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 아침부터 오늘 오후 3시까지 떼어 냈는데도 또 이만큼 나오네요."
불법 현수막은 그야말로 '화수분'이었다. 전날 철거를 했음에도 1.5t 트럭을 채워 봉분처럼 쌓였다.
이달 8일 오전 7시 30분부터 대구 동구청 불법 현수막 단속반과 함께 나선 불법 현수막 철거 현장은 전쟁터를 방불케 했다.
휴일이던 일요일에도 철거에 나섰다는 단속반은 도축장에서 고기를 부위별로 절단하듯 현수막으로 다가서기 무섭게 현수막을 지탱하고 있던 노끈을 잘라냈다. 순식간에 철거하는 솜씨를 보니 철거에 이력이 난 듯했다.
이른 오전부터 불법 현수막 철거에 나선 이들은 3인 1조로 움직였다. 한 사람은 트럭 운전을 맡았고 나머지 두 사람이 불법 현수막 철거조였다. 현수막 철거조의 손놀림은 5초 만에 끝났다. 가로수 양쪽에 매달린 총 4군데의 노끈을 길이 20㎝짜리 커터칼로 툭툭 끊어 현수막 가장자리에 붙은 각목 부분을 휘휘 돌리면 철거가 끝이 났다. 4~5m 높이에 걸린 현수막을 뗄 수 있는 장대칼도 있지만 거의 쓸 일이 없었다. 광고대행사들이 불법 현수막을 다량으로 내거는 게 목적이기 때문에 가로수 사이에 많이 걸어놔서다. 이 때문에 대구 동구청 현수막 단속반이 연간 사용하는 커터날만 100개가 넘는다고 했다.
철거가 가장 난감한 곳은 주요 네거리 주변이었다. 철거를 위해 트럭을 세우면 차량 정체로 이어져 단속반의 빠른 몸놀림이 필수였다. 다량의 불법 현수막이 내걸린 곳도 골치 아프긴 마찬가지. 한꺼번에 7개씩 달려 있던 동부경찰서 옆 동부고교 인근은 '폭탄할인 혜택'이라는 제목의 아파트 분양 광고 현수막으로 폭탄을 맞았다.
단속반에서 14개월째 불법 현수막 철거 작업을 해왔다는 한 공익근무요원은 "율하동 모 아파트의 경우 홍보용 현수막이라는 명목으로 150장을 한꺼번에 내걸기도 했다"고 귀띔했다.
실제 이날도 율하동의 O아파트와 각산동 ㄷ아파트의 홍보 현수막은 이날 단속반이 수거한 전체 불법 현수막의 80%에 이를 정도였다. 한 단속반원은 "옥외광고물 관련 법에 따라 가게 앞에 붙은 현수막도 떼어 내야 하지만 아파트 분양 광고 불법 현수막이 도배돼 있어 그것만 철거하는 데도 힘에 부친다"고 했다.
과태료에 아랑곳하지 않고 불법 현수막을 내거는 광고대행사에 대응할 수 있는 기초자치단체의 수단은 철거와 과태료 부과 외에는 없는 실정이다. 구청 단속반은 휴일도 거른 채 철거 작업에 나서고 있고 광고대행사는 단속반의 눈을 피해 쉼 없이 현수막을 내걸고 있었다. '술래가 영원히 바뀌지 않는 숨바꼭질'이 계속되는 이유다.
막무가내식 불법 현수막 설치는 장소를 따지지 않았다. 구청이 마련한 지정 게시대와 지척인 곳도 불법 현수막 때문에 난리였다. 지정 게시대는 주요 목에 설치돼 있어 유동인구가 많고 사람들의 눈에 잘 띄기 때문이었다.
남철진 대구 동구청 광고물관리팀장은 "지정 게시대에 보름 동안 현수막을 합법적으로 걸어놓는 비용은 5만 원이 채 안 된다"며 "그러나 아파트 분양 광고대행사들이 한꺼번에 100개 이상 현수막을 걸어놓기 때문에 유동인구가 많다 싶으면 어김없이 내다 걸고 있다"고 말했다.
심지어 일부 가로수에는 며칠 전 떼어 냈지만 또다시 내건 것으로 보이는 불법 현수막도 발견됐다. 현수막이 걸려 있는 자리에 노끈이 5개 이상 붙어 있어 이전에도 자주 불법 현수막이 내걸렸음을 쉽게 알 수 있었다.
이날 철거된 불법 현수막은 200개 남짓. 1.5t 트럭의 절반을 채웠다. 철거했다고 일이 끝난 것은 아니다. 불법 현수막이 골칫덩이인 진짜 이유는 뒤처리 때문. 마대 자루로 만들어 재활용한다고는 하지만 결국은 소각 과정을 거쳐야 한다. 크게 현수막, 각목, 노끈 등 3가지로 구성된 불법 현수막은 현수막 부분만 마대 자루로 재활용될 뿐 각목과 노끈은 태워 없애야 한다. 각목과 노끈은 재활용한다고 해도 재차 불법 현수막 제작에 활용될 공산이 크기 때문이다.
김태진기자 jiny@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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