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박현수의 시와 함께] 걱정 마, 안 죽는다

# 걱정 마, 안 죽는다 -유안진

겁먹은 선생님이 아이를 데리고 와서 아이 엄마에게 고했다

글쎄 얘가 동전을 삼켰대요

얼마짜리를요? 엄마는 태연하게 물었다

친구의 100원짜리를 빼앗아 놀다가, 뺏긴 친구가 뺏으려 하자, 입에 넣고 삼켜버렸대요

엄마, 나 죽어, 하며 아이는 울어댔지만, 엄마는 더 태연했다

남의 돈 수천씩 먹고도 안 죽는 사람 많더라

설마, 그깟 것 먹고 죽을까잉, 걱정 마

기가 막힌 선생님은 돌아갔고, 아이는 그래도 걱정되어 기도했다

하느님, 앞으로는 절대로 남의 돈 안 먹을 테니 살려주세요

다다음날 아침, 앉은 변기에서 똑 소리가 들려 돌아다보니, 대변에 하얀 동전이 섞여 있다

하느님 감사합니다. 엉덩이를 깐 채로 감사기도부터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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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에도 유머가 있어, 요즘 시는 어렵고 재미없다는 사람들을 머쓱하게 합니다. 시의 유머는 그냥 웃고 즐기자는 것이 아니라서, 웃음 속에 세상을 바라보는 날카로운 눈빛이 번득여서 더 가치가 있습니다.

이 시에서 남의 동전을 뺏어서 삼킨 아이를 변명하는 엄마의 능청스런 말과 엉덩이를 깐 채로 엄숙한 기도를 올리는 아이의 모습이 우리의 웃음을 자아냅니다. 그리고 그 웃음 속에는 세상에 대한 따스한 비판이 담겨 있어, 웃음의 뒷맛이 오래 갑니다.

변현수(시인·경북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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