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산사랑 산사람] 사천 이구산·흥무산·성황당산

운동 삼아 오를만한 근교 산 '속살' 겪어보면 산꾼들도 등산재미 감탄

경남 사천의 명산은 와룡산이다. 와룡산의 명성에 위축되었다가 근래에 기지개를 켜고 있는 산이 있다. 아직까지 단 한 번도, 전문 산잡지에 소개되거나 조명된 적이 없는 산으로 이구산(尼丘山'378m)과 흥무산(興霧山·454.7m)이 있다.

무명의 산이 다 그렇듯 이 두 산도, 처음엔 그저 그런 도시 근교의 운동 삼아 다닐만한 산이었다. 그러다 새로운 산을 찾아다니는 전문 산꾼들에게 조금씩 그 이름이 알려지기 시작하더니 사천시에서 등산로를 정비하고 이정표를 세우고 난 후 많은 사람이 찾고 있다.

와룡산이 1,000여m에 육박한다면 이구산과 흥무산은 그 절반에도 미치지 않는다. 그러나 산은 올라봐야 아는 법. 막상 산 속으로 들면 결코 실망은 주지 않는 산이다. 아기자기한 등산로에 우거진 숲길, 그리고 조망이 여느 산들에 비해 빼어나기 때문이다.

고성 무이산에서 뻗어 나온 내맥으로 흥무산과 이구산을 차례로 솟구친 후 성황당산을 끝으로 사천평야로 내려앉는다. 사천시 정동면과 사남면을 경계하며 높이에 비해 산세가 우람하고 가파르다. 습곡(褶曲)운동 탓인지 산허리가 여러 갈래로 뻗어내려 물결처럼 형상을 이루어 마치 병풍과 같아 산의 사면이 정동면의 남쪽을 가린다.

등산의 시작점은 예수리. 사천읍내를 통과한 차량이 사천강 사천교를 지나자마자 곧바로 좌회전한다. 지방도를 따라 조금 가다보면 오른쪽에 선황사 표지판이 보이고, 그곳에서 하차한다. 포장된 아스팔트 임도를 따라 10여 분을 따르면 저수지가 보이고, 왼쪽에 등산로 표지판이 보인다.(←이구산 2.3㎞, ←성황당산 0.9㎞)

이곳에서 시멘트 임도를 따라 10여 분 오르면 오른쪽에 선황사가, 왼쪽에 성황당산성이 나타난다. 성황당산성은 일명 '고읍성'이라고도 불리는데, 고을의 중심이 되는 읍의 소재지가 산성과 가까운 정동면 고읍리에 있었기 때문에 붙여진 이름이다. 산봉우리를 둘러싼 테뫼식 산성으로 둘레 약 1,109m, 높이 3.5m의 흙으로 쌓은 성벽이 남아 있다.

테뫼식 산성이란 산 정상부를 중심으로 성벽을 두른 것으로 마치 사발을 엎어놓은 듯하다고 발권식(鉢圈式)산성, 시루에 흰 번을 두른 것 같다고 해서 시루성, 머리에 수건을 동여맨 것 같다고 해서 머리띠식 산성이라고도 한다. 대개 규모가 작은 산성이 이에 속한다.

성 안 격인 성황당산(209.8m) 주변에는 샘, 무기고, 서낭신을 모시는 성황단, 통신수단인 봉수대가 있었다고 한다. 축성연대는 정확히 알 수 없으나, 부근에서 출토되는 기와와 토기조각으로 보아 삼국시대에 쌓은 것으로 추정된다. 1993년 시도기념물 제132로 지정되었다. 산성 위에서 바라보는 사천읍내의 조망이 뛰어나다.

갈림길이 나타난다. 오른쪽으로 감아 도는 임도를 따르면 성황당산으로 산정에 단군에게 제를 올리는 단군성전 제단이 있다. 임도를 버리고 직진하면 이구산으로 가는 등산로다. 이구산까지는 약 1.3㎞로 30여 분 정도 소요된다.

이구산 산정에는 정자가 있고 조망이 광활하다. 사방을 휘돌아보면 사천읍과 사천만 일대가 한눈 아래 굽어 보인다. 맑은 날은 지리산 천왕봉과 웅석봉이 조망되는데 근교 와룡산 봉우리에는 초록이 무성하고 군데군데 암괴도 노출된다. 그 아래 예전 사수(泗水)라 일컬었던 사천강의 맑은 물도 흘러가는 게 보인다. 사수와 이구산의 지명은 중국 노(魯)나라에서 따온 이름이라고 한다.

이구산 흥무산 등산로의 포인트는 정상이 아니다. 이구산에서 흥무산으로 이어지는 주능선이 매력적이다. 다양한 등산로가 산행을 지루하게 만들지 않는다. 푸른 잎사귀는 싱싱한 기운을 불러 세파에 지친 심신에 활력을 돋우고, 군데군데 나타나는 암석이 아기자기한 등산로를 만들어 등산의 묘미를 즐기게 한다.

등산 중 최고의 조망은 이구산 정상에서 얼마 떨어지지 않은 369봉이다. 그곳에 상사바위가 있는데 천 길의 벼랑이라 한 뼘 조망이 압권이다. 멀리 새섬바위에서 부터 민재봉, 향로봉 등 와룡산의 봉우리들이 차례로 조망되고, 경지정리가 잘된 바둑판 같은 논과 어울린 지척의 구룡저수지가 정점을 찍는다.

산행 내내 아늑하고 고즈넉한 소나무 숲길이 이어진다. 철탑을 지나자 건너편으로 흥무산이 초록의 근육들로 꿈틀거리며 손짓한다. 유일한 흠이라면 산자락에 깊숙이 박혀 있는 고압선 철탑이다. 고도가 뚝 떨어지고 난 다음, 흥무산 정상을 짓치고 오를 때가 가장 힘이 든다.

이구산을 출발한 지 1시간 40여 분 만에 흥무산에 도착한다. 일명 흥보산(興寶山)이라고도 불리는데 정동면 소곡리와 사남면 종천리의 경계를 이룬다. 산자락 양지바른 곳에 성함과 쇠퇴함을 알 수 없는 흥보사지(興寶寺址)가 남아 있다. 암석들이 있는 산정에서 충분한 휴식을 취한 후 새마을도로가 있는 소산리로 향한다.

흥무산 정상에서 새마을고개까지는 30여 분이 소요되고, 입구에 등산안내도와 등산로 표시가 되어 있다. 2차로 아스팔트 도로를 오른쪽으로 따르면 10여 분 후에 삼거리에 도착하게 되고 이윽고 소산리다. 대형버스는 새마을도로가 있는 고개까지 진입이 가능하나 회차할 곳이 없다. 고개 못미처 도로 삼거리에 주차하는 것이 좋다.

대구에서 산행 시작점인 예수리까지는 2시간 정도 걸린다. 선황사 팻말이 있는 지방도에서 하차, 성황당산성·성황당산·이구산·흥무산을 거쳐 소산리까지 하산하는데 약 11㎞ 거리에 4시간 정도 소요된다.

산행 후 30분 이내 거리에 있는 삼천포 노산공원에 들러보는 건 어떨까. 삼천포 시내 중심부인 동서금동에 위치한 도시공원으로 한려해상국립공원의 아름다움을 한눈에 내려다볼 수 있다. 잘 다듬어진 잔디밭과 충무공 이순신 장군의 동상, 대중가요 '삼천포 아가씨'를 형상한 금빛 아가씨상이 바닷가에 조형되어 있다.

서정시인 박재삼 시비와 문학관도 있다. 공원 아래는 생선횟집들이 즐비하여 싱싱한 미각을 돋운다. 취향에 따라 다양한 먹거리와 사색 등 산행 후의 여흥을 즐길 수 있다.

글·사진 지홍석(수필가·산정산악회장) san3277@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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