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경북의 끝-道界마을을 찾아서] <16>경북 경남이 한마을 부례마을·모로티마을

고령·합천 "우리사이 경남북 경계 무의미…농삿일도 품앗이"

길 왼쪽은 경북 고령군 덕곡면 옥계리이고, 오른쪽은 경남 합천군 야로면 나대리인 도계마을 모로티마을.
길 왼쪽은 경북 고령군 덕곡면 옥계리이고, 오른쪽은 경남 합천군 야로면 나대리인 도계마을 모로티마을.
집의 본채(갈색지붕)는 경북, 화장실(길 오른쪽 조그만 건물)은 경남인 고령군 덕곡면 옥계리 구원댁 할머니집. 이 마을 김원출 할아버지가 설명을 하고 있다.
집의 본채(갈색지붕)는 경북, 화장실(길 오른쪽 조그만 건물)은 경남인 고령군 덕곡면 옥계리 구원댁 할머니집. 이 마을 김원출 할아버지가 설명을 하고 있다.

고령군은 미숭산과 만대산 정상 능선을 중심으로 경상남도 합천군과 도계를 이루고, 동쪽은 낙동강이 군내 4개 면을 우회하면서 대구 달성군과 경계를 이루고 있다.

가야산 계곡을 상류로 하는 회천과 소가천이 각각 운수'덕곡면을 통과해 고령읍 본관리에서 합류하고, 경남 가야산에서 쌍림면을 통과한 안림천과는 고령읍 동남 하부지역에서 다시 합류, 낙동강으로 이어진다. 88올림픽 고속도로가 군의 동서를, 중부내륙고속도로가 남북을 관통하면서 고령읍을 중심으로 사통팔달로 펼쳐져 경북 남부교통의 요충을 이루고 있다.

◆고령 전통장을 후끈 달구는 건 경남사람

고령군의 도계는 합천군을 빼놓고는 이야기가 되지 않는다. 고령군 총 둘레 150여㎞ 중 3분의 1인 50여㎞가 합천군과 접경을 이루고 있기 때문이다. 8개 읍면 중 고령읍과 덕곡'쌍림'우곡면 등 4개 읍면이 경상남도 합천'창녕군과 이웃해 있고, 쌍림면이 도계의 대부분을 차지하고 있다. 이 같은 지리적 상황으로 인해 주민들의 생활 곳곳에서 고령이면서 합천이고, 합천이면서 고령인 모습을 어렵지 않게 볼 수 있다.

이달 14일 고령 전통장날. 고령군청 앞에 정차한 시외버스에서는 보퉁이와 농산물 꾸러미를 든 한 무리의 장꾼들이 내렸다. 이들의 발걸음은 곧장 고령 전통장으로 향했다. 이 버스는 합천군의 가야면과 야로면을 지나왔다. 대부분이 경남 사람인 것이다.

시장은 몰려든 상인과 장꾼으로 왁자지껄했다. 값을 더 깎아달라는 소비자와 밑지고 판다는 상인들의 밀고 당기는 흥정이 곳곳에서 벌어졌다. 건어물전에서는 낙지 한 마리를 두고 한 할머니와 상인의 실랑이까지 벌어졌다. 할머니는 "영감 제상에 얹을 거야. 2만원에 이놈으로 줘. 고령전통장이 싸다길래 야로에서 왔는데 이것도 안 깎아줘"라며 떼를 썼고, 상인은 "아이고 할매, 그래마 나는 뭐 묵고 사노. 내 차비는 빼 주께"라며 너스레를 떨었다.

합천 쌍책면에서 왔다는 김점득(72) 할머니는 "김장거리 양념과 젓갈을 사러왔는데 아직은 물건도 시원찮고 비싸네. 다음 장에 다시 와야겠다"며 손자를 준다며 땅콩만 두 되를 샀다.

가야면에서 온 서원수(70) 할머니는 친정이 고령 덕곡면이다. 지금이야 차로 재 하나만 넘으면 시댁과 친정이 지척이지만 50년 전 시댁으로 갈 때는 가마를 타고 하룻길을 족히 갔다고 했다. 서 할머니는 "그래도 바로 옆이 친정이란 생각에 서럽지는 않았다"고 회상했다.

이처럼 고령 전통장은 합천과 고령사람이 경남북에 관계없이 얼굴을 맞대며 사람냄새를 피우고 있다. 고령 전통장의 상인과 장꾼의 30%가량은 경남사람이고, 합천 전통장은 그 반대다.

고령 쌍림면과 합천 쌍책면은 마주하고 있다. 그래서 두 지역을 잇는 길 이름도 쌍쌍로다. 고령 딸기가 한창일 때는 쌍쌍로를 따라 펼쳐진 딸기판매점의 달콤한 향기에 이끌리다 보면 발걸음은 어느새 도계를 넘게 된다. 도 경계에 사는 개진면 평야지 사람들이 합천 덕곡면 사람들과 품앗이로 농사를 짓는 것은 놀랍지도 않은 풍경이다. 다산면은 달성군 화원읍, 성산면, 논공읍과의 경계에 있어서 사실상 대구 생활권이다.

◆서슬 퍼런 밀주'소나무 땔감 단속도 피해가는 부례마을

17가구가 사는 부례마을은 경북 고령군 쌍림면 산주리 부락이자, 경남 합천군 야로면 정대리의 마을이기도 하다. 마을 안길이 도계인 이곳의 새 주소는 그래서 경남'북에 상관없이 산주부례길 ○○호이다. 옛날 이 마을에서 보기 드문 열녀가 났고, 그 예의가 돋보여 모든 사람의 모범이 된다 하여 도울 부(扶), 예도 례(禮)자를 써서 扶禮라 한단다.

부례마을에는 도계와 관련해 재미있는 이야기가 있다. 불과 20~30년 전만 해도 빈번했던 세무서의 밀주 단속과 산림청의 소나무 땔감 단속에 관한 이야기인데, 이 마을 전쌍근(80'고령 쌍림면) 할아버지가 구수하게 들려준다.

"지금부터 50년 전쯤이었어. 합천세무서에서 대대적인 밀주 단속을 나왔어. 얼마 전까지만 해도 농촌에서는 각자가 술을 담가 먹었는데, 우리 마을도 다를 바가 없었거든. 주위 마을에서는 대부분 단속이 됐는데, 희한하게 우리 마을은 항상 한두 집만 단속이 돼. 왜 그런 줄 아나. 단속반이 오면 맨 먼저 단속된 집에서 "아이고, 합천세무서(1962년 폐쇄)에서 술 단속 나와 누룩포대를 거름더미에 다 들이부었다" 하고 고함을 치거든. 그럼 경남 쪽 집에서는 담가놓은 술과 누룩 등을 길 건너 경북의 이웃집으로 옮겨. 그럼 그만이지. 경남에서 나온 단속반은 뻔히 보고서도 단속을 못 해. 경북에서 단속 나오면 그 반대로 해."

1935년 7월 6일 동아일보는 합천발로 "경남 합천세무서에서는 지난 25일부터 9일간 관내 밀주자 취체(단속)로 서원이 총출동으로 각 방면에서 검거한 건수가 삼백여 건에 달한다 하며 제일 우심한 곳은 동군 적중면 권혜1동에서 검거된 건수만 25건이나 된다 한다"고 보도했다. 이로 미루어 부례마을이 밀주단속을 피할 수 있었던 것은 도경계에 위치한 엄청난 지리적 혜택(?)이 아닐까 싶다. 이는 소나무 땔감 단속에서도 마찬가지였다.

마을 앞 정자에서 전 할아버지의 이야기가 무르익을 즈음, 할머니 네 분이 모여들었다. 맞춘 듯 고령 쌍림 두 분과 합천 야로 두 분이다. 그중 동서간이 있었는데, 손윗동서인 이금향(78) 할머니는 경남, 아랫동서인 한일순(73'전 할아버지 처) 할머니는 경북이다.

전 할아버지는 형님인 전인근(2009년 작고) 씨와 부례마을에서 나고 자랐다. 일본으로 같이 돈을 벌러 갔고, 또 같이 돌아와 이곳에서 결혼하고 정착했다. 새 주소가 형님 집은 산주부례길 45호, 전 할아버지 집은 산주부례길 46호다. 길을 사이에 두고 대문을 마주 보고 있는 이들은 형님은 경남 사람, 동생은 경북 사람으로 지금까지 살고 있다.

◆본채는 경북, 화장실은 경남인 모로티 마을

모로티마을은 고령군 덕곡면 옥계리와 합천군 야로면 나대리의 주민들이 모여 있는 마을이다. 300여m의 마을길 좌우로 경남'북으로 나눠진 이 마을은 도경계가 있어 경남북이지 그냥 한마을이다.

이곳의 구원댁(92) 할머니 집의 본채는 경북이고, 화장실은 경남이다. 이 마을 김원출(84) 할아버지는 "이 집 화장실이 이 자리에 있는 것은 한국전쟁 전부터다. 그때는 길도 없었고, 집에 딸린 마당 귀퉁이였는데, 이후 길이 생기면서 집과 떨어져도 계속 사용하고 있다"고 말했다.

구원댁 할머니 집을 배경으로 전해지는 얘기는 도경계가 얼마나 재미있는 스토리를 만드는지를 잘 보여준다.

경북 청도에 사는 김호출(가명) 씨가 고령 덕곡면 옥계리 친구에게 일 때문에 전화를 했는데, 친구의 아들이 전화를 받았다. 김 씨는 아버지 친구라며, '집에 계시는가'를 물었고, 친구 아들은 '합천 야로로 볼일을 보러 가셨다'고 대답했다. 이에 김씨는 아버지가 집에 오면 전화해 달라는 부탁을 하고는 전화를 끊었다. 친구가 합천 야로에 볼일을 보러 갔으니 한나절은 지나야 연락이 올 것으로 생각한 김 씨는 들에 나갈 요량으로 방을 나섰다. 한데 방문을 닫기도 전에 전화벨이 울렸고, 수화기에선 친구의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이에 김 씨는 "야로에 볼일 보러 갔다더니만 집에 있었구먼" 하고 물었다. 그런데 친구는 "아닐세, 야로에 가서 볼일 보고 왔네"라고 했다. 그리고는 "우리 집 화장실이 경남 합천 야로에 있으니, 야로에서 볼일 본 것 아닌가" 하고 대답해 두 사람이 박장대소했다는 것이다. 이 이야기가 사방으로 퍼지면서 "모로티 마을의 어느 (옛날식)화장실에 가면 오른발은 경북, 왼발은 경남 쪽을 딛는다"란 다소 과장된 이야기도 생겨났다.

이곳 교회에도 재미난 사례가 있다.

교회 관계자는 "지난 9월까지만 해도 교회의 전기세는 고령군에서 나오고, 이를 제외한 다른 공과금은 합천군에서 나왔다"며 "교회 건물은 합천이고, 딸린 외부 화장실은 고령"이라고 말했다.

김중근(53) 야로면 나대리 전 이장은 "마을 속에 도경계가 있어 좋은 점은 1년에 두 번 군민체전을 갈 수 있고, 양쪽의 소식을 들을 수 있는 것이고, 나쁜 점은 경북에서도 경남에서도 관심과 지원이 소홀한 것이다"고 말했다. 고령'이영욱기자 hello@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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