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래전에 두 무리의 과학자들이 '소금은 인체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가?'라는 과제를 가지고, 각기 아프리카와 인도로 길을 나섰다. 치밀하고도 끈질긴 연구 끝에 저마다의 결과가 나왔단다. 소금의 광범위한 보급으로 식생활이 개선돼 수명의 획기적인 연장을 가져왔다는 아프리카 연구진과 각종 성인병이 퍼져 건강지수의 돌이킬 수 없는 악화가 초래되었다는 인도 연구진의 상반된 보고로 엇갈렸다. 축복의 천사가 인도양을 건너면 문득 저주의 악마로 바뀌는 황당한 사실 앞에서 그들은 순간 당황스러웠으리라. 아무리 톺아보아도 과정의 잘못이나 결론의 허점은 보이지 않았다. 제 눈에 보이는 것만 보고, 알고 있는 것만이 전부인 청맹과니들의 행진. 이렇듯 사실은 온전한 진실을 제대로 담아내기에는 번번이 모자라는 그릇이다. 하물며 그 사실에 지레짐작이나 삿된 욕심이라도 끼어든다면 아예 벌거벗은 폭력이 되어버리곤 한다.
'선택'(Absence Of Malice, 1981)은 멍청한 검찰과 맹한 언론이 어울린 무모한 돌팔매질이 어떻게 무고한 한 사람의 삶을 망가뜨리고, 마침내 무심코 곁에 있던 인간의 목숨마저 앗아가 버리는지에 대한 무참한 보고서다. "사실인지 아닌지는 별로 중요하지 않다. 혹시라도 사실이 아닐 경우 우리의 '악의 없음'(Absence Of Malice)을 어떻게 증명하느냐는 것만이 문제다."
최종 보도 여부를 앞두고서 쓸데없이 우물쭈물거리고 있는 담당 기자에게 고문변호사가 명토 박아 하는 말이다. 죽은 이는 말이 없고, 죽음으로 몰아넣은 자들은 하나같이 눈을 감아 버린다. "혹시 있을지도 모르는 숱한 선의의 피해자들은 우리로서도 어쩔 도리가 없다. 그러다가는 일간지가 아니라 월간지를 찍어내는 꼴이 되고 만다." '선의의 피해자'라는 속 편하고도 달콤한 자기 알리바이의 유혹. 뜻밖의 결과 앞에서 또다시 쩔쩔매고 있는 담당 기자에게 건네는 편집국장의 선의 넘치는 충고이자 위안이다. 모두가 알아야 할 권리와 모두에게 알려야 할 의무는 마땅히 막중하다. 누구나 한 번쯤 엿보고 싶어 하는 호기심과 누구보다 먼저 눈길을 끌어야 된다는 조바심은 또 얼마나 가볍고도 뜨거운가?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과 참아 내야만 하는 사유의 무거움 사이에서의 선택은 늘 아슬아슬하고 순간순간 아찔하기만 하다.
'NEWS'(뉴스)는 'North(북), East(동), West (서), South(남)'에서 따온 말이라는 우스개가 있다. 눈에 띄는 대로 동서남북 허겁지겁 주워 모을 것이 아니라, 눈길을 돌려서 사방팔방 두루두루 챙겨보고 나서야 이야기를 건네라는 속뜻도 있단다. 사실들의 묶음이 다짜고짜로 진실을 말해주지는 않는다. 하물며 '악의 없음'의 단순한 발뺌이 곧 '선의 있음'을 말해주는 것은 더더욱 아니다.
송광익 늘푸른소아청소년과의원 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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