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유하고 영향력 있는 예술의 후원자'를 뜻하는 이 단어는 로마제국이 설립될 무렵 황제의 측근인 가이우스 클리니우스 마에케나스(Gaius Cilnius Maecenas)의 이름에서 만들어졌다. 메세나는 막대한 부와 영향력을 소유한 귀족 가문 후손으로 당시 최고의 교육을 받았으며 황제의 은총을 한몸에 즐겼다. 황제와 나란히 출전했을 뿐만 아니라 신체제 로마제국의 행정과 외교에도 뛰어난 능력을 발휘한 인물이다.
그러나 메세나가 인류에게 남긴 유산은 그의 재능이 아닌 예술에 대한 사랑과 열정을 상징하는 그의 이름이다. 메세나는 많은 예술가들을 후원했지만 그중에서도 젊은 시인들을 각별히 아끼고 사랑했다. 그의 후원 동기는 명예나 이윤 같은 비본질적인 가치를 추구하는 것이 아니었고 문학에 대한 얄팍한 흥미나 허영심에서 솟아오른 것도 아니었다. 천재적인 문학가들과 지적으로 평등한 대화가 가능했던 그는 주택의 호화스러운 정원에서 젊은 예술인들과 어울리는 것을 자주 즐겼으며 그 과정에서 그는 예술가들의 관심사 밖에 있던 주제인 정사를 수시로 논하면서 예술가들의 사상에 영향을 미치게 된다.
그런 메세나를 시인들은 존경했고 그의 지혜는 고스란히 시인들의 책에 담아졌다.
메세나는 젊은 예술인들의 후원자, 친구이자 스승이었던 셈이다. 당시 신체제 로마제국에 필요했던 홍보업무를 당시대의 하이테크 미디어였던 인쇄물을 통해서 우아하고 섹시하게 추진했다고 볼 수도 있을 것이다. 메세나는 자연스럽게 노블레스 오블리주(Noblesse Oblige)의 일부가 되었고 지금까지 그 형태에 많은 변화가 없이 지속되어왔다.
플로렌스의 르네상스를 이룬 메디치(Medici) 가문, 베토벤과 리스트 같은 음악적 천재들을 지원했던 합스부르그(Habsburg) 가문, 근대의 구겐하임(Guggenheim) 가문 역시 가문의 막강한 부와 세력, 그리고 가문 멤버들에게 강조된 광범위한 문학과 예술의 교육을 배경으로 메세나 활동을 펼친 예다. 자본주의로 들어서면서 초대기업들도 활발하게 메세나 활동에 합류하게 되었다,
그러나 기업의 주목적이 이익을 추구하는 만큼 가족재단들의 활동에 비해 어느 정도 성질이 다른 것은 사실이다. 예를 들어 후원 동기를 비교하자면 가족재단이 사회적 책임감과 순수한 예술에 대한 사랑으로 후원을 한다면 기업들의 후원에는 보통 자기들의 매출에 관련될 유리한 조건들이 따르기 마련이다.
물론 가족재단도 좋은 이미지나 가문의 명예 향상 등 사회에서의 득을 바라는 기대가 없진 않지만 기업에 비하면 훨씬 순수한 편이다. 가장 큰 차이점은 가족재단이 문학이나 예술에 대해 조예가 깊은 반면 기업의 후원 사업을 책임지는 부서나 인원들은 그렇지 못하다는 점이다. 사회의 영혼이자 문명의 꽃이라고 묘사할 수 있는 예술을 양성하는 과정에서 이런 단점은 장기적으로 치명적인 결과를 가져올 수 있다.
문화를 두 갈래로 나누면 고급문화와 대중문화가 될 수 있겠다. 고급문화는 장기적이고 꾸준한 노력 하에 빛을 내고 대중문화는 비교적 단기적인 노력 하에 대단한 성과를 거둘 수 있다. 문학과 예술에 조예가 얕으면 얕을수록 후원 사업에 있어 단기적인 효과를 기대하는 경향이 크다. 장기간의 자본주의 지배 하에 정신세계가 나약해진 근대사회에 정신적 부를 가져다줄 고급문화의 양성은 필수 과제이며 이를 위해 후원자들의 교양과 지식 향상도 필히 이루어져야만 한다.
이렇게 보면 메세나는 우리 개개인에게는 거리가 먼 상류층의 소유물이라고 느낄 수 있으나 결코 그렇지 않다. 티끌 모아 태산이라 개인의 작은 관심도 많은 사람들이 모이면 막강한 힘을 발휘할 수 있다. 콘서트의 티켓 구매도 일종의 메세나 활동이라고 볼 수 있으며 이제는 크라우드펀딩(Crowdfunding'대중모금이나 군중모금이라는 뜻으로, 인터넷을 통한 창작자금이나 개발자금 모금)을 통해 개개인이 아예 제작단계에서부터 문화 활동에 참여할 수 있게 되었다. 이런 가능성이 무궁무진한 시대에 사는 우리는 예술후원에 있어서 사회적 책임의 교육과 함께 예술과 문학의 교양교육을 꼭 동시에 어린 시절 때부터 진행해야 할 것이다. 이제는 누구나 다 메세나가 될 수 있는 시대가 왔기 때문이다.
박종화/서울대 교수·피아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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