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재를 핑계로 지역 청년들을 자주 만난다. 대구를 떠나려는 청년들이 적잖다. 그들이 말하는 이유는 대략 세 가지로 요약된다. 하나는 일자리가 부족해서란다. 또 하나는 다양한 경험을 할 수 없어서란다. 마지막으로 막연히 지루하고 답답해서란다. 세 가지 이유를 한 문장으로 요약하면? 지역에는 청년들이 자유롭게 청춘을 쏟아 부을 '판'이 없다고 한다.
그런데 최근 스스로 판을 만들겠다고 나선 청년들이 있다. 청년들끼리 소통하고 공감하는 문화의 장(場)을 만들겠다는 것. 그러면서 잘 만든 '메이드 인 대구' 문화 콘텐츠를 대구 바깥으로 널리 퍼뜨리겠다고 다부지게 외치고 있다.
최근 '2천 석 전석 매진' 소셜토크콘서트를 잇따라 개최하며 화제를 모으고 있는 청년창업기업 '메이커스', 그리고 매달 문화잡지를 발간하며 지역 청년들을 한데 모으는 문화 행사도 개최하고 있는 청년 문화 커뮤니티 '모디'의 구성원들을 만나봤다.
◆청년이 청년의 꿈을 지원 '메이커스'
지난달 2일 대구 북구 경북대 대강당에서 열린 한 콘서트에 2천여 명 청년들이 몰렸다. 대강당 좌석을 모두 채운 '전석 매진' 콘서트였다. 보통 이 정도의 관중몰이는 대형 공연기획사가 기획하는 'A급' 뮤지션의 콘서트 정도여야 가능하다는 것이 관련 업계의 분석. 하지만 이날 열린 콘서트는 A급 뮤지션이 출연한 것도, 대형 공연기획사가 기획한 것도 아니었다. 출연진은 인디밴드 십센치, 바이올리니스트 박지혜, 윤호상 취업컨설턴트, 변상해 서울벤처정보대학원대학교 교수였다. 그리고 콘서트를 기획한 주체는 달랑 대학생 5명이었다. 바로 청년창업기업 '메이커스'다.
메이커스는 대표 우상범(23) 씨를 포함한 대학생 몇 명이 모여 지난 8월 창립했다. '청년이 청년을 돕는다'는 슬로건으로 지역 청년들을 대상으로 지원 활동이나 행사 등을 펼치는 것이 사업 아이템이다. 창립 후 맨 먼저 시도하고 있는 사업이 바로 유명연사의 강연과 뮤지션의 공연을 합친 '소셜토크콘서트'다.
소셜토크콘서트는 지난달 2일과 이달 7일 두 차례 열렸다. 두 번 모두 경북대 대강당에 2천여 명 청년들을 그러모아 전석 매진을 기록하며 '대박'을 쳤다. 성공에 힘입어 다음 달 4일 세 번째 콘서트를 준비하고 있다.
대표 우상범 씨가 밝힌 소셜토크콘서트의 성공 요인은 이렇다. 일단 인지도가 전무한 만큼 홍보가 중요했다. '커피 두 잔 값(7천500원)으로 만나는 콘서트'라는 문구로 홍보 활동을 펼치며 청년들의 가벼운 주머니 사정을 배려했다.
더욱 중요한 것은 콘서트의 콘텐츠였다. "좋은 강연은 서울에 집중돼 있죠. 이 때문에 지역 청년들이 스펙 쌓는 강연을 듣는다며 비싼 KTX를 타고 서울로 향하죠." 그래서 유명 연사들을 섭외했다. 주제는 요즘 청년들이 큰 관심을 쏟는 취업, 벤처, 인생설계 등으로 정했다.
그런데 강연만으로는 콘서트를 흥행시킬 수 없었다. 청년들로부터 인기를 한몸에 받고 있는 뮤지션의 공연을 반드시 집어넣어야겠다고 판단했다. "웬만한 아이돌보다 인기 있는 인디밴드 '십센치'를 섭외하기로 마음먹었죠. 자칫 성사가 불투명할 수 있었지만 첫 콘서트의 출연진인 만큼 반드시 모셔와야겠다고 생각했어요. 인터넷을 샅샅이 뒤져 십센치가 유명해지기 전에 자주 공연을 했던 경기도 일산의 한 클럽 사장님을 알게 됐고, 십센치 멤버 권정열 씨의 연락처를 얻을 수 있었습니다. 권정열 씨에게 전화를 걸어 일반적인 공연이 아닌 청년들의 고민을 어루만지는 자리라고 설명했더니 흔쾌히 수락하더라고요."
유명 연사들을 섭외할 때 비용을 절감하기 위한 '윈윈 전략'도 펼치고 있다. "연사 분들에게는 콘서트의 취지를 설명하며 '재능기부' 형태의 강연을 부탁하고 있어요. 지난 두 번의 콘서트가 흥행하자 이제는 재능기부 강연을 하고 싶다며 먼저 연락이 오는 경우도 생기고 있습니다. 지역 청년 수천 명을 모아놓고 강연을 펼칠 수 있는 매력이 있어서죠. 이것은 메이커스가 만들어낸 무형의 자산이자 경쟁력입니다."
이제 겨우 창립 3개월째에 접어들었지만 의미 있는 성과를 내고 있는 것에 대해 구성원들은 청년창업에 대한 자신감을 물씬 느끼고 있다. 사실 메이커스 구성원 대부분이 모든 열정을 쏟아붓겠다며 잠시 대학을 휴학 중인 상황. 토익 점수를 올리는 등 취업 스펙을 쌓겠다며 휴학을 하는 다른 또래들과는 좀 다르다. 대표 우상범 씨는 "창업과 취업 모두 가치 있다. 다만 어딘가에 속하기보다 새로운 것을 찾아 도전을 즐기고 싶은 청년들도 분명 있는데 이들을 충족시켜줄 수 있는 것이 바로 창업이다"고 말했다.
메이커스의 장기적인 목표는 소셜토크콘서트를 대구의 브랜드로 만들어 전국 다른 도시에서도 개최하는 것이다. 또한 다른 사업 아이템도 추진할 계획이다. "점차 수익이 발생하면 또래들 중 좋은 창업 아이디어를 가진 청년들에게 투자할 계획입니다. 그러면서 좀 더 많은 청년들이 창업에 도전하는 분위기를 만들고 싶어요. 하고 싶은 게 있어도 꿈을 포기하고 오로지 취업 하나에만 골몰하는 세태가 답답해요. 우리 스스로 그러한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분위기를 만들고 싶습니다. 청년들끼리 서로의 꿈을 응원하는 분위기 말이죠."
'메이커스'의 활동에 참여하고 싶다면? 메이커스 홈페이지 주소 www.socialmakeus.com
◆대구 청년 문화 커뮤니티 '모디'
최근 대구 시내나 대학가 카페에 가면 '십중팔구' 발견할 수 있는 잡지가 있다. 올해 4월부터 매달 발간되고 있는 이 잡지는 지역 청년들의 생생한 이야기와 문화 콘텐츠 정보를 담고 있다. 바로 지역 청년들이 만드는 잡지인 '모디'다. 잡지 이름은 우리 지역 사투리로 '모여라'는 의미인 '모디라'에서 따왔다.
모디의 목표는 수도권 중심으로 문화 콘텐츠가 몰려 있는 상황에 지역 청년들의 문화적 갈증을 해소해 주는 것이다. 그런데 대구에 문화 콘텐츠가 부족해서 청년들이 목마른 것이 아니란다. 모디의 기획담당 변찬준(26) 씨는 "대구에도 축제나 공연이 꽤 많이 열린다. 오페라, 뮤지컬, 재즈, 독립영화 등 경쟁력 있는 문화 콘텐츠가 많다. 연극 공연장과 예술영화 상영관도 많고, 도심 한복판에 거리 문화를 녹여 넣을 수 있는 공원도 잘 조성돼 있다. 그런데 지역 청년들이 멀리 수도권의 커다란 문화 콘텐츠는 쉽게 인지하는 반면 지역의 작은 문화 콘텐츠에 대해서는 잘 모른다. 따라서 다양한 지역 문화 콘텐츠를 소개하고, 또 분석하며 지역 청년들이 쉽게 향유하는 분위기를 만드는 것이 모디의 목표"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모디는 잡지뿐만 아니라 다양한 문화 행사를 개최하며 지역 30만 대학생들이 소통하는 커뮤니티를 모색하고 있다. "지난 9월에는 근대 골목 투어를 기획해 진행했습니다. 또 다음 달에는 지역 청년 수백 명을 한데 모으는 대규모 네트워크 파티를 기획하고 있습니다. 지역에 청년 문화가 결핍된 이유는 서로 교류하는 장이 부족해서라고 생각합니다. 서울의 대학로와 달리 대구의 대학로는 이름만 남았지 않습니까?" 이러한 청년들의 움직임이 이어져 활력을 만들면 대구 특유의 고루함과 경직성도 타파할 수 있지 않을까 한단다.
처음에 "1년만 버텨보자"며 출발했던 모디는 이제 운영이 안정 궤도에 올랐다고 판단, 오는 12월 협동조합 형태로 재출범할 계획이다. 본격적으로 지역 청년 문화 커뮤니티의 새 장을 열겠다는 취지다. 변찬준 씨는 "졸업 후에도 모디에서 계속 일을 하고 싶다. 대구 안에서 재미나게 즐길 수 있는 문화 콘텐츠를 가꿔 나가고 싶다"고 말했다. 모디 잡지의 편집장 김애란(24'여) 씨는 "지역 청년들이 서로 하고 싶은 얘기가 꽤 많은데 소통이 잘 안 되고 있다는 생각을 많이 했다"며 "모디를 지역 청년들의 소통의 장으로 만들고 싶다"고 말했다.
'모디'의 활동에 참여하고 싶다면? 모디 페이스북 주소 www.facebook.com/magazinemodi
◆지역과 청년이 공존할 수 있는 방법은?
'메이커스'와 '모디'의 공통점은 지역 청년들이 각각 청년창업기업과 문화커뮤니티를 대구의 브랜드로 키워 대구 바깥에 펼쳐보이려 한다는 것이다. 졸업을 하면 당연하게 지역을 떠나는 다른 또래들의 모습과 대조적이다. '지역 발전'과 '지역 청년의 미래'를 공존시킬 수 있는 힌트를 엿볼 수 있는 부분.
이에 대해 전영권 대구가톨릭대 교수는 "청년들이 지역에 대해 자부심을 가져야 하고, 지역도 청년들을 위한 일자리 창출에 적극 나서야 한다"고 주장한다. 그는 "대구와 경북 경산 등에 10여 개 대학이 한데 모여 있지만 특색 있고 활력 넘치는 대학 문화 콘텐츠는 찾아보기 힘들다. 대구 청년 문화의 회복이 필요하다"며 "지역 청년들이 대구의 정체성에 대해 잘 모른다는 것도 문제다. 청년들에게 대구에 대해 자부심을 갖도록 해주는 구체적인 수업, 강좌 등이 마련돼야 한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물론 청년들을 위한 일자리 창출 노력이 반드시 수반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황희진기자 hhj@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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