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기고] 이 시대의 시간강사란 무엇인가

며칠 전 우연히 대학생들의 시간강사에 대한 인식에 대해 듣게 되었다. 시간강사를 '선생'으로 대우하지도, 보지도, 취급하지도 않는다고 했다. 시간강사는 그 대학에 적을 두지는 않고 해당 과목을 강의하는 선생이다. 이제 갓 학위를 받고 강의를 시작하는 사람도 있고, 다른 직장을 구하는 과정에 있는 사람도 있으며, 다른 대학에 적을 두고 필요에 의해서 잠시 이 대학의 강의를 하는 사람도 있고, 정년퇴직을 하고 강의를 하는 사람도 있다. 그런데 인품이나 열성 또는 학문적 능력이나 발전 가능성을 떠나 오로지 '시간강사'이기 때문에 선생 대접을 못 받는다는 것은 매우 슬픈 얘기다.

필자도 30여 년 전 시간강사로 대학 생활을 시작하였다. 착각인지는 몰라도 그 당시 학생들은 나를 대하는 태도가 매우 우호적이었고 진지했으며, 적어도 무시하는 느낌을 주지는 않았다. 예전에는 한 시간만 가르침을 받아도 '선생'으로 생각하였고, 그보다 더 옛날에는 직접 가르침을 받지 않았지만 학문적으로 영향을 받고 마음속으로 존경을 하면 스승으로 모셨다. 이런 전통은 어디 가고, 시간강사를 예우하지 않는 단계가 아닌, 시간강사를 무시하는 지경에 이르렀는지.

학생들 이야기만 있었다면 이 글을 쓰지 않았을 것이다. '대학의 전임교수'들이 하는 얘기를 전해 듣고는 아연실색하지 않을 수 없었다. 전임과 시간강사 사이에는 격이 있으니, 시간강사는 전임에 대해 예우를 해야 한다는 것이 골자였다. 그 '전임'들은 필자도 잘 알고 있는, 진보적이거나 보수적인 교수들이라 알려진 사람들이다. 과연 대학의 전임과 시간강사 사이에는 계층이나 격이 있는 것일까, 시간강사가 전임에게 예우를 해야 하는 것일까.

우리나라는 아직도 유학의 풍이 남아서 예우나 인사는 '장유유서'(長幼有序)에 의지하는 경우가 일반적이다. 그렇다면 젊은 전임교수가 나이 든 시간강사에게 먼저 인사하는 것이 예의가 아닐까. 또 직위가 낮은 사람이 높은 사람에게 인사를 하거나 예우를 하곤 한다. 그러나 전임교수와 시간강사는 직위로 나누어지는 것일까? 학문 세계에서 전임교수와 시간강사 간에는 이런 구별이 없다. 인사란 먼저 보는 사람이 하는 것이지 '받는 것'은 아닐 것이다.

요즈음 대학 사회에서는 인근 학과의 전임교수도 모르고 지나는 경우가 다반사다. 교수의 수가 많기도 하고 또 교수들끼리 왕래가 줄어들기도 했기 때문이다. 어느 대학의 경우, 강의실 가까운 주차장에 시간강사들이 주차하는 것을 통제하는 곳이 있다고 한다. 전임교수는 가까운 주차장에 주차할 수 있어도 시간강사는 할 수 없다는 발상이 어디에서 나올 수 있는지 궁금하다. 이러니 학생들이 시간강사를 선생으로 보지 않는 것이리라. 또 어느 대학의 경우, 정해진 강의실을 전임교수들이 필요에 따라 바꾸어 달라는 요구를 한단다. 필요하면 절차를 밟고 시간강사에게 정중하게 부탁해야 하는 게 도리다. 그런데 사정은 그렇지 않다. 사람들은 정규직이냐 아니냐에만 관심을 많이 가지고 있다. 전임과 시간강사는 고용상태의 차이에 불과한 것인데, 사람을 평가하는 잣대로 생각하는 것은 지나친 일이다.

또 시간강사는 전임과 동업자의 관계에 있다. 함께 스터디도 하고 세미나도 하고 논쟁도 한다. 동업자가 동업자인 선생을 대우하지 않는데 다른 업종에 있는 사람 또는 일반인들이 선생을 대우하지 않는 것은 당연한 귀결이 아닐까,

전임교수들이 받는 혜택을 나누어 주자는 말은 아니다. 시간강사를 특별히 예우하자는 말도 아니다. 단지 시간강사를 선생으로 대우하고 인간으로 대접하자는 말이다. 시간강사에 대한 학생과 교수와 사회의 시각이 근심스러워 한 국악인의 유명한 문구로 이 글을 마무리한다. "시간강사는 소중한 것이여!"

서종학/영남대 국어교육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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