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번 칼럼을 쓴 뒤 한때 죄책감(?)이 들었다. 글을 마무리하며 인용했던 장석주 시인의 '대추 한 알' 때문이다. '대추가 저절로 붉어질 리는 없다. 저 안에 태풍 몇 개…'라는 시구(詩句)대로 태풍 '덴빈' '볼라벤' '산바'가 잇따라 들이닥친 것이다.
정치인은 대추처럼 고난을 거쳐야 단련된다는 의미로 썼지만 대선 정국에도 그 이후 태풍급 이슈가 줄을 이었다. 인혁당 사건, 북방한계선(NLL), 정수장학회 등 주로 과거사와 관련된 논란이다. 쉽게 정리될 것 같지도 않아 보인다. 말이 씨가 됐다고 우긴다면…. 쯧쯧, 이놈의 과대망상(誇大妄想)! 브라우니, 물어!
피날레를 향해 달려가는 대선 정국을 지켜보면서 어쩌면 다행이란 생각도 든다. 기대했던 '강태공'장량'범증'제갈공명'은 보이지 않기 때문이다. 솥발처럼 맞선 박근혜 새누리당, 문재인 민주통합당, 무소속 안철수 후보도 '백마 탄 초인'(超人)이란 확신을 주지는 못한다. 안타깝게도 주변에는 "아직 아무것도 모르겠다"는 유권자들이 많다. 특히 이번 대선의 향방을 가를 '캐스팅 보터'(casting voter)로 지목되고 있는 40대가 더욱 그러하다. 각종 여론조사에서는 '역대 최소의 부동층'이라는 표현도 나오고 있지만 실상은 그렇지않은 듯 같다.
이는 대선 후보들의 '수렴화 현상'과 무관하지 않다. 한때 여권의 책사(策士)였던 인물은 야당으로 갔고, 야권 성향의 정객은 반대로 보수 후보의 정책을 총괄한다. 새로운 정치를 내건 무소속 후보 진영에도 '관치금융의 화신'으로 꼽히는 인사가 뛰고 있다. 후보들의 정책에서도 큰 차이점을 발견하기 어렵다. 가장 큰 화두인 경제와 관련해서도 각각 '창조' '공정' '혁신'을 내세웠지만 명확하게 구별할 이가 얼마나 될까? '옳은 말씀' 정도로만 받아들이는 게 장삼이사(張三李四)들의 생각 아닐까? 올해 태풍들이 너무 가깝게 발생해 서로 영향을 주고받아 진로가 바뀐 것처럼 '정치판 후지와라 효과'라 부를 수도 있겠다.
좋은 정치 지도자를 뽑는다는 건 정말 어려운 일이다. 어쩌면 불가능한 일일지도…. 그래서 고대 그리스 철학자 플라톤이 철인정치(哲人政治)를 설파했는지도 모를 일이다. 플라톤은 중우정치(衆愚政治)의 병폐로 대중적 인기에 집중하고 요구에 무조건 부응하는 사회적 병리현상과 개인의 능력'자질'기여도 등을 고려하지 않는 그릇된 평등관 등을 꼽았다.
현실에서도 유권자들의 선택은 늘 논란거리다. 4년 전 '담대한 희망'을 내걸어 당선됐던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은 임기 내내 희망을 보여주지 못해 연임을 자신하지 못할 상황이다. 정권 교체라는 국민적 열망 덕분에 승리를 거머쥔 프랑수아 올랑드 프랑스 대통령은 몇 달 만에 '전임 대통령이 계속 집권했으면 더 나았을 것'이라는 여론조사 결과를 받았다. 결국 좋든 싫든 그 시대를 살아가는 국민의사의 총합이 투표 결과로 귀결되는 것이다.
그럼에도 우리는 '매의 눈'을 가져야 한다. 대선은 이미지 투표에 불과하다고, 후보들이 비전을 갖추지 못했다고 뒤돌아 앉아 욕할 일이 아니다. 아무리 차선(次善)을 고르는 선거에 그칠지라도 결국 우리의 미래는 우리가 결정하기 때문이다. 더욱이 한반도 앞에는 영토 분쟁 등 불안한 동북아 정세, '퍼펙트 스톰'이라 불리는 경제 위기가 기다리고 있지 않은가. "정치는 너무나 중요해서 정치인들에게만 맡겨둘 수 없다"는 샤를 드골의 말을 되새길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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