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경북의 끝-道界마을을 찾아서] <17> 창녕과 경계 청도 풍각면 원명마을

"시장은 창녕장에서 보고, 투표는 풍각면에 가서 하지…"

계곡 사이에 놓인 다리를 두고 왼쪽은 창녕군 대산리이며 오른쪽은 청도군 원명마을이다.
계곡 사이에 놓인 다리를 두고 왼쪽은 창녕군 대산리이며 오른쪽은 청도군 원명마을이다.

경북 청도군 풍각면은 경남 창녕군 성산면, 대구 달성군 유가면과 경계를 이루고 있다. 풍각면은 오랜 기간 대구에 속해 있었지만 1906년 행정구역 변경으로 각북, 각초면과 함께 청도군에 편입됐다. 풍각면은 1914년 행정구역 통합 등 부분적인 이동(里洞) 개편을 거쳐 법정 12개 리(里), 행정 23개 리 체제로 현재에 이르고 있다.

풍각면 북쪽의 비슬산(1,083m) 줄기는 남서쪽으로 뻗어가며 마령산(610m)과 수봉산(593m), 묘봉산(514m), 천왕산(619m) 등이 이어진다. 풍각면은 면 소재지를 관통하는 청도∼창녕 간 20번 국도를 통해 경부선 철도와 신대구부산고속도로, 구마고속도로와 연결된다.

◆도 경계에 위치한 자연부락

풍각면 화산1리 원명(元明)마을은 산 능선을 타고 이어가던 도 경계가 계곡을 중심으로 나뉘면서 뚝 떨어진 자연부락이다. 경남 창녕군 성산면 대산리와 접한 이 마을은 경남'경북 주민이 한 마을처럼 대대로 살아오고 있다. 원명마을로 가려면 고즈넉한 풍광의 화산1리 마을을 지나 구불구불한 임도를 1.5km나 올라가야 한다. 마을 사람들은 풍각면 소재지까지 12km, 30리길이라고 말한다.

산길이 시작되면 원명마을이 나올 때까지 휴대전화가 터지지 않는다. 지금은 콘크리트 도로로 포장이 됐지만 예전에는 그야말로 첩첩산중 산길이었을 터, 고개 정상에 올라서야 원명마을이 펼쳐진다. 원명마을은 가마봉 등 비슬산 남서쪽 외곽 능선의 최고 절경 구간이 둘러싸고, 아래로는 조피덤폭포 계곡이 펼쳐지는 명승지다. 최근에는 피서객들이 입소문을 통해 조용히 찾아들고 있다.

이 마을 지명은 최근까지도 '우멍이' 또는 '움미이'로 불렸다. 임진왜란 당시 비슬산 일대에서 왜군과 맞서던 곽재우 장군이 비슬산에서 포진하다 이곳에 도착해 동이 트자 '여명'(黎明)이라 이름 붙였는데, 세월이 흐르며 '원명'(元明)으로 변했다는 설이 있다. 이곳 마을에도 전기와 통신이 들어오면서 일상생활의 불편은 어느 정도 해소됐다. 하지만 아직도 한밤중에는 영화 '웰컴 투 동막골'처럼 세상과 단절된 적막강산이다. 주민들은 눈이 오면 말할 것도 없고, 비가 내려도 꼼짝달싹하기 힘들다고 한다. 산허리 아래 사방으로 마을길이 모두 급경사이고, 외부의 도움을 받을 수 없기 때문이다.

그래서인지 대도시에서나 볼 수 있는 교통 신호등이 원명마을 안에서 작동하는 모습은 매우 이채롭다. 몇 년 전 청도군과 청도경찰서가 차량 교행과 통행 편의를 위해 연구를 거듭하다 시간 차를 두고 방향을 바꿔가며 일방통행시키는 신호등을 설치했다.

◆경남'북 구분 없이 옹기종기 모여 살아

원명마을도 30~40년 전에는 30여 가구나 모여 살았다. 마을계곡 다리 하나를 사이에 두고 경남 땅에 10가구, 경북 땅에 20가구 정도가 옹기종기 모여 살았다.

마을 한복판 다리가 도계이고, 생활권이 같다보니 도계의 구분은 전혀 찾아볼 수 없다. 청도 풍각 상수월리에서 이 마을로 시집와 45년째 살고 있다는 정우선(66) 씨도 경북 땅의 집에서 식당을 하고, 경남에 있는 채소밭에서 농사를 짓는다. 정 씨는 "시장은 버스 편이 연결되는 창녕장으로 가고, 예방접종 등 생활민원은 편도 2만원의 택시비가 들어도 풍각면 보건소로 가야 한다"고 말했다.

주민들은 전화세와 주민세는 청도로, 전기세는 창녕으로 납부한다. 택배는 창녕 쪽에서 차량이 들어오고, 투표는 청도 풍각면으로 나가서 한다. 예전 아이들이 어릴 때는 말씨도 창녕 발음과 청도 억양이 뒤섞인 말투였다고 한다. 계곡 근처에 지금은 사람이 살지 않고 원두막 형태만 남아 있는 집은 마당 한복판으로 경남'북 경계가 갈렸다. 이 집 주인은 윗담과 아랫담을 사이에 두고 경남으로 갔다, 경북으로 갔다 했다는 것이다.

◆앞으로도 대대로 경북

원명마을은 현재는 14가구, 18명 정도가 살고 있다. 원래 주민들은 대부분 외지로 나가고 남은 주민들과 객지에서 귀향한 사람들이 마을을 지키고 있다. 예전 아이들이 학교를 다녀야 할 시기에는 교육 문제 때문에 창녕 성산면이나 대구로 주소를 옮겨야 하는 불편과 고민이 있었다. 그러나 아이들이 다 크고 도시로 나간 요즘, 정부의 경계마을 행정구역 조정 발상은 무의미하다는 게 주민들의 의견이다. 이 마을 반장 김비룡(66) 씨는 "마을주민 입장에서 볼 때 창녕 성산면은 창녕에서도 가장 오지이면서 열악한 편이다. 반면 풍각면은 보건소와 시장 등 필요한 일을 일사천리로 해결할 수 있다"고 했다. 단순히 교통 편의에 따른 경계 조정은 필요 없다는 얘기다. 주민들은 정서적인 측면에서도 여지껏 청도군민으로 살아왔고, 고향과 친척, 원적이 바뀌는 것을 원하지 않는다고도 했다. 다만 풍각과 유일하게 이어주는 "화산리~원명마을 간 임도를 군도로 승격시켜 달라"고 건의했다. 청도군은 올 9월 경계 조정과 관련해 주민들의 의견을 수렴한 결과, 거주자 대부분이 65세 이상 고령자이며, 후손의 입장에서 조상대대로 살아온 터전의 지명이 바뀌는 것을 원하지 않고 있다는 사실을 확인하고 창녕군으로 편입 등 경계 조정이 불필요하다는 입장을 정부에 전달했다. 청도·노진규기자 jgroh@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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