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주민 원인 모를 병…이통사 중계기 전자파 탓?

기지국 설치후 갑자기 아파, 병원에 가도 이유 못밝혀

대구 산격동 한 주민이 옆집 2층 옥상에 설치된 이동통신사의 기지국 중계기를 가리키고 있다. 우태욱기자 woo@msnet.co.kr
대구 산격동 한 주민이 옆집 2층 옥상에 설치된 이동통신사의 기지국 중계기를 가리키고 있다. 우태욱기자 woo@msnet.co.kr

한 이동통신사가 설치한 기지국 중계기 주변에 살고 있는 주민들이 전자파로 고통받고 있다는 주장을 해 논란이 일고 있다.

고팔문(75'대구 북구 산격동)'부종숙(67) 씨 부부는 지난해부터 갑자기 원인 모를 감기몸살과 손발저림에 시달리고 있다고 했다. 처음엔 '나이가 들었으니 당연히 오는 노환'이라고 생각했지만 고통이 너무 심했다. 병원을 찾았으나 왜 아픈지 속시원히 밝혀주지 못했고 심지어는 굿도 했다.

지난 8월 외지에서 일하던 둘째 아들이 휴가 때 집에 와서 창 밖을 보다가 어머니 부 씨에게 "우리집 앞에 기지국 중계기가 왜 있느냐"고 물었다. 고 씨 부부는 이전까지 바로 옆집에 설치된 장비들이 이동통신사의 기지국 중계기였다는 것을 전혀 몰랐다.

기지국 중계기는 고 씨의 옆집 2층 옥상에 2m가 넘는 높이의 금속 기둥에 매달려 있다. 3층인 고 씨의 집에서도 중계기 안테나가 보일 정도다. 주택 건물들이 다닥다닥 붙어 있는 탓에 중계기와 고 씨의 집 사이의 거리 또한 2~3m밖에 되지 않는다.

이달 9일 오후 1시 30분쯤 고 씨 집에서 전자파측정기로 측정한 결과 전자파의 세기를 나타내는 '전기장 강도'가 6V/m로 나타났다. 휴대전화의 평균적인 전기장 강도가 0.16~0.19V/m인 것을 감안하면 약 37배 높은 수치다. 특히 사람 머리 높이에서 전자파가 가장 강하게 감지됐다.

기지국 중계기 주변 주민들은 중계기 설치 이후부터 건강이 급격히 나빠지기 시작했다고 주장했다. 고 씨는 "기지국 중계기가 옆집 옥상에 설치된 뒤부터는 두통과 손발저림으로 잠에서 깰 때가 한 두 번이 아니다"라며 "집에 있으면 머리가 너무 아프고 힘들어 낮에는 무조건 집 밖으로 나가 기지국과 먼 곳에 있다가 들어온다"고 말했다.

고 씨의 집뿐만 아니라 기지국 주변 4가구의 주민들이 모두 고 씨와 비슷한 질병을 앓고 있다고 했다. 기지국 중계기 주변 주민들은 중계기가 설치될 때 해당 이동통신사로부터 중계기에 대한 설명을 한 번도 들어본 적이 없었다는 것. 부 씨는 "옆집에 공사를 하기에 '옥상에 설치하다가 옆집에 비가 새지는 않을까'라고 걱정한 적은 있지만 무엇이 설치되는지는 공사하는 사람들 중 아무도 말해주지 않았다"고 말했다.

이에 대해 해당 이동통신사 관계자는 "기지국 중계기와 같은 작은 설비를 설치할 때는 주변 주민들 의견을 모두 수렴해서 진행하기는 사실상 힘들다"며 "설치할 때에도 크게 반대하는 사람이 없어서 그대로 진행했다"고 밝혔다.

전문가들은 전자파의 유해성이 아직 제대로 검증되지 않은 상태에서 이 동네 사람들이 아픈 이유를 전자파 때문이라고 단정 짓기는 어렵다고 밝히고 있다. 방송통신위원회 고시에 따르면 휴대전화가 많이 사용하는 주파수인 800~2천300㎒ 대역에서의 전기장 강도 기준은 38~61V/m이기 때문에 산격동의 기지국 중계기에서 나오는 전자파가 기준치를 넘어서지 않았기 때문에 문제가 없다는 것이다.

이승우 충북대 정보통신공학부 연구원은 "전자파는 측정 방법과 환경에 따라 그 수치의 변동이 심한데다 아직 전자파의 유해성이 과학적으로 입증된 연구결과가 없다"며 "산격동 주민들의 질병 원인이 전자파 때문이라고 말하기에는 아직은 무리가 있다"고 했다.

기지국 중계기를 설치한 해당 이동통신사 관계자는 "대구전파관리소에서 측정했을 때는 정부가 설정한 기준치를 넘어가지 않았다. 하지만 기지국 중계기 설치 이후 질병에 관한 민원이 지속적으로 들어올 경우에는 기지국 중계기 안테나의 높이를 좀 더 올리거나 다른 곳에 재설치하는 등 다른 방안을 강구할 것"이라고 말했다.

이화섭기자 lhsskf@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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