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학생도·교사도·학부모도 마음의 휴식이 필요합니다

대구교육청 힐링 프로그램

몸보다 마음의 상처 때문에 더 힘들 수도 있다. 특히 요즘처럼 나와 남을 돌아보지 못하고 숨 가쁘게 앞으로 달려야 하는 시대엔 더욱 그럴지도 모른다. 학교 현장에서 힐링 교육이 주목받는 것도 그 때문일 것이다.
몸보다 마음의 상처 때문에 더 힘들 수도 있다. 특히 요즘처럼 나와 남을 돌아보지 못하고 숨 가쁘게 앞으로 달려야 하는 시대엔 더욱 그럴지도 모른다. 학교 현장에서 힐링 교육이 주목받는 것도 그 때문일 것이다. '교직 스트레스 치유를 위한 직무 연수' 중 팔공산 동화사의 '템플 스테이' 프로그램에 참가한 교사들이 '숲 속 걷기 명상'을 하고 있다. 우태욱기자 woo@msnet.co.kr

'힐링'(healing)은 요즘 가장 뜨거운 화두다. 몸이나 마음의 치유를 뜻하는 힐링을 주제로 한 TV 프로그램이 인기리에 방영되는가 하면 서점에는 힐링을 주제로 한 책이 쏟아져 나오고 있다. 급변하는 사회 속에서 치열하게 경쟁하며 살아가는 현대인들의 피로감에 대한 방증이라 할 만하다.

어쩌면 힐링이 가장 필요한 곳은 학교인지도 모른다. 우리 교육현장은 지난해 말 대구의 한 중학생이 스스로 목숨을 끊으면서 사회적으로 큰 파장을 일으킨 학교폭력 문제부터 학생 인권, 교권 이야기에다 공교육 정상화와 거대한 사교육 시장, 대학 입시를 둘러싼 이견들까지 갖가지 갈등이 산재해 있다. 그 소용돌이 한가운데 있는 학생, 학부모, 교사들 모두 지치기 십상이다. 이 때문에 대구시교육청이 마련한 힐링 프로그램들이 더욱 눈길을 끈다.

◆마음의 짐을 진 교사들 오세요

20일 오후 찾은 팔공산 동화사. 행락객들로 입구 주위는 시끌벅적했지만 사찰 안으로 걸어 들어갈수록 소리가 점점 잦아들었다. 다양한 연령대의 대구 초'중'고교 교사 100여 명은 울창한 숲 속에 자리한 동화사 설법전 바닥에 방석을 깔고 조용히 앉아 있었다.

앞에 나선 대통 스님이 물었다. "살면서 가장 필요한 게 무엇일까요?" 교사들이 여기저기서 "건강이요"라고 답했다. 스님이 다시 물었다. "오늘 절에 왜 왔죠?" 이번엔 교사들이 쉽게 답하지 못했다. 스님이 조용히 입을 열었다. "단순하게 생각하세요. 절에 절하러 온 거죠. 절을 하면 몸속 에너지가 순환되고 건강이 좋아집니다. 건강이 좋아지면 운명이 바뀝니다."

이어 교사들은 스님의 설명에 따라 허리를 바로 세우고 가부좌를 튼 채 조용히 명상에 잠겼다. 저무는 가을 햇살이 설법전 창문을 넘어 교사들의 얼굴을 비췄다. 저녁 공양 후엔 예불을 하고 108염주 꿰기에 나섰다. 이튿날엔 스님들처럼 오전 4시에 일어나 예불, 명상 시간을 가졌고 숲 속을 거니는 여유도 누렸다.

부부 교사인 도남초교 김주석 교감과 신서초교 최홍남 교사는 오랜만에 찌든 일상에서 벗어난 기회였다고 했다. "누운 채 밤하늘의 별을 보며 명상을 했던 게 기억에 남습니다. 야외에서 차를 마시며 스님과 이야기를 나눈 것도 좋았고요. 특히 새벽 범종 소리는 너무 청량해 마음이 절로 깨끗해지는 느낌이었습니다. 다음에 시간에 맞춰 들러 다시 듣고 싶은 소리였어요."

이 행사는 '교직 스트레스 치유를 위한 직무 연수'로 대구시교육청이 교직 스트레스로 고통받는 교사들을 치유하기 위해 마련한 '에듀힐링(Edu-Healing) 프로그램' 중 하나. 시교육청은 이외에도 관련 직무연수 과정을 16개 더 개설, 8월 참가자를 모집했는데 프로그램 전체 정원 905명을 훌쩍 넘긴 1천400여 명이 신청했을 정도로 교단의 관심을 모았다.

이미 프로그램에 참가했던 교사들의 반응도 좋다. 20여 년 동안 교단에 서 왔다는 김경희(고산초등학교), 권용혜(동도중학교) 교사는 5일부터 1박 2일간 천도교 용담수도원(경주)에서 진행된 '동학 스테이'에 참가했다. 이들은 그동안 지친 심신을 추스른 계기가 됐다고 했다. "기존의 교사 연수 프로그램은 학생들에게 무엇을 줄 수 있는지 배우는 것이었다면 이번엔 교사 자신을 위한 것이어서 신선했어요. 자연 속에서 조용히 저 자신을 돌아볼 수 있었습니다. 마음이 한결 편안해진 것만으로도 큰 도움이 됐어요."

시교육청은 앞으로 신청자가 많은 연수 과정은 정원을 늘리고 숲 명상, 명상과 피정 등 연수 과정도 추가로 개설할 방침이다. 시교육청 교원능력개발과 신광호 장학사는 "교육 발전이라는 무거운 짐을 짊어진 교사들이 건강해야 학생들도 행복해질 수 있다"며 "내년 3월부터는 우울증 등 정신적인 상처가 큰 교사들을 위한 치유 프로그램을 운영할 것"이라고 했다.

◆마음 닫힌 학생과 학부모를 기다립니다

"엄마도 약한 여자였어요."

고교생 딸은 집안의 골칫거리였다. 사춘기부터 엇나가기 시작했고 부모와 다툼이 잦았다. 부부간에도 딸을 두고 언성을 높이는 일이 허다했다. 가출한 딸은 절도, 폭행 등으로 법망에 걸려 보호관찰 처분을 받았다. 지난 8월 모녀는 대구시교육청과 대구보호관찰소가 손을 잡고 보호관찰 처분을 받은 학생들을 대상으로 마련한 '보금자리 안착을 위한 가족 캠프'에 참가했다.

모녀가 함께한 첫 여행. A양은 짧은 소감을 남겼다. "참 오랜만에 마주 보고 대화를 했던 것 같아요. 그 외에 특별히 같이 한 건 없었지만 엄마의 마음을 조금 더 이해할 수 있었던 시간이었어요. 엄마는 강한 사람인 줄로만 알았는데 아니었어요."

부모의 관심과 애정을 제대로 받지 못하는 학생들에겐 학교도 마음을 둘 자리가 돼 주지 못하고 있다. 성적이라는 잣대가 또래 사이의 우열을 가르고, 폭력적인 분위기는 교문 밖 사회와 크게 다르지 않다. 대구시교육청이 보호관찰 대상 학생과 그 가족을 대상으로 가족 캠프를 진행한 것도 그 때문이다.

대구교육해양수련원에서 운영된 캠프에는 17명의 학생과 가족 등 모두 40명이 참여했다. 이들은 1박 2일 일정으로 텐트를 치고 야영을 하면서 래프팅, 캠프파이어 등 체험활동을 하고 부모의 역할, 청소년의 심리 등에 대한 강의도 들었다. 캠프가 끝난 지 두 달을 넘겼지만 여운은 길게 남았다.

중학생 형제와 함께 캠프에 다녀온 B씨는 스스로 변해야 한다는 걸 절감했다고 했다. "엄마인데도 아이들의 말과 행동에 관심을 그다지 갖지 않았던 것 같아요. 이해하고 참을 줄 알아야 한다는 말이 와 닿았어요. 가족의 소중함을 가슴에 품고 갑니다." 두 아들도 생각이 바뀌었다. "억지로 끌려온다는 생각에 마음이 불편했는데 오길 잘했다는 생각이 들어요. 특히 우리 때문에 얼마나 슬펐는지, 언제 기뻤는지 등 엄마의 마음속에 담긴 이야기를 들을 수 있어 좋았어요."

C씨는 속을 끓이던 중학생 아들이 예전과 달라 보인다고 했다. "제가 여자다 보니 중학생인 아들 녀석과 함께할 놀이도 없고 대화도 잘 안 되더군요. 도대체 무슨 생각을 하는지 모르겠다 싶을 때가 많았는데 이젠 조금이나마 이해가 갑니다. 캠프에서 느낀 대로 먼저 마음을 여니 아이도 외면하지 않더라고요."

처음 마련한 행사에 대한 반응이 뜨거워 시교육청은 보호관찰소와 함께 내년부터 연간 두 차례 이 캠프를 열기로 하고 구체적인 계획을 세우고 있다. 이 외에도 학교 부적응 학생을 대상으로 각 학교가 상담, 체험활동을 진행하면 예산을 지원 중이다. 현재 84개 학교가 이 같은 혜택을 받고 있다.

시교육청 학교생활문화과 조용득 장학사는 "아이들은 쉽게 상처받고 잘못된 길로 빠질 수 있다"며 "또래, 가족 간 소통의 기회를 다양하게 마련해 아이들의 다친 마음을 쓰다듬어 주기 위해 노력하겠다"고 했다. 채정민기자 cwolf@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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