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점심시간 운동장 아닌 교실이 북적 "폰 놀이가 최고"

'손 안의 세상' 스마트폰이 바꾼 학교 풍경

파호초교 학생들이 스마트폰을 이용해 신문기사를 검색하고 있다.
파호초교 학생들이 스마트폰을 이용해 신문기사를 검색하고 있다.
대구 달서구 파호초교의 한 학생이 교실에 마련된 바구니에 휴대전화를 보관하고 있다.
대구 달서구 파호초교의 한 학생이 교실에 마련된 바구니에 휴대전화를 보관하고 있다.

최근 찾은 대구 수성구의 한 초등학교 운동장. 점심시간인데도 넓은 운동장이 텅 비어 있다. 몇 해 전까지만 해도 매 교시가 끝나면 헐레벌떡 뛰어나와 놀다 수업 시작종에 맞춰 교실로 들어가는 아이들이 많았고 점심시간이면 서로 자리를 차지하려는 아이들로 늘 만원이었다.

웬일인가 싶어 점심을 먹고 급식소를 썰물처럼 빠져나가는 아이들을 뒤따라 가봤다. 운동장에서 축구와 야구를 하는 몇몇 아이들을 제외하고는 대부분이 그대로 교실로 향한다.

교실 안은 점심시간인데도 떠드는 아이가 없을 정도로 비교적 조용한 분위기다. 시험기간인가? 자세히 보니 학생들의 손에는 하나같이 스마트폰이 들려있고 무언가에 열중하고 있다. 스마트폰이 없는 아이들조차 화면이 넓은 스마트폰을 가진 아이를 중심으로 모였다. 교실 한 켠에 마련된 콘센트에는 주렁주렁 검은색 케이블이 난마처럼 엉켜 있다. 수업 때나 쉬는 시간을 가리지 않고 스마트폰을 충전하려는 학생이 꽂아 놓은 충전기들다. 교실 뒤나 교탁, 심지어 TV나 컴퓨터, 선풍기 콘센트까지 여기저기 널린 케이블이 칡덩굴 같다.

2012년 10월. '손 안의 세상'이라는 스마트폰이 바꿔 놓은 학교 풍경이다.

◆학교는 스마트폰과 전쟁 중

'스마트폰 사용자 3천만 시대'. 스마트폰이 어린이들까지 빠르게 보급되면서 역기능도 커지고 있다. 분실'도난'게임'왕따 등 문제가 불거지면서 학교는 지금 스마트폰과 전쟁 중이다.

대부분 초등학교는 등교 때 교사에게 휴대전화를 맡기도록 하고 있지만 제대로 지켜지지 않는 일이 많다. 더구나 고가의 스마트폰이 일반 휴대폰과 함께 보관되다보니 흠집이 나거나 파손되는 사례가 잦아 제출을 꺼리는 일이 다반사다. 사정이 이렇다보니 수업시간에 문자나 게임 등을 하다 발각돼 압수당하는 일도 심심찮게 생긴다.

달서구에 있는 한 초등학교 교사는 "스마트폰을 잃어버렸다며 하소연하는 아이들이 종종 발생한다. 심지어 누군가 몰래 훔쳐간 것이라면서 도둑을 잡아 달라고 떼쓰는 학생도 간혹 있다"고 했다.

수업시간이라고 다르지 않다. 스마트폰을 과도하게 사용해 수업에 차질을 빚는 경우가 잦다. 수업시간에 학생들이 집중하지 않고 스마트폰만 만지고 있기 때문이다. 책상 아래로 눈치를 보면서 몰래 스마트폰을 사용하는 학생이 있는가 하면 당당하게 대 놓고 사용하는 학생들도 많다. 그래도 이 정도는 애교 수준이다. 최근에는 스마트폰을 이용해 컨닝을 하는 학생들이 많아 문제를 더욱 키우고 있다. '스마트폰을 이용해 컨닝하는 것을 목격했다'는 한 학생은 "간혹 시험 감독을 허술하게 하는 선생님이 있는데 일부 학생들이 스마트폰 검색으로 시험 답안지를 작성하는 것을 봤다. 공부도 안 한 학생들이 밤새 공부한 나보다 더 좋은 점수를 받을 수 있다는 생각을 하니 공부하기가 싫어진다"고 억울해 했다.

학교는 마땅한 방안이 없어 골머리만 앓고 있다. 이미 생활 필수품으로 여겨지는 데다 지난 3월 학생인권조례가 본격 시행되면서 학교가 아이들의 스마트폰 소지를 원천적으로 제한하기는 어렵게 됐기 때문이다. 지난달부터는 스마트폰 등 휴대폰 소지 등과 관련한 교칙규정을 학교와 교사'학생이 정하도록 돼 있다.

◆새로운 왕따'학교 폭력 수단

더 큰 문제는 어느 순간부터 스마트폰이 학생들 사이에서 친구를 왕따시키는 수단으로 악용되고 있다는 점이다. 주로 스마트폰에서만 사용할 수 있는 카톡(카카오톡)을 통해 왕따를 시키는데 방법도 다양하다. 피해 학생을 카톡방으로 초대해 단체로 욕설을 퍼붓거나 굴욕적인 사진을 공개하는 것은 고전에 속한다. 피해 학생을 카톡방으로 초대한 뒤 여러 사람이 무조건 무시하는가 하면 피해 학생이 건네는 말에는 아무도 대답하지 않다가 다른 학생이 말을 걸면 열광하듯 대답을 해줌으로써 왕따임을 공개적으로 확인시키는 방법이 주로 사용된다. 또 피해 학생을 카톡방으로 초대한 뒤 한꺼번에 나가버려 피해 학생만 카톡방에 남게 해 혼자 고독을 즐기게 하는 방식도 자주 쓰인다.

최근에는 피해 학생이 카톡방에서 빠져나갈 수 없도록 계속해서 '초대하기'를 해 괴롭히는 방법도 등장했다. 일명 '카톡감옥'을 만들어 괴롭히는 것이다.

이처럼 친구를 괴롭히는 데 스마트폰이 이용되는 것은 (친구를 괴롭히기가) 편리하기 때문이다. 방과후 과외공부 등으로 서로 만날 기회가 적은 아이들에게 굳이 얼굴을 보지 않아도 대화방 하나만 만들면 언제 어디서든 손쉽게 특정인을 괴롭힐 수 있기 때문이다.

김가영(15) 양은 "요즘 교실에서 친구에게 욕을 하다 걸리면 학교생활기록부에 기록이 될 수도 있기 때문에 교실에서 대놓고 괴롭히기는 쉽지 않다. 대신 스마트폰을 이용해 언제 어디서든지 왕따를 만들어 괴롭힐 수 있다"고 했다.

스마트폰이 학교폭력의 새로운 도구로 자리 잡고 있는 셈이다. 특히 카톡은 전화번호나 이름 없이 '아이디'만 있어도 친구를 추가할 수 있고, 굳이 '친구 추가'를 하지 않아도 대화방에 한꺼번에 초대해서 익명으로 괴롭힐 수 있어 새로운 왕따 시키기의 수단으로 악용되고 있다.

◆스마트폰 계급사회

'어떤 스마트폰을 갖고 있느냐'에 따라 학생들의 신분(?)이 결정되기도 한다. 예전에 공부 잘하는 순으로 대접을 받았다면 최근에는 가지고 있는 스마트폰의 종류에 따라 친구들 사이에 서열이 정해지기도 한다. 고가의 최신 스마트폰을 갖고 있을수록 서열이 높은 아이로 대접받는다. 좋은 집이나 자동차가 어른들의 계층을 나눈다면 아이들의 계층은 스마트폰 기종으로 나뉘는 셈이다.

가장 높은 서열의 스마트폰을 '임금'으로 칭하고 밑으로 '세자' '3정승' '평민' '서얼' '노비' 등 12개 서열이 있다. 얼마 전까지 갤럭시 S3 LTE를 소유한 아이가 최고였다. 서열 2위는 갤럭시 S3와 베가 S5다. 스마트폰에 가입한 학생들 대부분이 가입한 지 2년이 되지 않기 때문에 의무가입 기간 2년이 끝나기도 전에 최신품인 갤럭시 S3를 가진다는 것은 부러움의 대상이었다. 그러나 이달들어 '옵티머스 G'가 최고자리를 차지했다. 신형 스마트폰이 출시될 때마다 서열이 뒤바뀐다.

다만, 수입 스마트폰인 아이폰은 서열에서 제외된다. 대부분의 학생들은 아이폰을 사용하지 않기 때문이다. 삼성과 애플의 '특허 전쟁' 때문에 애국심이 발동했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근본적으로는 부모들이 선호하지 않아서다. 아이폰은 고장 때 수리가 어려운 데다 구입 시 보조금이 국내 제품에 비해 상대적으로 낮은 편이다.

대구 수성구 동원초교 최정윤(12) 양은 "학교에서는 갤럭시 S2가 대세다. 그러나 누가 갤럭시 노트를 가져오면 솔직히 모두 부러워한다. 최근 아빠에게 갤럭시 노트를 사달라고 조르고 있다"고 했다.

최근에는 '신분 상승'을 노리는 학생들 사이에 '스마트폰 계'를 조직하기도 한다. 낮은 서열에 속하는 계급의 스마트 폰을 소유한 아이들이 신제품 구매를 위해 돈을 함께 모아 한 명에게 몰아주는 현상까지 발생하고 있는 셈이다.

전문가들은 인터넷 윤리 조기 교육이 스마트시대에 더 절실하다고 강조한다. 대구시 교육청 김종협 장학사는 "어린 학생들이 친구들을 왕따시키거나 죄 의식 없이 악성 댓글을 재미삼아 작성하는 것은 제대로 된 인터넷 교육이 이뤄지지 않고 있기 때문이다. 학생들을 대상으로 인터넷 윤리 교육의 필요성이 절실하다"고 지적했다. 글'사진 최창희기자 cchee@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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