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3040 광장] 대구의 가을을 예찬하다

가을볕이 매우 좋은 일요일 오후 집에서 출발해서 대구스타디움 둘레까지 3시간여의 산책을 즐겼다. 전국체전 주경기장이라 평소보다 더 많은 시민을 마주할 수 있었다. 하지만, 형형색색의 단풍이 물든 두 줄 가로수 길을 걸으며 가을을 만끽하기에 조금의 불편이나 번잡함도 느껴지지 않았다. 오히려 잠깐 들른 주경기장의 전국체전 풍격에서 여유 있는 가을 잔치를 엿볼 수 있었다. 대구스타디움에서 이어지는 대구미술관로는 신설된 지 불과 2년이 채 되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울긋불긋한 가로수 길 단풍이 대덕산 정취와 어우러져 여유와 낭만을 연출하고 있었다.

얼마 전 대구를 찾은 중국 관광객들의 대구에 대한 평을 전해 들을 기회가 있었다. 대구처럼 깨끗한 도시를 본 적이 없으며 대구에서는 산을 찾을 필요가 없이 도시를 걷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자연을 만끽할 수 있을 것 같다는 것이다. 멀리 외국에서 온 손님의 시각을 접하고, 퍼뜩 나 자신도 대구를 다시 생각해 보게 되었다. 본인은 성장 후 대구를 떠나 20여 년을 서울에서 생활하다가 고향인 대구로 돌아온 지 이제 8년째를 맞고 있다. 그리고 직업의 특성상 학술대회 참석이나 연구 등의 이유로 해외 출장이 잣은 탓에 세계의 여러 도시와 비교해서 보다 객관적인 안목에서 대구를 볼 수 있게 되었다.

대구는 분지의 특성과 도시 조경과 공원의 체계적 육성으로 자연과 인간이 함께 어우러지는 세계적 도시의 모습을 갖추어 가고 있다. 아울러, 완전한 평지의 잘 정비된 도시 산책로와 달구벌대로를 중심으로 한 이중의 가로수 길로 인해, 전 도시를 쾌적한 자연과 함께 걷는 데 전혀 문제가 없다. 뉴욕은 센트럴 파크가 있으나 그것을 벗어나면 마음 놓고 걸을 수 없지만, 대구는 어디를 걸어도 평화와 휴식을 느낄 수 있다.

대구는 삼한 시대 축조된 달성토성, 조선시대 관찰사가 있던 감영공원, 삼국시대 이래 수많은 역사를 품고 있는 대구 앞산과 팔공산 동화사 갓바위, 일제강점시대 저항 문학의 진수 이상화 고택, 일제 독립 저항운동의 근거 2'28공원 등 거의 2천 년 가까운 역사를 담고 있는 도시이다. 고작 200~300년의 북아메리카나 호주 대륙 국가들의 어느 도시도 견줄 수 없으며, 유럽의 웬만한 도시보다 풍부한 이야기를 품고 있다.

그리고 해방 후 한국 현대사 속의 대구를 두고 누가 감히 정체된 도시라고 하는가? 산업화 초기 섬유 도시 대구에서, 자동차 부품 산업 도시로, 그리고 한국 IT 산업 인력 양성의 메카로, 첨단 의료 산업 도시로 쉬지 않고 대구의 산업 생태계는 확대, 발전해 왔다. 이 과정에서 대구시 지방정부는 3공단에서 출발해서 성서산단, 대구테크노파크, 첨단의료복합단지, 대구경북경제자유구역 그리고 대구경북연구개발특구 등 대구의 경제 기반을 지속적으로 발전시켜 왔다. 경상북도의 베드타운에 머무는 것이 아니라, 대구 자체가 산업 생태계를 넘어 세계적인 지식경제 생태계를 갖추어 가고 있는 것이다.

대구의 문화적 정체성 또한 끊임없이 확대 발전하고 있다. 대구는 1970년대 한국 근대 미술의 중심 도시에서, 컬러풀 대구로 그리고 다시 한국 뮤지컬 중심 도시로, 나아가 한국 근대역사 문화 도시로 그 문화적 자산을 지속적으로 축적해 가고 있다.

찬란한 가을볕 아래, 대구 도심에서 자연을 만끽하면서 문득 깨달았다. 대구는 세계적인 자연과 인간이 공존하는 도시이며, 유구한 역사문화 자산을 가진 도시이다. 그리고 결코 정체되지 않고 새로운 경제적 요구와 문화적 환경에 개방적인 역동적 변화의 도시이다.

다만, 세계적인 도시 대구에 대한 대구 스스로의 인식을 제고하고 전 세계인들이 대구에 대한 세계적인 인식을 가지도록 하는 것은 우리들에게 놓여 있는 과제이다. 자연과 인간이 공존하는 세계 최고의 도시, 세계적으로 자랑할 만한 역사문화적 자산을 가진 도시, 산업사회에서 지식사회에 이르는 경제적 역동성과 개방성, 그리고 미술 도시에서 뮤지컬 도시로의 문화적 역동성과 개방성을 함께 갖춘 세계적 도시 대구의 시민으로 난 오늘 가을볕을 만끽했다.

윤진효/DGIST IT융합연구부 선임연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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