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달 초에 있었던 일입니다. 화원유원지 인근 사문진 나루터에서 99대의 피아노를 설치해 한 자리에서 연주하는 장관이 펼쳐지던 날이었습니다. 주변 사람들에게 관람을 추천했던 터라 친구네 가족과 함께 길을 나섰습니다. 일찌감치 도착한 동료는 나루터 인근 석양을 즐기며 공연을 기다리고 있다는 문자를 보내왔습니다.
그런데 주말 저녁 교통 상황을 예상해서 조금 더 일찍 출발했어야 했습니다. 차가 생각보다 많이 막혔습니다. 나중에는 석양 감상은커녕 제 시간에 도착할 수 있기만 바랄 뿐이었습니다. 행사장 인근에 이르니 차가 더 많아졌고 주차할 공간도 찾기 어려웠습니다. 어렵게 주차해 놓고 행사장에 도착했을 때는 이미 공연이 시작된 지 몇 분이 흐른 후였습니다.
의자도 꽤 많이 배치되어 있었지만 이미 만원이었고 의자 주변 무대가 보이는 자리에 서 있는 사람들도 꽤 많았습니다. 어쩔 수 없이 몇 군데 설치된 스크린을 멀찌감치 보며 피아노 소리를 듣는 것을 택했습니다. 어찌 됐건 다시 보기 힘든 공연인데 그렇게라도 그 자리에 있는 것도 아이들에게 좋은 경험이겠다 싶었습니다.
바로 그즈음 남편과 친구 일행이 집으로 돌아가자고 하는 것 아니겠습니까. 많은 사람들이 귀갓길에 몰리면 엄청난 정체가 예상된다는 것이 가장 큰 이유였습니다. 말을 마치기 무섭게 친구 일행은 차를 타고 떠났고 남편도 길을 독촉했습니다. 남편은 돌아오는 길에도 끊임없이 불평을 토로했습니다. 관객 수와 교통 상황을 예상하지 못한 기획에 문제가 있다는 말부터 시작해서 저런 행사는 경기장 같은 곳에서 했어야 한다는 기획 의도 자체를 부정하는 말까지 이어대니 자연 부부싸움으로 이어질 수밖에 없었습니다.
거의 집에 다 와 갈 무렵 저의 추천으로 공연장을 찾았던 다른 가족이 연락을 해왔습니다. 공연을 너무 감명 깊게 봤다고 차를 한잔 사겠다는 제안의 전화였습니다. 공연 도중에 나왔다는 이야기를 하고 나니, 이유야 어찌 되었건 문화계에서 일을 한다는 사람이 그런 행동을 했다는 사실이 부끄러웠습니다.
같은 공연에 임하는 자세가 이렇게나 다양했습니다. 일찌감치 도착해서 석양을 즐기다가 객석에 느긋하게 앉아 공연을 즐긴 동료, 시간 맞춰 공연장에 가서 비록 뒷자리나마 객석에 앉아 공연을 끝까지 보고 돌아오는 길에 감상을 나눈 친구네 가족, 그리고 늦게 도착해 놓고 차량 정체를 두려워하며 공연을 제대로 보지도 않고 돌아 나온 우리 가족입니다.
다음날 출근 후 직장 선배에게 이 이야기를 하니, 선배는 정신이 번쩍 드는 조언을 해줬습니다. 차가 막힐 때, 자신 또한 그 차량 정체의 이유가 됐을 거란 생각을 왜 하지 못했느냐는 겁니다. 그리고 문화생활을 즐기겠다고 마음먹은 사람들이 그 정도 마음의 여유를 갖지 못하느냐는 말도 덧붙였습니다.
실제로 공연 현장에 가보면 연주자의 앙코르곡이 채 끝나기도 전에 돌아서서 나가는 사람들을 쉽게 볼 수 있습니다. 대부분이 공연장 출구에서의 차량 정체를 걱정하는 사람들입니다. 직장 선배의 말처럼 좋은 공연을 보러 온 사람들임에도 마음의 여유가 차량 정체를 참아내는 것까지는 이르지 못한 것 같습니다. 많은 연주회를 보러 다녔지만 미리 일어나는 관객이 없었던 적은 단 한 번도 없었던 것 같습니다.
최근 10년 사이에 공연장을 찾는 사람들의 옷차림에 큰 변화가 있다는 것은 느낄 수 있습니다. 10년 전 대구에 큰 공연장이라고는 시민회관과 대구문화예술회관뿐일 때만 하더라도 정통 클래식 공연장에 반바지에 슬리퍼를 신은 채 공연장을 찾는 사람들을 흔히 볼 수 있었습니다. 요즘 공연장에서는 그런 성의 없는 옷차림은 거의 찾아볼 수 없습니다. 공연장을 찾기 위해 단정히 차려입은 사람들이 많습니다. 옷차림은 공연을 준비한 연주자들에 대한 예의이기도 하지만 공연에 임하는 본인의 마음가짐이기도 합니다. 지역에 크고 작은 문화공간이 많이 생기고 또 그만큼 행사 수가 많아지면서 관객들의 경험치도 쌓인 것 같습니다.
그런데 아쉽게도 공연이 끝난 후 객석에 불이 들어올 때까지 기다리지 못하는 사람들이 많다는 것은 10년 전이나 매한가지인 것 같습니다. 문화생활을 즐기는 것은 공연장 내에서만이 아닐 텐데 말입니다. 공연장을 가기 위해 표를 예매한 순간부터 공연장에 가는 길, 그리고 객석에서의 감동을 안은 채 돌아가는 길까지의 모든 과정이 포함된 패키지 상품을 제대로 즐기는 것이 바로 진정한 '문화생활'이 아닐까 싶습니다. 연일 수많은 공연, 전시가 이어지는 풍성한 가을입니다. 꼼꼼하게 준비해서 마무리까지 멋지게 하는 문화생활, 한번 즐겨보시기 바랍니다.
임언미/대구문화 편집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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