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고 싶을 만큼 절박할 때가 있었다. 돌이켜보면 그런 쓰라린 아픔을 겪고 나서야 비로소 지금의 내가 된 것이 아닐까도 싶다. 역경을 속 시원하게 이겨냈다기보다 그저 통과했다는 사실만으로도 우리는 그전보다 훨씬 달라질 수 있다. 죽을 만큼 괴로워도 해봐야 삶에 대한 사랑도 깊어진다. 사람들은 인생이 힘들어지면 앞으로 남은 여정이 얼마나 끔찍한지 몰라서 두려워진다. 남은 인생이 지금보다 더 불편해지더라도 초조해하거나 원통해 하지 말자. 불편함이 불행은 아니다.
호스피스 의사가 자살을 했다. 죽음을 품위있고 존엄성 있게 해 주는 직업이 호스피스 의사가 아닌가? 나 또한 호스피스 의사인 만큼 이 사건 때문에 적잖게 당혹스러웠다. 얼마 전 행복 전도사가 자살로 삶을 마감했던 것처럼 고약한 느낌이었다.
일본 작가 야나기다 구니오 씨는 57세에 혹독한 시련을 겪었다. 25세이던 둘째 아들이 스스로 목숨을 끊었기 때문이다. 자신의 죽음보다 더 무서운 것이 사랑하는 자식의 죽음이다. 더군다나 자살이라니. 그는 인생이 송두리째 잘못된 것 같았다. 불안과 두려움에 수렁보다 깊은 우울증에 빠져서 먹지도 자지도 못한 채 몇 달을 보내야만 했다.
이렇게 가까운 사람의 자살은 그 사람의 죽음에 우리를 가둬 버린다. 그래서 호스피스 환자들은 힘들더라도 끝까지 최선을 다해 살아낸다. 어차피 다가올 죽음을 비참하게 만들어 그들의 가족이 자신의 망령에 갇히게 하는 것을 두려워한다. 과연 이렇게까지 생명의 건전지가 다할 때까지 살아야 하는 것이 사람의 운명일까 싶은 처절한 생각이 들 정도로 애틋하다.
"그저 돈 버느라 마흔세 살이 될 때까지 결혼도 안 하고 살았는데 식도암이 왔네요. 수술하겠다고 배를 열어보니 퍼지지 않은 데가 없어서 그냥 닫았데요. 억울해서 미치겠네요." 비쩍 마른 그가 뭉클한 이야기보따리를 풀어놓는다.
내 환자들은 이렇게 가슴 한가운데에 있는 말을 곧잘 한다. 죽고 싶다고, 억울하다고 아무 힘도 없는 내게 눈시울을 붉히며 말해준다. 내가 하는 일이라고는 고작 눈물 닦으라고 부드러운 티슈 한 장을 건네는 일과 이제는 내가 함께하겠다는 어쩌면 지킬 수 없는 약속을 하는 것뿐이다. 하지만 진료실을 나갈 때 그들의 뒷모습이 한결 밝고 가벼워진다는 것이 느껴진다. 그래서 힘들면 힘들다고 아무 상관도 능력도 없는 사람에게라도 말해야 한다는 것을 그들에게서 배웠다.
드러나지 않은 상처는 치유될 수 없는 것이다. 때가 되면 다 죽는다. 지금 힘들더라도 먼저 죽음을 찾아가지는 말아야 한다. 연극이 마칠 무렵이 되어서야 비로소 배우가 하는 역할의 의미를 알아차릴 때가 있는 것처럼, 인생도 마지막이 다가와야 이 세상에 태어난 의미를 찾을 수 있을지 모르니까.
김여환 대구의료원 호스피스'완화의료센터장
댓글 많은 뉴스
국힘 김상욱 "尹 탄핵 기각되면 죽을 때까지 단식"
[단독] 경주에 근무했던 일부 기관장들 경주신라CC에서 부킹·그린피 '특혜 라운딩'
민주 "이재명 암살 계획 제보…신변보호 요청 검토"
국회 목욕탕 TV 논쟁…권성동 "맨날 MBC만" vs 이광희 "내가 틀었다"
최재해 감사원장 탄핵소추 전원일치 기각…즉시 업무 복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