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일 오후 3시 10분. 장미혜(가명'38'여) 씨는 어린이집에 갔다가 오는 딸 소윤(6'여)이와 아들 기형(5'이상 가명)이를 데리러 나갔다. 아이들이 들어오자 조용했던 집은 금방 시끌벅적해졌다. 소윤이와 기형이는 엄마와 얘기하는 취재진이 신기한 듯 왔다갔다하며 많은 관심을 보였다. 장 씨는 "집에 손님이 오는 경우가 거의 없어 누군가 오는 것 자체로 신기해하고 반가워한다"고 했다. 그러나 아이들의 밝은 모습과 달리 아이들을 바라보는 장 씨는 불안해 보였다. 전 남편의 전화가 언제 걸려올지 몰라서라고 했다.
◆공포의 전화
"남편과는 2년 전 이혼했어요. 만날 술 먹고 들어와 집에 있는 가재도구 때려 부수고 거치적거린다며 아이들에게 마시던 소주병도 던졌습니다. 더는 같이 살 수가 없었습니다."
장 씨는 6년 전 부산에서 일할 때 친구의 소개로 남편을 만났다. 술도 안 먹고 건설현장에서 착실히 일하는 사람으로 소개받았다. 그러나 결혼한 후 남편은 소개받은 것과는 완전 딴판이었다. 건설현장의 작업반장인 줄 알았던 남편은 단순 일용직 건설노동자였고, 술은 하루도 마시지 않는 날이 없을 정도였다.
아이가 생기면 변할 줄 알았던 남편의 주사는 오히려 갈수록 더 심해졌다. 남편의 폭력을 온몸으로 막아도 보고 경찰을 부르기도 했지만 남편은 변화가 없었다.
그러던 중 장 씨가 이혼을 하게 된 결정적인 사건이 일어났다. 기형이를 낳고 얼마 되지 않았을 무렵 남편에게 기형이를 잠깐 봐 달라고 부탁하고 소윤이를 데리고 잠시 외출하고 돌아왔는데 술 취해 잠들어 있는 남편 옆으로 기형이가 알사탕을 삼켰는지 기도가 막혀 숨을 헐떡이고 있었던 것. 장 씨는 "더 참고 있다가는 아이들이 위험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고 말했다.
문제는 남편이 이혼한 사실을 받아들이지 않고 있다는 것과 아이들에게 '엄마'아빠가 헤어졌다'고 말하지 못하고 있다는 것이다. 남편과는 이미 남남이지만 툭하면 전화를 걸어 "집으로 찾아가 한 명씩 죽여버리겠다"고 협박해 장 씨는 매일같이 두려움에 떨고 있다. 경찰에 신고할까 생각도 해 봤지만 보복이 두려워 그만뒀다. 아이들이 가끔 "아빠 어디 있어?"라고 물어볼 때마다 장 씨는 "아버지는 멀리 돈 벌러 가셨다"고 둘러댄다.
◆ 생계 발목 잡는 천식
장 씨의 몸무게는 100㎏에 육박한다. 소윤이를 낳은 뒤 두 달 만에 기형이를 가지면서 산후조리를 제대로 못한데다 남편의 폭력으로 스트레스를 받아 몸이 불었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아파트에서 살다가 2년 전 이혼하면서 연립주택으로 옮긴 뒤 천식까지 생겼다. 집 구조상 햇볕이 잘 들지 않는데다 보일러를 틀면 집안에 곰팡이가 번지기 때문이다. 임시방편으로 세제 원액을 발라 곰팡이를 없앴지만 며칠 뒤면 다시 생겨났다. 이 때문에 장 씨뿐만 아니라 두 자녀까지 감기를 달고 살게 됐다.
장 씨의 천식 증상이 더욱 심해지고 고혈압까지 겹치면서 병원에서는 바로 입원하라고 강력하게 권유했지만 아이들을 맡길 곳이 없어 입원도 할 수 없었다. 보다 못한 병원은 "약 처방을 강하게 해 줄 테니 만약 조금이라도 힘들거나 이상이 발견되면 즉시 병원으로 오라"고 했다.
천식 증상이 심해지면서 장 씨는 조금만 걸어도 숨이 차 주저앉는 일을 반복했다. 외출을 해야 할 일이 생기면 유모차를 가지고 나갔고 유모차를 끌면서 걷다가 숨이 차면 유모차에 기대어 잠시 쉬다가 다시 걷는 식으로 조금씩 이동해야 했다.
이 때문에 주변의 오해와 곱지 않은 시선도 감수해야 했다. 장 씨는 "하루는 빈 유모차를 끌고 외출을 하는데 동네의 한 할머니가 저를 '정신이 약간 이상한 여자'로 보더라. 유모차에 아이가 없는데 끌고 다니는 게 이상해 보였던 모양"이라며 "절 쳐다보는 사람들이 수군대며 흉을 보는 것 같아 외출하기도 꺼려졌다"고 했다.
장 씨는 생계와 아이들을 위해 돈을 벌고 싶은 생각이 간절하지만 천식이 가로막았다. 장 씨는 친정에서 빌린 돈과 기초생활수급대상자로 지정돼 나오는 지원금으로 하루하루 힘겹게 생활하고 있다. 친정은 장 씨가 이혼한 사실도 모르고 있다.
"식당에서 설거지 일을 잠시 한 적이 있어요. 그런데 설거지하던 중 갑자기 천식 증세가 나타나 흡입 약을 꺼내자 이를 본 사장님이 바로 일당을 쥐여주면서 '몸이 건강해지면 나오라'고 하더군요. 이러한 몸 상태에서는 전단 돌리는 일조차도 할 수 없는데 도대체 뭘 해야 할지 답답합니다."
◆아이들만이라도 건강했으면…
소윤이는 어린이집에서 알게 모르게 따돌림을 당하고 있다. '치마를 입지 않는다'는 것과 '기침을 자주 한다'는 이유 때문이다. 장 씨는 "소윤이가 어느 날 '내가 기침하면 친구들이 감기 옮는다고 옆에 못 오게 한다'는 말을 했을 때 가슴이 너무 아프고 답답했다"고 울먹였다. 소윤이에게 더 잘해주고 싶은데 어떻게 할 방법이 없어 장 씨는 늘 가슴이 찢어진다.
소윤이와 기형이는 이미 기저귀를 뗐어야 할 나이지만 잘 때 기저귀를 차고 잔다. 설사 때문이다. 장 씨는 감기를 달고 살다 보니 독한 항생제를 많이 복용하게 됐고, 그것이 아이들의 위와 장을 약하게 해 밤에 자신도 모르게 설사를 하는 것으로 보고 있다.
소윤이는 날이 추워져 찬바람을 맞으면 기침이 심해지고 심지어는 구토까지 한다. 기형이는 잘 때 코로 숨 쉬는 걸 힘들어해 깊이 잠들지도 못한다.
장 씨도 천식을 앓고 몸이 불어나면서 누워서 잠을 자지 못한다. 누워서 자면 호흡이 곤란하기 때문이다. 장 씨의 잠자리는 냉장고 옆이다. 냉장고에 기대 잠깐씩 눈을 붙이다 깨는 일상을 반복한다.
그래도 장 씨는 아이들을 위해서라도 어떻게든 살아보려 안간힘을 쓰고 있다.
"며칠 전에 너무 숨이 차 냉장고에 기대 쓰러지다시피 하며 앉았는데 소윤이와 기형이가 절 보고 쪼르르 달려와서 소윤이는 제 다리를 주무르고 기형이는 부채를 가져와 부채질을 하더라고요. 이러는 아이들을 보고 어떻게든 살아야겠다고 이를 악물어도 어떻게 살아야 할지 방법이 떠오르지 않아 막막합니다."
이화섭기자 lhsskf@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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