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수암칼럼] 도쿠가와 家臣(가신)과 박'안'문의 참모들

도쿠가와 이에야스가 정치적 고난 속에서도 전국시대 일본을 평정할 수 있었던 것은 그의 개인적 카리스마보다는 뛰어난 참모'가신(家臣)들의 울타리 덕이 컸다고도 볼 수 있다.

세칭 '미카와의 무사'들이라 불렸던 도쿠가와의 충직한 측근들은 전쟁터에서 말 그대로 목숨을 내던지고 주군을 위해 싸웠다. 그들의 충성심이 더 빛난 것은 전쟁이 끝나고 정권을 거머쥔 뒤의 처신이었다. 그들은 정권을 잡은 주군 무릎 근처에 얼쩡거리며 전공(戰功)을 대가로 '한자리' 차지하려는 정치적 응석을 부리지 않았다. 깨끗이 갑옷의 먼지를 털고 고향으로 돌아가 삽과 괭이를 들었다. 도쿠가와로서는 자유로이 집안 바깥의 인재를 골라 씀으로써 용감하긴 하되 자만에 빠져 정치 감각이 흐트러질 수 있는 공신 참모들의 약점을 피해 강력한 정권의 토대를 구축할 수 있었던 것이다.

권력자가 힘들여 잡은 권력을 놓치거나 무너지는 것은 자신보다는 측근과 참모의 부패, 월권, 오만함에서 비롯되는 것은 많은 역사 속에서 봐왔다. 근대 한국 정치 역사만 돌아봐도 초대 이승만 정권의 붕괴, 박정희 전 대통령의 3공화국의 궁정동 종말, 5'6공화국 군사정권의 아래위 부패, YS'DJ 정권의 자식들 부패와 노 정권'MB 정권의 오른팔 왼팔 최측근 부패 등 하나같이 자타칭 측근과 참모들이 주군을 무너뜨리고 정권의 도덕성을 먹칠해왔다.

처음 패를 짤 때는 하나같이 다 깨끗하고 똑똑하다고들 했다. 그러고는 금세 하나같이 썩었고 악취를 남겼다. 이번 대선에도 어김없이 깨끗한(?) 참모들이 부나비처럼 권력의 등불을 향해 날아들고 있다. 세 개의 등불 중 어느 등불이 심지를 크게 돋울지, 허무하게 꺼질지 모르는 단 두 달짜리 정치 도박에 경력과 명예, 모든 것을 걸고 이쪽저쪽 몰린다. 그런 그들의 가슴마다 진정한 미카와 무사 정신이 있는지 알 수 없는 가운데 어저께 현재 안철수 캠프에만 200여 명이 몰려들었다고 한다. 안 후보는 '감격스럽다'고 했다. 순진한 친구다. 정치 역사의 교훈을 돌아보면 아직은 그게 '감격스러운'일이 될지, 재앙의 애물단지들이 몰려들고 있는 건지 모를 일인데도 말이다.

박근혜 캠프 경우는 지난 정권의 전투(선거 등)에서 주군에게 패배를 안겨준 인물들까지 뒤섞여 있다. 패장(敗將) 이인제나 이회창의 말고삐를 잡고 뛰었던 낡은 인물들이다. 싸이의 말춤 곡(曲)에 흘러간 '가요무대' 가사를 갖다 붙인 격이다. 거기다 그들 대부분의 직업을 보면 교수들이다. 지금 박'안'문 캠프에 날아든 세칭 정치교수(폴리페서)는 무려 500명이 넘어섰다. 박근혜 캠프엔 주요 직책의 21%가 교수들이다. 좀 과장하면 대학 하나 꾸려도 될 정도다. 그들 정치교수 중엔 선거 때마다 여'야를 넘나들며 철새 뺨치는 꽃놀이패를 두기도 한다. 소수 정치교수의 정치 참여를 '꽃놀이패'라 부르는 것은 그들은 정치판에 들어왔다가 수틀리면 언제라도 다시 대학에 되돌아갈 수 있기 때문이다. 일반 공직자들은 정치활동도 못하고 출마 시에는 공직 자리의 사표를 내야 하지만 교수들은 예외다. 법이 그렇다.

이곳저곳 당선될 만한 후보 캠프에 끼어 들어가서 요행히 정권 잡으면 '한자리' 해먹고 그 후보가 낙마하면 있던 대학으로 되들어가면 그만, 또 봉급 받으며 살 수 있다. 꽃놀이패가 아닐 수 없다. 그런 참모에게 과연 미카와 무사 같은 '목숨 바쳐' 정신이 생겨날까. 퇴로가 끊긴 배수의 진을 칠 때와 언제든지 불리하면 뒷배로 도망갈 수 있을 때의 전투 자세는 다르다. 더구나 뒷배를 둔 철새 참모들이 정권 잡고 한자리할 때는 더 해(害)가 크다. 국정(國政)이 힘겹고 이리저리 부대껴 감투가 무겁게 느껴지면 '이 짓 아니면 밥 못 먹느냐'는 뒷배를 믿고 쉽게 책임을 내던지거나 대충주의로 흐르기 쉽기 때문이다.

생각 깊은 많은 교수는 캠퍼스에서 자신들의 교육적 사명에 충실하고 있다. 그들은 선거철마다 정치교수들이 우르르 교문 밖으로 나가는 것을 못마땅해한다. 그런데도 권력 교체기만 되면 연구실을 뛰쳐나와 '잿밥'에 정신 파는 철새는 끊이지 않는다. 400개가 넘는 4년제 대학이 있는 나라에서 노벨상 하나 못 받아낸 이유가 따로 없어 보인다.

미카와 무사 정신이 없는 철새라면 그는 캠퍼스로 돌아가야 한다. 꽃놀이패 정치는 교육과 정치, 나라와 자신, 모두를 해친다.

김정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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