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지상 백일장] 엄마의 마음/사진과의 회상/주부가 아프다/삶/가을연가

♥수필1-엄마의 마음

나는 고3 엄마다. '다들 하는 기도 나도 해야지' 하며 팔공산 갓바위에 갔다.

벌써 수많은 엄마들이 빽빽하게 고개를 숙이고 엎드려 있다. 한참을 두리번거리다 한쪽 구석을 차지하고 수많은 엄마들의 궁둥이에다 대고 절을 했다.

얼마를 했을까? 현기증이 나고 눈이 흐려지며 가물가물 갓바위 부처가 보인다. 그의 눈엔 슬픈 빛이 보인다. 수많은 엄마들의 소원을 일일이 들어주느라 무척 수척해 보였다. 그래도 할 수 없다. 나도 나의 소원을 빌어야 했다. '내 소원을 이루고 말아야지.' 나는 기를 쓰고 절을 했다. '피로해진 부처지만 그래도 그는 부처인데 내 소원 한 번쯤은 들어주겠지.' 해가 서쪽 하늘로 넘어간다. 그래도 나는 내 아들 합격을 위해 기를 쓰며 절을 해댄다.

"엄마! 밥또오!" 소스라쳐 깨어보니 해가 뉘엿뉘엿 오후 한때구나! "아~ 니 밥 묵으로 왔나?"

나는 오늘도 꿈속에서 열심히 기도를 했다. 현실의 아들에게 중요한 것은 저녁밥인데 말이다.

김시붕(대구 수성구 상동)

♥수필2-사진과의 회상

사진첩 속의 1960년대 나랑 닮은 아이, 또 하나의 나. 못 먹던 시절, 그저 계란 덮인 흰 쌀밥 실컷 먹고 싶다는 얼굴.

1970년대에 꿈 많은 사춘기, 아버지를 대신해 일하러 나가신 엄마, 아버지와 주렁주렁 밑으로 달린 동생들을 위해 밥을 한다. 그래서 그런지 풋풋해야 할 사춘기 시절 얼굴에는 그늘이 져 있다. 대학에 가서도 장학금 받으며 공부한다고 연애다운 연애 한 번 한 적 없는 바보 같은 모습의 사진은 대학생이 아닌 전사의 모습.

1990년대 사진 속의 나. 남편과 아이 뒷바라지에 멋이라곤 전혀 없는 평범한 아낙네의 얼굴.

2000년대 사진 속의 나. 얼굴은 주름이 져 있지만, 학교에서 아이들과 부대끼며 바쁘게 살고 있는 모습이 가장 편안하고 행복해 보인다.

엄마를 대신해 밥 안 해도 되고, 장학금 타기 위해 햇살 좋은 날 기숙사 방에만 있지 않아도 되고, 아이 키운다고 애태우지도 않아도 되고, 늦게 퇴근하는 남편 잠 못 자고 기다리지 않아도 되니까.

나이 듦이, 늙어 간다는 것이 꼭 그리 나쁘지만은 않은 것 같다.

아직, 마음만은 이팔청춘이요, 가슴은 열정으로 요동치니 아름답게, 아름답게 잘 늙어, 죽기 전에 잘 살았노라 말하고 싶다.

노정은(대구 달서구 송현2동)

♥시1-주부가 아프다

생활비만 갖다 주면

할 일 다했다 생각하는 남편

친구들과 있을 때가

가장 즐겁다는 중학생 딸

게임할 때가

가장 행복하다는 초등학생 아들

스마트폰이 아내이고 엄마인 이들과

나는 같은 동 같은 호에 산다.

알고 있을까?

아내의 할 일은 어디까지인지

엄마는 가족이 전부라는 것을

모르겠지

아내가

엄마가

아프다는 것을

지나간 명절 탓인가

풀벌레 울음 탓인가

마음이 아프다

김순희(대구 북구 구암동)

♥시2-삶

살려한다

이 밤

소리 없이 하루의 살이

그 속에서 나는 살려한다

북적였던 오늘

내일은 반드시 있음을 알고

오늘 하루를 살아 지냈다

내 마음에 삶에 대한 열정이 있으니

오늘 하루를 살아 지냈다

내일은 더욱 감사한 마음으로

행복한 마음으로 살리라

님의 모습을 그려보며

이용우(대구 동구 신암3동)

♥시3-가을연가

내 임은

들녘에 숨어 핀 코스모스

나는

살랑이는 바람

실구름 사이로

가을 햇살처럼 청순한

네게 다가서면

이내

흑진주 빛 어둠이 스미고

별이 부서져 내린다

사랑하는 사람아!

그대 웃는 들녘에서

이대로 분홍빛 환상곡에

젖고 싶어라

민창기(영천시 대창면)

※지난주 선정되신 분은 박효준(대구 달서구 송현2동) 님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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