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대신문 박준범입니다."
대학을 입학하고 학교를 다닌 지도 어느덧 3년째다. 마찬가지로 내가 영대신문에 소속된 지도 3년째다. 20대 남자에게 가장 큰 고민인 국방의 의무도 뒤로한 채 영대신문에 소속돼 기사를 쓰고 편집을 하며 신문을 만든 지가 벌써 3년째다.
아무것도 모르고 신문사에 들어와 수습기자, 준기자, 사회부 기자 그리고 편집국장까지 필자의 대학생활은 학교 신문사 활동이 전부다. 공부에 민감하신 필자의 아버지는 항상 신문사 일 좀 줄이고 학업에 열중하라고 핀잔을 주신다. 하지만 2주에 한 번 나오는 신문을 만들기 위해 12페이지를 채울 기사에 대해 회의하고 취재하며 에너지를 쏟다 보면 자연스레 학업은 뒷전이 돼 버린다.
외부에서 사람들을 만나 '학교 신문사 한다'고 얘기하면 돌아오는 질문이 있다. "신문사 하는 이유가 뭐예요?" 이 질문을 받으면 대충 얼버무리는 것이 대부분이다. 사실 필자도 그 질문에 대한 답이 궁금하다. 그래서 필자도 신문사 선배님한테 물어봤다. 돌아오는 답은 "신문사를 통해 많은 것을 얻었고, 신문사가 있었기에 발전할 수 있었다"였다.
사실 수습기자, 준기자 때엔 정말 같이 들어온 동기가 좋아서, 맹목적으로 술 먹고 놀기 싫어서, 공부는 하기 싫고 바쁘게 살고 싶어서 신문사 생활을 했다. 그리고 기자 때는 1학년 때 활동한 것이 아까워서 그리고 많은 사람들을 만날 수 있어서 계속했다. 편집국장인 지금은 학생을 포함한 학교 구성원에게 좀 더 좋은 영대신문을 보여주기 위해서였다.
물론 과정이 순탄치만은 않았다. 소심한 성격을 가진 필자가 모르는 사람에게 말을 걸어 본다는 것은 상상조차 할 수 없었다. 하지만 대형 강의실에 들어가 100명이 넘는 학생들 앞에서 얘기를 한 후 필자의 모습은 180도 달라졌다. 자신감이 생겼고, 변화가 일어나기 시작했다. 힘들었던 점이 없지는 않았다. 취재할 때 때로는 학생이라고 무시당하기도 했고, 기자가 제대로 알아보지도 않고 찾아온다는 핀잔을 듣기도 했다. 기사내용이나 방향에 대해 주간교수와 의견대립도 있고 취재원이 찾아와 기사내용이 잘못됐다고 화를 내는 경우도 많았다.
하지만 이를 통해 자신이 한 단계 발전할 수 있는 계기가 됐다고 생각하고 싶다. 그 어떤 동아리나 대외활동에서도 경험할 수 없는 값진 경험을 '영대신문'에서 하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 경향신문 대기자를 역임하신 선배님이 '나를 키운 건 8할이 영대신문이다'고 말씀하신 걸 들은 적이 있다. 사실 처음에는 공감도 이해도 되지 않았지만 이제야 와 닿는 얘기인 것 같다. 필자에게 영대신문은 8할까지는 아직 아니고 6할 5푼 정도 되는 것 같다. 그만큼 필자도 영대신문의 영향을 많이 받았다고 생각한다. 6할 5푼에서 8할로 끌어올릴 수 있도록 필자는 오늘도 신문사에 출근을 해 전화를 받는다. "네. 영대신문 박준범입니다."
영대신문 편집국장 박준범(언론정보학과 3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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