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야고부] 로스차일드

국제 금융계의 '보이지 않는 손' 로스차일드 가문이 워털루 전투에서 영국이 졌다는 거짓 정보를 흘려 폭락한 영국 국채를 헐값에 쓸어가는 수법으로 떼돈을 벌었다는 일화는 유명하다. 그러나 이는 나치가 만들어낸 속설이다. 1940년 나치의 선전상 괴벨스가 출판을 허락한 '디 로스쉴트'(로스쉴트는 로스차일드의 독일식 발음)에 그런 얘기가 나온다. 진실은 로스차일드가 워털루 전투를 이용해 떼돈을 번 것이 아니라 그 전투 때문에 쫄딱 망할 위기를 모면하고 떼돈을 벌었다는 것이다.

로스차일드가 5형제 중 런던에서 활동하던 네이선은 나폴레옹 전쟁 동안 영국 정부의 의뢰로 전비(戰費)로 사용될 금을 매집해 유럽 대륙으로 밀반입했다. 나폴레옹의 대륙 봉쇄를 뚫고 금을 밀수해 본 경험자가 그 말고는 없었기 때문이다. 이를 통해 네이선은 전쟁 기간 동안 엄청난 수수료 수입을 올렸다.

러시아 원정 실패로 엘바섬에 유배됐던 나폴레옹이 1815년 권좌에 복귀하자 네이선은 다시 금을 사모았다. 이번에도 이전처럼 장기전이 될 것으로 예상했던 것이다. 하지만 워털루 전투는 단 하루 만에 영국의 승리로 끝났다. 알려진 대로 영국 정부보다 이틀 먼저 이 사실을 알았지만 이 소식은 그에게 재앙이었다. 전쟁이 끝났으니 군자금도 필요 없게 됐고 따라서 금값은 폭락할 게 뻔했다. 수수료는커녕 거리에 나앉게 생긴 것이다.

로스차일드는 이 위기를 역이용했다. 그는 매집한 금으로 영국 공채에 투자했다. 전쟁에서 이겼으니 영국 정부의 차입이 감소해 채권 값이 치솟을 것으로 예상하고 꾸준히 영국 공채를 사들였다. 그는 1년 반 뒤 채권 값이 매입가보다 40% 이상 오르자 조용히 시장에 던졌다. 그 수익은 현재 가치로 6억 파운드, 1조 원이 넘는다. 이를 기반으로 로스차일드 가문은 악명과 존경을 동시에 얻으며 금융계의 지배자로 등극했다.

로스차일드 가문이 인류 역사상 최고의 부자 자리에서 14세기 말리왕국의 '황금왕' 만사 무사에게 밀려났다고 한다. 그러나 지금 만사 무사의 그 많던 황금은 간데없지만 로스차일드의 '황금'은 때로는 채권, 때로는 주식의 모습으로 세계에 흘러 다닌다. 이는 황금 그 자체는 지속 가능한 부가 아니라는 것을 보여준다. 만사 무사와 로스차일드의 차이가 지금 아프리카와 유럽의 차이를 말해주는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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