병어는 떼로 몰려다닌다 해서 병어(兵魚)라 부르고, 생긴 모양새가 떡 같다고 해서 병어(餠魚)라고 부르기도 한다. 어느 소설가는 병어의 맛을 '맨 처음으로 돌아오는 맛'이라고 했다. 어떻게 맨 처음으로 돌아갈 수 있는가. 그 맛은 입심 좋은 소설가가 '맛의 근원에 가까운 것이 병어 맛'이란 걸 '구라'를 좀 풀어 그렇게 표현했겠지만 어쨌든 병어는 능히 찬사를 받을 만하다.
내 고향은 바닷가도 산골도 아닌 어중간한 시골이다. 있는 건 있고, 없는 건 없지만 사실은 없는 게 더 많은 그런 농촌이다. 횟거리 생선만 해도 그렇다. 제대로 된 횟감 생선은 현지에서 몽땅 도시로 올라가고 고향 장터에는 소금에 절인 간갈치, 간고등어와 마른 가자미뿐이었다. 하기야 물 좋은 생선들이 장날 새벽 어물도가에 부려진다 해도 선뜻 그걸 사 갈 아녀자들은 흔치 않았다.
고향에서 먹을 수 있는 생선회는 여름철엔 가오리회, 겨울에는 나들이 상어회가 고작이었다. 가오리와 상어가 생선회로 각광을 받는 이유는 웬만해선 식중독을 일으킬 위험이 없었다. 무를 굵게 채 썰고 물렁뼈 생선인 가오리와 상어를 회로 쳐 고추와 마늘을 다져 넣은 고추장에 독한 식초를 끼얹어 무쳐 놓으면 그야말로 별미다.
고등학교를 졸업할 때까지 생선회는 가오리와 상어회뿐인 줄 알았다. 대학에 진학하고 나서 어느 날 학과 대표에 입후보한 친구가 "시청 뒤 둥굴관에 모여라"는 사발통문을 돌렸다. 그곳의 생선회는 고향의 그것과는 판이하게 달랐다. 가오리 외에 병어란 생선과 살짝 익힌 오징어가 푸짐하게 담겨 있었다. 막걸리 한 잔 마신 다음 맛이 독특한 초고추장에 비벼 한 입 먹어 보니 이건 숫제 환장할 맛이었다.
병어회가 이렇게 맛있는 줄은 난생처음 알았다. 당시 생선회 한 접시 값이 60원이었다. 그 액수는 시영버스를 열 번 쯤 탈 수 있는 거액이었다. 아무리 먹고 싶어도 돈이 없어 다음에 있을 대의원 선거를 기다릴 수밖에 없었다. 졸업할 때까지 병어회를 몇 번 먹었는지 기억할 순 없지만 아무래도 열 손가락을 채 넘지 않았을 것 같다.
지금도 그 시절의 병어회 맛을 또렷이 기억하고 있다. 살 속의 물렁뼈는 여물지 않아 씹히는 맛이 일품이어서 뼈만 한 쟁반쯤 먹어봤으면 하는 욕심이 생길 정도였다. 어느 요리사가 쓴 책에 "병어 맛은 구름 맛이라고 했다가 다시 솜사탕 맛"이라고 수정한 글을 읽은 적이 있다. 이 표현에는 약간의 거짓말(?)이 섞였겠지만 내 추억 속의 맛과 상당히 닮은 적절한 표현이었다.
병어의 살은 달고 희며 뼈는 물렁하다. 비늘은 없지만 아이들 동화책 표지 그림으로 나와도 좋을 만치 동글동글하면서 예쁘다. 고기의 크기에 따라 맛의 차이가 나지 않아 작은 것은 작은 대로 큰 것은 큰 것 대로 맛있다. 살이 단단하여 쉽게 상하지 않고 계절도 타지 않는다.
여름에는 선창의 나무의자에 앉아 주모에게 비린내 물씬 풍기는 농담 한마디 던지고 초고추장에 회 한 점 먹으면 흘러가는 구름도 멈출 만큼 호기로워진다. 겨울에는 포장마차 불빛에 비치는 실루엣의 주인이 되어 병어회에 쌈장을 얹어 먹으면 다른 낭만들과는 게임이 되지 않는다. 내 말에도 허풍이 느껴진다면 그렇게 한 번 먹어 보면 될 일이지만 그게 잘 안 될걸.
병어를 회로만 먹으라는 법은 없다. 병어의 몸통에 칼집을 넣고 양념을 하여 은박지에 싸서 토마토소스를 끼얹어 오븐에 넣으면 멋진 서양식 요리가 된다. 소스의 감칠맛이 병어 살 속에 그대로 배어 있다. 소주와 막걸리도 물론 좋지만 와인 한 병 곁들이면 시쳇말로 '쥑인다'. 아니다. 함께 먹던 이가 여럿 죽어도 모른다.
병어는 떼로 몰려다닌다 해서 병어(兵魚)라 부르고, 생긴 모양새가 떡 같다고 해서 병어(餠魚)라고 부르기도 한다. 어느 소설가는 병어의 맛을 '맨 처음으로 돌아오는 맛'이라고 했다. 어떻게 맨 처음으로 돌아갈 수 있는가. 그 맛은 입심 좋은 소설가가 '맛의 근원에 가까운 것이 병어 맛'이란 걸 '구라'를 좀 풀어 그렇게 표현했겠지만 어쨌든 병어는 능히 찬사를 받을 만하다.
지난해 서천의 마량포구에서 소금 간을 약하게 한 병어 몇 마리를 사서 집으로 가져왔다. 내 딴에는 묽은 된장을 발라 참숯 화덕에 껍질이 바싹바싹하도록 구워 그 맛을 음미해 볼 요량이었다. 구워 먹고 남으면 병어와 궁합이 잘 맞는 굵은 감자를 썰어 냄비 밑에 깔고 대파 몇 뿌리를 쑹덩쑹덩 썰어 넣은 다음 간장에 갖은 양념을 해 근사한 병어조림을 만들 작정이었다. 냉동 보관해야 할 그 보따리를 한참 잊고 있다가 냉장실에서 끄집어 내 보니 추억의 생선이 한 물간 '흐느적 생선'으로 변해 있었다. 아이구 이를 어쩌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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