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사필귀정] 박근혜, 다 놓아라

이번에는 정수장학회다. 인혁당 등 역사 인식으로 위기를 겪은 박근혜 새누리당 후보가 정수장학회 문제로 다시 한 번 대선 가도에서 주춤거리고 있다. 17일 "조만간 제 입장을 (다시) 밝히겠다"고 하였으니 박 후보는 정수장학회란 터널을 곧 빠져나갈 것이다.

이걸로 끝이 아니다. 정수장학회 허들을 넘으면 또 다른 파상 공세가 이어질 것이다. 세간에서 박정희 과거사 들추기 5탄, 7탄이 기다린다는 얘기까지 떠돈다. 인혁당, 정수장학회에 이어 다음에는 1970년대 경향신문과 MBC 병합 문제가 될 수도 있고, 한강에서 죽은 채 발견된 정인숙 사건이 될 수도 있다. 경선 과정에서 웬만한 문제를 다 걸러낸 박 후보에게 타격을 줄 소재는 '평화시장에서 궁정동까지' 이어지는 아버지 박정희와 연관된 어두운 그림자일 가능성이 높다.

결론은 박 후보에 달려 있다. 박정희가 단행했던 10월 유신도, 긴급조치도 법적으로 나와 연관이 없으니 개입할 수 없다는 소극적 방어로는 민주화를 넘어선 민주화를 요구하는 요즘 민심을 잡기 어렵다. 이미 7년 전 이사장 자리에서 물러난 박 후보는 법적으로 정수장학회와는 아무런 상관이 없는 게 맞다. 그래서 야당이 아무리 씹어도, "(정수)장학회 취지가 훼손되고 있으니 이사진이 잘 판단해 줬으면" 하고 흘려듣는다.

대선을 61일 앞두고, 정수장학회가 야당의 최대 공격 거리가 되고 있는데도 "저나 야당이 이래라 저래라 할 권한이 없다"고 불개입을 고수하다가 민심 이반이 느껴지자 조만간 입장을 다시 정리하겠다고 뒤늦게 예고했다. 늘 이런 식이면 곤란하다. 민심은 박 후보만이 정수장학회 문제의 해법을 내놓을 수 있다고 보고, 박 후보가 언제 그 일을 단행하는지 기다리고 있다. 민심의 흐름보다 후보의 결단이 늦으면 '민심의 역류'를 불러일으킬 수 있다.

박 후보는 좀 더 정치적으로 유연해져야 하고, 더 가벼워져야 한다. 과거사와 관련된 문제는 다 놓아버리고, 털어버려야 한다. 그러려면 적시타를 날려야지 희생플라이만 가지고는 곤란하다. 대선 후보를 지켜보는 민심은 승리의 월계관을 씌워줄 수도, 정치계 은퇴를 요구할 수도 있는 양면성을 지녔다.

실제로 민심은 언제든지 등 돌릴 수 있음을 박 후보는 지역구에서 생생하게 경험한 적이 있다. 총선 때마다 박 후보를 전국 최고 지지율로 당선시켜 주던 달성군의 순둥이 할아버지 할머니들이 2년 전 6'2 지방선거에서는 박 후보가 공천한 한나라당(현 새누리당) 군수 후보 대신 무소속 단체장을 선택하였다. 부모를 다 여의고, 정치판에 첫발을 들여놓던 박근혜를 측은하게 보고, 바바리 주머니에 용돈을 찔러주던 그들이 맘에 들지 않는 공천자를 내자 쓴맛을 보게 했다. 선거의 여왕도 피를 볼 수 있는 게 선거판이다. 그때의 아픈 추억을 잊지 말라.

정수장학회의 내면을 들여다보면 복잡하다. 동양척식회사 부산지점에 다녔던 고 김지태가 퇴사 후 번 돈으로 창설한 부일장학회를 박정희 전 대통령이 강제 헌납받아 5'16 장학회로 바꾸었다. 당시 외환관리법 위반 혐의로 구속 상태이던 고 김지태는 부일장학회 등 기부서약서를 쓰고 풀려났다가 타계 직전까지 반환 소송을 벌였다.

82년 정수장학회로 명칭이 바뀌었고, 부일장학회 출신 고 노무현 대통령은 김지태의 100억대 행정소송 담당 변호사로 활동했다. 노 전 대통령은 과거사진실규명위원회를 통해 정수장학회를 가장 먼저 낱낱이 파헤쳤지만 법적인 문제는 없었다.

민심은 결자해지를 원한다. 아버지가 맺은 악연, 딸이 풀어주길 원한다. 대통령 박근혜를 지향한다면, 박 후보는 다산 정약용의 두 가지 기준을 중심으로 삼아서 판단해보길 바란다.

하나는 옳고 그름(是非)의 기준이고, 다른 하나는 이롭고 해로움(利害)의 기준이다. 이 두 가지 기준에서 네 단계의 등급이 나온다. 가장 높은 등급은 옳은 것을 지키면서 이익을 얻는 것이고, 두 번째 등급은 옳은 것을 지키면서 해를 입는 등급이고, 세 번째 등급은 옳지 않은 것을 추종하여 이익을 얻는 경우이고, 가장 낮은 등급은 옳지 않은 것을 추종하여 해를 입는 경우이다.

가장 높은 등급을 하기 어렵다면 두 번째 등급이라도 따야 한다. 정수장학회를 버리는 일은 몇 번째 등급일까? 박 후보, 다 버리고 가볍게 날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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