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야고부] 용서도 복수도 없다

경기도 수원에서 20대 여성을 납치해 살해하고 시신을 훼손한 혐의로 1심에서 사형을 선고받았던 오원춘(우위엔춘)이 항소심에서 무기징역으로 감형되자 다수의 시민들이 분통을 터뜨리고 있다. 네티즌들은 '뭐 이런 ×같은 법' '판사 자기 가족이 당해도 감형해 줄까' 등 막말로 분노를 표현했다. 제주 올레길에서 살해된 여성 관광객의 남동생도 "얼마나 더 끔찍한 범죄가 저질러져야 사형 판결을 내릴 것이냐"고 말했다.

1심 사형 판결과 항소심 무기징역 모두 법률적 판단이다. 말하자면 2심이 틀린 게 아니라, 국민의 감정과 법에 근거한 양형 판단이 다를 뿐이다.

같은 문학작품을 읽어도 독자마다 감정이입의 정도는 다르다. 예컨대 건강한 어머니를 둔 자식보다는 치매를 앓는 노모가 있는 자식이 치매 노인의 이야기에 더 깊이 공감하기 마련이다. '내 어머니는 절대 치매에 걸리지 않는다'고 확신하는 독자는 감정을 이입하기 힘들다.

오원춘의 감형에 대한 유가족과 네티즌의 강한 반발은 '내 가족이 피해자가 되었거나' '내 가족이 피해자가 될 수 있다'는 '감정이입'에서 비롯된다. '나와 내 가족은 결코 흉악 범죄의 희생자가 되지 않는다'고 자신하는 사람들은 흉악 범죄자에 대해 덜 분노하기 마련이다.

오원춘을 사형시킨다고 죽은 여대생이 살아오지는 않는다. 제2의 오원춘이 발생하지 않는다고 장담할 수도 없다. 사형은 법률의 이름으로 '인간 존엄성'을 해치는 행위일 뿐이다. 사형제에 반대하는 사람들의 인간 존엄에 바탕을 둔 생각이다.

죄인을 벌하는 목적은 범죄의 양산을 막고, 교화를 통해 새 인간을 만들기 위해서다. 하나 더 꼽자면 복수가 포함될 것이다. 다수 시민들이 오원춘의 죽음을 원하는 것은 '교화'보다 '복수'를 바라기 때문이다. 법치국가에서 어떻게 복수를 들먹이나 싶겠지만, 죽은 가족을 살릴 수도 없고, 제2의 범죄를 막을 수도 없는, 인류가 아니라 가족의 입장에 설 수밖에 없는 유가족은 대안이 없을 것이다.

영화 '밀양'에서 배우 전도연은 수많은 고통의 날을 지낸 끝에 자식을 살해한 범인을 용서하기로 하고 감옥을 방문한다. 면회에 응한 범인은 평온한 얼굴로 "나는 이미 하느님의 용서를 받았습니다"라고 답한다. 인권과 종교라는 굳건한 방패 뒤에서 가해자는 생명과 평화를 얻고, 피해자는 복수도 용서도 불가능한 진창에 빠져 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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