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주통합당 문재인 대선 후보 캠프의 경제민주화 사령탑은 이정우(62) 경북대 경제학과 교수다. 참여정부의 초대 청와대 정책실장을 지낸 '친노' 핵심인사인 그는 학계로 되돌아온 뒤에도 경제민주화와 서민경제 보호를 주장하고 실천해 온 대표적인 진보경제학자로 꼽히고 있다.
참여정부 초기, 청와대에서 문 후보와 함께 일하면서 '의기투합'했고 문 후보가 대선 후보가 되자 그를 위해 전면에 나섰다. 이 위원장은 자신이 캠프의 전면에 나설 경우 '친노' 색깔이 두드러질 수 있다는 정치적 부담 때문에 무소속 안철수 후보 캠프로 간 장하성 교수 영입에 공을 들였지만 여의치 않자 직접 나설 수밖에 없었다고 설명했다.
참여정부 당시 노무현 전 대통령이 추진한 한미 FTA에 대해 강력하게 반대했던 '소신파'였던 그는 문 후보의 경제민주화위원장으로 자리 잡은 후에도 한미 FTA에 반대한다는 입장을 거듭 밝히고 나서 주목을 받고 있다. 그를 만나 문 후보의 경제민주화에 대한 구체적인 정책 방안과 참여정부에 대한 평가, 및 '남부권 신공항' 등에 대한 입장을 들었다. 이 위원장은 특히 신공항 건설의 필요성을 강조하면서도 영남 외의 다른 지역 여론을 통해 신공항 입지를 결정하자는 독특한 해법을 제시, 눈길을 끌었다.
-문 후보 캠프의 경제민주화위원장은 사실상 제1야당 대선 후보의 정책사령탑이다.
"경제민주화 관련 정책의 책임을 지게 됐다. 다른 후보 측에서 구체적인 청사진을 제시하지 않고 있지만 저는 종합적인 계획을 갖고 있다. ▷재벌 문제와 ▷재벌과 중소기업 관계, 거기엔 골목상권이 포함돼 있다. ▷노동 민주화라고 해서 노사관계와 비정규직 문제. 이것은 아주 고질병이고 우리 경제의 도약을 위해 반드시 해결돼야 할 문제다.
이와 더불어 지금껏 무시돼 온 풀뿌리 경제조직인 아주 작은 그러나 생명력 있는 협동조합과 사회적기업 같은 민주적 소기업들을 많이 만들어내는 것, 이런 것도 경제민주화의 중요한 사안이다."
-참여정부 초기 정책을 책임졌다. 참여정부의 주요 과오로 한미FTA 추진과 경제양극화가 꼽히고 있는데.
"(참여정부에서)양극화가 심화됐다고 하는데 더 많이 나빠진 것이 아니라 개선을 못 한 책임이 있다. 재벌의 경제력 집중을 막지 못했고 비정규직이 급격하게 늘어나는 것을 막지 못했다. 이 두 가지에 대한 대책이 미흡했다. 그 점을 반성하고 있다.
한미 FTA가 문제인데 FTA 자체는 나쁘지 않다. 한미 FTA는 심층통합으로 가는데 '투자자국가제소제'(ISD)를 무기로 해서 우리나라의 경제 정책과 제도, 법률을 다 간섭하게 된다. 그러면 우리나라가 미국식, 영미식 모델로 끌려들어 가게 되면서 경제민주화와 복지국가로 갈 수 없게 된다. 그래서 문제가 있다는 것이다.
참여정부에서 부동산 문제가 많은 민심이반을 가져왔는데 이에 대해서도 설명이 필요하다. 참여정부가 정책을 잘못한 것은 아니다. 실제로는 그 몇 년 전부터 부동산이 슬금슬금 움직이고 있었다. 부동산 경기 급등의 계기는 경제관료들이 주도한 부동산 규제의 전면적인 완화였다. 당시 규제란 규제는 다 풀었다. 참여정부가 한 것이 아니다. 그 전 정부(DJ정부) 경제관료들의 작품이다. 당시 건설경기 조금 살리고 성장률을 좀 높였겠지만 그 피해는 고스란히 참여정부가 덮어썼다. 실상이 그렇다.
참여정부는 어느 정권보다 원칙에 맞게 했고 종부세를 처음으로 도입했다."
-노 전 대통령은 어차피 통상국가로 간다면 먼저 개방하는 것이 살길이라고 생각하고 한미 FTA를 추진한 것 아닌가.
"당시 '너트크래커(nutcracker)론'이 유행했는데 이는 한국이 호두까기 기구에 끼인 호두처럼 선진국과 중국 등 후발개도국 사이에 끼어 협공을 당하게 될 것이라는 위기감이 많이 있었다. 그것을 돌파하겠다는 생각에서 한미FTA를 추진하게 된 것 같다. 당시 여러 사람이 노 전 대통령의 등을 떠민 것 같다. 제가 알았을 때는 한참 지난 뒤였다. 걱정이 돼서 여러 사람과 함께 찾아가서 말렸는데 이미 늦었고 생각이 확고하더라.
저는 지금도 한미 FTA 추진은 잘못이라고 생각한다. 문제는 당시 이를 반대할 만한 사람이 (청와대) 안에 아무도 없었다는 것이다. 개혁파로서 제가 마지막에 나온 사람이다."
-문 후보가 집권한다면 다음 정부는 참여정부를 승계하는가.
"그렇다. 다만 그때 많은 시행착오를 겪고 실패를 경험했으니까 참여정부보다는 잘해야 한다. 재벌개혁이 미진했고 비정규직을 너무 오래 방치했고 한미 FTA 추진, 이 세 가지가 대표적인 경제정책의 실패라고 본다."
-재벌개혁의 핵심은 무엇인가.
"제일 중요한 것은 대기업과 중소기업의 관계다. 중소기업은 억울해도 항변을 못 한다. 항변하면 밥줄이 끊긴다. 이런 것을 정부가 나서서 공정하고 차별 없는 그런 관계로 만들어줘야 한다, 그래야 많은 중소기업이 성장해서 혁신기업으로 올라가고 벤처기업도 많이 생기고 협동조합이나 작은 민주적 기업이 자라 중산층을 형성하게 된다. 중소기업과 골목상권은 주인에게 돌려주고 대기업은 세계와 경쟁하도록 해야 한다.
재벌의 황제경영도 문제다. 1인 지배체제는 일종의 경제적 독재다. 소유지배구조를 개선하고 순환출자의 고리를 끊어야 한다. 금산분리를 엄격하게 하고 출자총액제도 부활해야 한다."
-안철수 후보가 제시한 청와대 이전 등의 정책에 대해 비판하고 나섰다.
"한 방송에 출연했는데 갑자기 대통령의 사면권과 청와대 축소에 대해 물었다. 잘 모른다고 할 수도 있었지만 그렇게 하지 않고 대답했다. 그것을 마치 두 캠프 사이에 알력과 갈등이 있다고 보기도 하는데 그것은 전혀 아니다. 정책 경쟁은 해야 한다. 다만 인신공격을 해서는 안 된다. 정책에 대해서는 견해가 다를 수 있으며 건설적인 토론은 있어야 한다."
-직업관료(공무원)들을 어떻게 보는가.
"관료는 정말 유능하고 헌신적이다. 일요일에도 일하라면 나오고 아는 것도 많다. 다만 개혁성이 부족하고 너무 조심성이 많아서 잘 바꾸려고 하지 않는다. 관료들의 능력은 활용하되 그 사람들에게 전권을 주면 안 된다. 큰 방향은 민간 부문과 시민사회의 다양한 목소리를 들어서 대통령이 잡아야 한다. 그런 점에서 대통령이 임명하는 수많은 자리에 각계각층의 개혁적인 사람이 자리를 잡도록 해야 한다. 그것을 (안 후보가) 포기한다는 것이 너무 안타까워서 지적하게 된 것이다. 대통령제의 장점이 바로 그것이다. 1만여 명에 이르는 대통령이 임명하는 자리가 개혁의 원동력이다. 우리는 아직도 개혁이 필요하고 그것을 위해서라도 대통령제가 필요하다."
-이 정부는 갈등조정에 능숙하지 못하다. 그런 점에서 남부권 신공항을 둘러싼 갈등을 대표적인 사례로 볼 수 있다.
"참여정부와 MB정부를 비교해보면 많이 다르다. 그중의 하나가 사회적 갈등을 처리하는 방식이다. 참여정부는 토론과 대화를 굉장히 많이 해서 심지어 '토론공화국'이라는 비아냥까지 들었다. 천성산터널, 사패산터널, 핵폐기장문제와 화물연대 파업 등 사회갈등이 숱하게 많았는데 그때마다 끈기를 갖고 대화를 했다. 그런 노력이 이 정부에선 보이지 않았다.
남부권 신공항에 대해서는 저도 관심 갖고 보고 있다. 분명한 것은 우리나라와 같은 인구와 경제규모를 갖고 있는 나라에서는 인천공항 외에 영남지역에 국제공항 하나 정도 더 필요하다. 밀양과 가덕도를 둘러싸고 싸우고 있는데 각각 장단점이 있다. 이 문제는 전문가패널을 만들어 충분히 토론하고 맨 마지막에 영남지방을 제외한 나머지 다른 지방 국민들의 판단에 맡기는 것이 어떨까. 영남 안에서 풀지 말고 영남 밖에서 판단하도록 해서 승복하도록 하는 방안이다. 인구비례로 표본을 추출해서 제3자 위치에서 판단하도록 하는 것이 좋겠다."
-새누리당 일변도의 지역 정치 성향은 어떻게 생각하는가.
"대구가 원래 진보적인데 지금은 보수의 고장이 돼 있다. 환골탈태해야 한다. 너무 오랫동안 1번 새누리당만 지지하니까 다양성이 없고 다른 목소리는 들리지 않는, 한 목소리밖에 없다. 견제가 되지 않고 관성으로 굴러간다. 이번 대선이 계기가 됐으면 좋겠다. 박근혜 후보가 당선되든 안 되든간에 박 후보는 대구로서는 마지막이다. 박근혜 이후를 모색해야 한다.
이번에 박 후보가 떨어지면 정계 은퇴해야 되지 않을까 예상된다. 박 후보가 당선되더라도 대구경북으로서는 오랫동안의 염원이 실현되는 것이니까 한 고개를 넘는 것이다. 그 이후에는 무조건 1번을 고집할 필요가 없게 된다. 여러 목소리를 내는 다양한 정당이 공존하는 도시가 되어야 한다.
2년 후 대구시장과 경상북도지사 등 지자체장 선거와 그 2년 후 총선이 있는데 이 두 차례의 선거에서 새 인물이 많이 나와서 정말 컬러풀(colourful)한 대구로 바뀌었으면 좋겠다. 저는 대구 사람이라는 것에 자부심을 느끼고 있다. 대구의 기질이 원래 야성적이고 반골인데다 의리가 있어서 매력이 있다. 지금은 그런 장점은 잘 안 보이고 오로지 보수성만 드러나서 답답하고 정체된 느낌을 주고 있다. 우린 너무 칙칙한 옷을 오래 입고 있다."
서명수 서울정경부장 diderot@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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