붙박이 탁자 한 켠
한 노숙자가 복권을 긁는다
요긴한 도구처럼 상반신을 삐뚜름히 구부리고
긁고 또 긁는다 다른 동작이 끼어들 틈이 없다
빵이나 소주 대신 복권을 사서 긁는 저 노숙자는
한방에 삶이 복권되기를 꿈꾸고 있거나
아직도 포르말린 같은 희망에 취해서 사는 자다
지극히 무모하고도 하염없는 시대가
불발된 숫자가 되어 발밑으로 각질처럼 떨어져
내려도
구부린 등에서는 건강한 리듬이 피어오른다
저 남루 아래 희망처럼 돌돌 말려 있을
누추한 잠바를 치밀고 스프링처럼 올라오는
저 근육질의 파동을 어떡하나
편의점 TV에서 이번 겨울이 오래 지체할 것이 라는
보도가 유리문 밖에 눈발이 되어 호외처럼 날리고
한 가지 동작에 골몰하는 저 노숙의 몸을 뚫고
곧 아지랑이가 피어오를 것만 같다
자고나면 풀잎처럼 빳빳하게 일어나던
수없이 목 졸라 죽여 버리고 싶던 몸
수없이 짓밟아 뭉개 버리고 싶던 몸
정신이 도무지 앞지르지 못하는
지긋지긋 또 살아지는 몸,
머릿니가 득시글득시글 댈 것 같은 그의 머리와
거무칙칙한 손가락 위로
수천 킬로의 우주를 통과한 햇빛이 세례처럼 쏟
아지고
창밖에는 노오란 국물 같은 산수유가 툭툭 터지고
어쩌면 시인은 무대 조명기사의 후예일지 모릅니다. 아무도 돌아보지 않는 곳에 스포트라이트를 비추어 모두가 주목하게 만들어주니까요. 그늘에 놓인 삶을 햇살 가득한 곳으로 꺼내어 다시 꿈꾸게 합니다. 시인은 복권을 긁고 있는 노숙자의 구부린 등에서 건강한 리듬을 읽어내고 있습니다. 잠시 멀어진 일상으로 그가 다시 복권되기를 바라는 시선이 편의점 구석 자리를 밝게 비춥니다. 봄이 기적처럼 오지 않고 상식적인 방법으로 오기를 바라는 마음이 환합니다.
시인·경북대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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