아 스마트폰을 사용하는 청소년들은 '그룹채팅'에서 욕설을 하고 카페를 만들어 게시판을 욕설로 채우는 것도 가능하다.

대구지역 한 초등학교 이모(31) 교사는 "소풍이나 체험학습처럼 교사가 통제하기 힘든 외부활동을 할 때 저학년 학생들도 서로 욕하면서 싸우는 모습을 쉽게 본다"면서 "동료 교사 중에는 야단을 쳤다가 '니가 뭔데'라며 욕설을 심하게 하는 아이들 때문에 우울증으로 휴직한 경우도 있었다"고 말했다.

◆올바른 언어사용 교육 없어

지난해 11월 한국교육개발원이 초'중고생 1천260명을 대상으로 설문조사한 결과 80%가 넘는 학생이 초등학교 때 욕설을 사용하기 시작한 것으로 나타났다. 특히 응답자의 61%가 '남들이 쓰니까' '습관적으로' '친근한 뜻으로' 욕을 한다고 대답했다.

대구 동구 시니어클럽 청춘수호대 석만길(71'대구 동구 신천동) 씨는 "가정이 핵가족화되고 맞벌이 때문에 인성'예절 교육이 제대로 이뤄지지 않은 탓에 욕하는 아이들이 늘어났다"면서 "우리말'우리글에 대한 교육보다 외국어 교육을 강조하는 교육현장의 책임이 크다"고 말했다.

이에 따라 대구시 교육청은 지난해부터 초'중'고 학생들을 상대로 '욕설 없는 청정학교 만들기'라는 프로그램을 운영하고 있다.

하지만 대부분의 부모들은 자녀들의 욕설 사용에 대해 대수롭지 않게 여기고 있다. 고교생 한모(16) 군은 "친구들끼리 있을 때는 욕을 자주 쓰지만 집에선 꾸지람을 들을 것 같아서 조심한다"면서 "종종 나도 모르게 욕이 튀어나올 경우가 있다"고 털어놨다.

경북대 임지영 교수(아동가족학과)는 "청소년들은 초등학교 3'4학년 때부터 옳고 그름을 가리지 않고 또래를 그대로 따라 한다"면서 "가정에서 예절'인성 교육을 강화하고, 부모들이 자녀와 함께 스포츠 활동이나 여행을 하는 것이 좋다"고 말했다. 이지현기자 everyday@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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