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독교에 푹 빠진 아우가 형에게 호소한다. "형님요! 인제 그 케케묵은 유교 버리고 예수님 좀 믿어보소." 그러자 형이 "니나 믿고 천당 가거라"고 불퉁스러운 대답을 내놓는다.
아우가 애가 타서 "형제가 같이 가면 안 좋으이껴. 예수 안 믿으면 지옥 간다는데…"라고 애석해하지만, 형의 반응은 완고하다. "우리 둘 다 천당 가버리면 예수 안 믿어서 지옥에 가 계실 어메 아베는 누가 돌보노?"
안동다운 유머다. 안동은 유교의 본고장이었지만 서양 종교를 너그럽게 받아들였고 다른 종교 간의 반목 또한 없다. 유교 최상의 가치인 효(孝)의 실현을 위해 지옥에라도 가겠다는 형을 어찌할 것이며, 기어이 천당에 가고 싶은 아우의 희망 또한 어쩌란 말인가.
이런 안동 유머도 있다. 달리는 택시 안이다. 뒷좌석에 앉아있던 할머니가 갑자기 큰 목소리로 묻는다. "기사 양반요. 아까 내가 어디 가자 카디껴?" 그러자 기사가 깜짝 놀라며 되묻는다. "어! 할매, 언제 탔디껴?"
안동이라고 우스개가 없을까. 전통과 형식을 중시하는 예향(禮鄕)에도 해학은 있고, 완고한 선비의 도포 자락에도 골계가 스며 있는 법. 유머란 그 지역의 방언과 관습과 역사적 경험에서 생성되는 것인 만큼 안동 또한 특유한 해학문화를 가지고 있다.
안동 유머는 세상 물정에 어두운 딸깍발이 선비의 형식주의와 숙맥 짓을 비꼬거나 제사와 가난에 얽힌 내용이 주류를 이룬다. 게다가 전통적인 삶과 근대의 신문물이 겹치는 개화기의 일화는 웃음거리 이상의 애틋한 뉘앙스를 머금고 있다.
김광억 서울대 문화인류학과 교수는 그래서 "안동 사람들의 농담은 그리 왁자지껄하거나 드라마틱하지 않다. 수수하고 약간은 템포가 느리고 점잖아서 폭소보다는 너털웃음을 자아낸다"고 했다.
안동 출신으로 대학에서 문학을 전공한 김원길 시인이 펴낸 '안동의 해학'은 그런 안동의 유머가 고스란히 담겨 있다. 그는 대학교수를 하다가 고향 마을(지례)이 임하댐 건설로 수몰되자 선대의 유산인 고건축물 10동을 마을 뒷산으로 옮겨 짓고 문예창작마을인 '지례예술촌'을 운영하고 있는 사람이다.
김 시인 역시 전형적인 안동 사람이다. 근엄한 사족(士族)의 후예인 그가 이런 유머 보따리를 지니고 있었다니 그 또한 안동스럽다. 하긴 이젠 유머와 스토리가 관광자원이 된 세상이 아닌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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