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호강에겐 팔공산이란 친구가 있다. 포항에서 발원해 영천과 경산을 거처 대구를 적시는 금호강의 여정을 팔공산은 묵묵히 지켜본다. 천년사찰을 간직한 팔공산은 많은 물줄기를 폭포수로 때론 계곡물의 모습으로 금호강으로 흘려보낸다. 그 강 자락엔 1천여 년 전 대구분지에서 세력을 떨친 권력자들의 무덤이 남아있다. 그리고 금호강 품에서 성장해 역사에 큰 족적을 남긴 인물들의 이야기도 함께 있다. 이제 금호강은 생태와 문화가 어우러진 공간으로 변신하고 있다.
◆금호강의 보물창고, 팔공산
영천 신녕면 치산리 수도사 옆을 흐르는 계곡물을 따라 1㎞남짓 올라가면 치산폭포가 나온다. 30m가 넘는 높이의 폭포는 층층의 바위를 타고 흐른다. 물줄기는 유연한 뱀의 몸놀림처럼 바위를 타고 내려온다. 폭포수는 치산계곡을 지나 금호강의 지류인 신녕천으로 들어간다.
116㎞ 길이의 금호강은 포항시 죽장면에서 발원해 영천시를 가로지른다. 치산폭포의 신녕천을 비롯해 고현천, 북안천과 합류한 뒤 경산을 지나 대구시 동촌에 닿는다. 대구시를 남북으로 관통하는 신천을 받아들인 강은 활 모양으로 휘면서 서쪽으로 흘러 낙동강에 합류한다.
금호강의 보물창고는 중류에 우뚝 솟아있는 팔공산이다. 대구시'영천시'경산시'칠곡군 등 4개 시'군에 걸쳐 있는 팔공산은 주봉인 비로봉(1,192m)을 중심으로 20㎞의 능선이 동서로 이어져 있다. 여름이면 푸른 숲과 시원한 물줄기가 어우러져 사람들을 끌어들이고, 가을에는 노랗고 빨갛게 물든 나뭇잎이 16.3㎞의 팔공산순환도로에 펼쳐진다.
남쪽 기슭에 자리 잡은 동화사는 팔공산의 대표 사찰이다. 493년 신라 소지왕 때 유가사란 이름으로 세워졌다가 832년 겨울철인데도 경내에 오동나무가 활짝 피었다고 해서 동화사라 이름을 고쳤다. 대웅전 앞 누각 현판에는 사명대사가 임진왜란 당시 동화사에서 승려 병사들을 지휘했다는 사실을 알려주는 문구가 적혀있다. 관봉 석조여래좌상도 빼놓을 수 없다. 높이 4m 불상의 머리 위에 두께 15㎝ 정도의 평평한 돌 하나를 갓처럼 쓰고 있어 '갓바위'라 불린다.
팔공산 자락으로 내려오면 금호강과 1㎞남짓 떨어진 곳에 고분 211기가 밀집한 대구 불로동 고분군이 있다. 1938년과 1963년 두 차례에 걸친 발굴에서 금동제 장신구와 철제무기, 토기 등이 출토됐다. 이로 미뤄 5∼6세기에 걸쳐 조성된 것으로 학자들은 추정한다. 고분군에서 1.5㎞ 떨어진 곳에 우리나라 천연기념물 제1호인 도동 측백나무 숲이 있다. 조선 유학자인 서거정(1420~1488)은 대구 10경 중 한 곳으로 측백나무 숲을 꼽았다.
◆강 따라 숨어 있는 인물 이야기
금호강을 따라 가면 우리 역사에서 두각을 나타낸 여러 인물들의 이야기를 만날 수 있다.
영천 임고면 임고천변 우항리 마을은 포은 정몽주(1337∼1392)가 태어난 곳이다. 포은은 19세 때 부친상을 당해 우항리 생가에서 1.5㎞ 떨어진 양항리 자호천변에서 시묘살이를 했다. 시묘살이를 했던 곳엔 현재 포은의 위패를 모시는 임고서원이 있다. 영천 창구동 금호강변에는 포은이 1368년 부사 이용과 함께 지은 조양각이 있다. 이후 이곳에서 조선통신사 일행을 위한 전별연을 열기도 했다. 당시 밀양 영남루, 진주 촉석루와 함께 3대 누각으로 꼽혔다.
영천 금호읍에서 대창면으로 가다보면 금호읍 원기리 마단마을이 나온다. 이곳은 고려 말 화약을 개발한 최무선(1325∼1395)의 고향이다. 최무선은 관리였던 아버지를 통해 왜구들이 자행하는 노략질의 심각성을 깨닫고 화약 개발에 몰두했다. 최무선은 화통도감을 설치하고 우리나라 최초의 로켓무기인 주화(走火) 등 18종의 화약무기를 만들었다.
대구 동구 효목동 금호강변에는 망우공원이 있다. 이곳은 임진왜란 때 전국 최초로 의병을 일으켜 왜적을 격파한 홍의장군 곽재우를 기리기 위해 조성됐다. 곽재우 동상과 함께 유품이 전시된 망우당기념관이 있다. 묘는 낙동강변의 달성군 구지면 대암리에 있다.
망우공원 주위엔 대구시민들의 안식처인 동촌유원지가 있다. 1918년 일본인들이 처음 조성했고, 광복 후 유원지로 개발돼 대구 시민의 휴식처가 됐다. 대구시는 3차 계획을 통해 나무와 어린이 놀이터, 잔디광장, 식물원, 금호강 수질 정화, 도로 등 유원지의 기반시설을 마련했다. 지난해 완공된 동촌해맞이다리는 40여 년 동안 명소였던 동촌구름다리를 대신하고 있다.
◆금호강을 시민들의 품으로
금호강은 시민들이 찾는 생태문화 공간으로 탈바꿈하고 있다.
대구는 올해 9월 낙동강 강정고령보를 시작해 경산시 경계까지 이어지는 41.3㎞의 자전거 길을 개통했다. 자전거 길 중 38㎞가 자전거 전용도로로 구성되고 12곳에 연결교량을 설치해 편의성을 높였다. 금호강도 생태하천 조성사업으로 새롭게 단장됐다. 170만㎥의 하천준설과 함께 노후 호안 27㎞를 정비하고 둔치 19곳에 테마공원을 조성했다. 축구장'야구장 등 레저 활동을 위한 공간도 만들었다. 강 한가운데 섬인 북구의 노곡 하중도 활용 방안에 대해서도 고심하고 있다. 현재는 코스모스 공원으로 시민에게 개방돼 있다. 섬 하류엔 돌을 쌓아 오리'백로 등 철새들이 쉴 수 있도록 했다.
대구 동구청은 금호강을 지나는 옛 아양철교를 관광문화 공간으로 활용하려 한다. 2008년 2월 대구선 이설 뒤 열차가 다니지 않는 철교 진입부는 숲과 벤치 등을 갖춘 공원시설로, 교량부는 전시장'전망대'노변 카페를 조성하려 한다. 교량 중간에는 갤러리와 카페를 만들려고 한다.
영천시는 신라문화권이란 특성을 살려 '신(新)화랑 풍류체험벨트'를 조성하고 있다. 566억원을 들여 화랑을 테마로 휴양 및 체험시설과 관람시설을 만든다. 산과 강에서 뛰어노는 화랑의 수련과정을 현대적 의미로 재해석해 친환경 수련 프로그램과 가족형 레저시설로 만들 방침이다. 야외체험 시설인 화랑무예공연장'국궁체험장'승마장이 들어서고, 유스호스텔을 포함해 야영장 및 캠핑장 등 가족 단위의 관광객이 쉴 수 있는 야영시설을 배치한다.
김병두 대구시 관광문화재과장은 "동서로 가로지는 금호강과 남북으로 관통하는 신천은 자전거도로로 만난다"며 "이를 통해 중심 도심권과 금호강이 연결돼 더 많은 시민들이 찾는 시너지 효과를 기대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또 "앞으로 금호강은 다른 지역의 관광자원과 연계할 수 있는 허브 역할을 하게 될 것"이라며 "동화사'갓바위 같은 자원과 농촌 체험을 할 수 있는 구암팜스테이마을, 수상 레포츠를 즐길 수 있는 봉무레포츠 공원 그리고 영천과 경산의 다양한 역사문화 자원 등을 유기적으로 엮을 수 있는 방안을 마련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글'사진 서광호기자 kozmo@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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