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천은 가야산이 낳은 물줄기들을 거둬들인다. 고령, 성주, 합천에서 모여든 강은 품을 넓히고 속이 깊어진다. 회천은 낙동강에 닿는 긴 여정에 자연과 사람의 이야기를 끌어안는다. 물줄기를 따라 계곡의 비경과 가야의 건국신화, 칼을 휘두르며 전쟁을 벌였던 산성, 강가에 뿌리내리고 학문을 일군 사람들의 이야기가 남아있다. 고령과 성주는 공통의 자산인 회천과 가야 역사문화를 살려 관광자원으로 활용할 계획이다.
◆'따로 또 같이' 모인 물길의 여정
회천의 모태는 가야산 자락의 물줄기다. 가야산에서 시작한 대가천, 소가천, 안림천 등의 물이 모여 회천을 이룬다. 김천시 증산면의 1,430m 가야산 자락에서 발원한 대가천은 동남쪽으로 흐른다. 강은 김천과 성주를 거치면서 사인암, 선바위, 배바위 등 웅장한 자연경관을 빚었다. 물줄기는 성주댐을 지나 남으로 흘러 대가천계곡을 이룬다. 깨끗하고 시원한 물과 가야산에 펼쳐지는 계곡에는 여름이면 사람들로 북적댄다. 대가천은 성주 독용산에서 발원한 금봉천 등 지류를 받아들인 뒤 수륜면 남은리를 지나 고령읍 회천에 다다른다.
가야산 남동쪽에서 발원한 소가천은 고령군 덕곡면 상비계곡을 거쳐 덕곡저수지에 모인다. 소가천은 다시 남동쪽으로 흘러 넓은 농경지가 펼쳐진 곳에서 회천과 만난다. 가야산 해인사 골짜기에서 시작한 안림천은 합천군 가야면과 야로면을 거쳐 고령군 쌍림면을 흘러 회천과 만난다.
회천이 여정을 시작하는 가야산은 경북의 서남쪽에 자리 잡고 있다. 백두산에서 뻗어 내려온 산맥이 추풍령을 거쳐 지리산으로 뻗다가 동쪽으로 솟아오른 곳에 가야산이 있다.
가야산 상아덤에는 가야의 건국신화가 전한다. 정견모주가 상아덤에 머물면서 천신인 이질하를 만나 두 아들을 낳았는데 첫째가 대가야의 시조인 이진아시왕이고 둘째가 금관가야의 시조인 수로왕이라고 한다. 성의 둘레가 7㎞가 넘는 가야산성은 대가야의 흔적이다. 현재 성벽은 무너져 그 형태가 명확하지 않다. 독용산성은 성산가야의 자취다. 현재 독용산성의 성곽이 복원돼 있다.
가야산에는 천년왕국 신라의 마지막을 지켜봐야 했던 왕족의 아픔이 서려있다. 신라 마지막 왕인 경순왕의 막내아들은 가야산 법수사에서 여생을 보냈다. 갖가지 진기한 형상을 한 만물상과 응와 이원조의 구곡(九曲)이 담긴 포천계곡도 가야산의 빼놓을 수 없는 자랑이다.
◆물길 따라 이어지는 '사람과 이야기'
안림천과 멀지 않은 고령 쌍림면 합가리에 개실마을이 있다. 이곳은 점필재 김종직(1431~1492)의 후손들이 모여 사는 일선 김씨 집성촌이다. 점필재는 고령현감을 지냈던 강호 김숙자(1389~1456)의 막내로 태어났다. 어릴 때부터 아버지에게서 학문을 배우며 정몽주, 길재, 김숙자로 이어져 온 성리학을 계승하는 기틀을 다졌다. 27세 때인 1457년 강원도 영월에 유배 중이던 단종이 죽자 이를 비통하게 여겨 '조의제문'을 지었다. 이 글은 훗날 무오사화 때 부관참시를 겪게 되는 빌미가 됐다.
1459년 과거에 급제한 뒤 어머니를 모시며 함양군수로 있을 때 정여창, 김굉필 등 뛰어난 제자를 만났다. 아버지의 고향인 선산의 부사로 있으면서 이승언, 이철균, 주윤창 같은 젊은 제자들을 교육했다. 성종은 그를 가리켜 "품성이 단정하면서도 온화하고, 처신은 간결하면서도 진중하오. 학문은 천도와 인사를 꿰뚫었고, 식견은 고금의 이치와 적의함에 통달했다"고 평했다.
조선 중기 학자인 한강 정구(1543~1620)는 대가천과 떼려야 뗄 수 없다. 가야산에서 시작해 성주와 고령 땅을 적시며 낙동강으로 흘러가는 대가천은 비경과 함께 한강 정구의 자취가 고스란히 남아 있다. 한강 정구는 퇴계 이황과 남명 조식 아래서 학문을 닦았다. 노년에 벼슬에서 물러나 가야산이 보이는 대가천변에 회연초당을 짓고 후학들을 가르쳤다. 한강 정구는 중국 송나라 주자의'무이구곡'(武夷九曲)을 본떠 대가천에서 풍광이 빼어난 아홉 곳을 무흘구곡이라 불렀다.
쌍림면 신촌리의 안림천변 산기슭에 벽송정이 있다. 각지의 선비들이 모여 토론을 하던 곳이다. 원래 들 한 가운데 있었지만 1920년 홍수 때 안림천의 범람으로 유실된 뒤 지금의 장소에 이전했다. 2칸 팔작지붕의 홑 처마집으로 나지막한 담장이 있다. 1520년대부터 벽송정을 중심으로 고령 지역 선비들의 모임인 유계(儒契)가 결성돼 현재까지 500년 이상 명맥을 이어오고 있다.
◆강이 모이듯 사람들이 찾는 회천으로
고령군과 성주군은 회천의 가치를 살려 관광개발에 한창이다. 고령군은 암각화 주변 공원, 안림천변 농촌문화체험단지, 승마문화 체험장 등의 건립을 추진하고 있다. 성주군도 성주댐의 자연경관과 맑은 물을 이용해 휴양'레저형 관광지를 만들고 있다.
고령과 성주의 공통분모는 회천 이외에도 가야가 있다. 고령군은 대가야의 수도로서 가야국의 전성기를 이끈 지역이다. 성주군 또한 성산가야 고분군이 남아 있다. 두 군은 가야 역사문화를 바탕으로 관광기반을 확충하기 위해 '가야국 역사루트 재현과 연계자원 개발'에 나섰다.
고령군은 2010년부터 2016년까지 회천과 안림천이 합류하는 고령읍 고아리 일대에 974억원을 들여 가야를 테마로 한 다양한 시설을 조성한다. 주민문화공간인 문화예술센터와 문화공연장, 민속놀이 마당 등을 도입할 예정이다. 가야의 목욕문화를 체험할 수 있는 가야테라피타운도 조성해 휴양관광을 즐기도록 할 방침이다. 성주군 역시 내년까지 가야산국립공원 남쪽의 수륜면 백운리에 133억원을 투입해 역사신화공원을 조성한다. 가야의 건국신화를 관람할 수 있는 전시시설인 정견모주테마관을 짓고, 주변에는 가야산과 성주의 다양한 신화들을 테마로 한 야외갤러리도 만든다.
전은근 고령군 관광진흥과장은 "1천500년 전 고구려, 백제, 신라 등과 대등한 관계를 유지했던 대가야는 회천을 중심으로 많은 문화유산을 남겼다. 이를 바탕으로 가야의 역사문화 자원을 활용해 직접 체험이 가능한 관광 콘텐츠를 개발하려 한다"며 "앞으로 가야국을 대표하는 광역 관광거점을 만들고 주변 가야문화권과의 연계 체계를 구축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글'사진 서광호기자 kozmo@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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