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불법 투견도박 횡행] <상> 점조직 통해 경기 장소·시간 2~3시간전 통보

전국 돌며 거의 매일 경기, 지름 3m 쇠창살속 '사투'

불법 투견 도박이 산속이나 외진 곳에서 버젓이 열리지만 경찰 단속의 손길은 미치지 못하고 있다. 지난달 말 경산 진량읍의 한 야산에서 벌어진 불법 투견 도박 현장.
불법 투견 도박이 산속이나 외진 곳에서 버젓이 열리지만 경찰 단속의 손길은 미치지 못하고 있다. 지난달 말 경산 진량읍의 한 야산에서 벌어진 불법 투견 도박 현장.

불법 투견 도박이 횡행하고 있다. 전국적으로 거의 매일 벌어진다. 야간을 틈타 발길이 쉽게 닫지 않는 산속이나 외진 공터에서 이뤄진다. 판돈도 수천만원에서 수억원에 이른다. 투견 업자들은 전국적으로 2만여 명이 이 도박에 견주나 구경꾼으로 참가하는 것으로 추정한다. 하지만 좀처럼 단속의 손길이 미치지 않고 있다. 점조직으로 연결된 탓에 적발도 쉽지 않다.

◆"죽을 때까지 싸워"

투견장을 찾는 것은 쉽지 않았다. 수소문 끝에 투견 경기가 열리는 장소와 시간을 알아낸 뒤 차를 몰아 현장을 찾았다. 경산시 진량읍 다문리로 통하는 대구대로 71길을 운전하다가 산속으로 방향을 틀었다. 500m여m를 지나자 차량 한 대만이 간신히 지날 수 있는 비포장도로가 나타났다. 미로 속으로 빨려들 듯 차량을 몰고 밤길을 달렸다.

5분여를 달리자 오토바이를 탄 채 야광봉을 든 한 남성이 서 있었다. 이 남성이 지시하는 방향으로 가자 공터에 차량 30여 대가 서 있었다. 인파가 몰린 곳으로 다가가자 모인 사람들은 쇠창살로 만든 경기장 안에 온통 정신이 팔려 있었다. 말로만 듣던 불법 투견 도박 현장이었다.

오후 10시를 넘어선 야산 중턱이지만 열기는 시간과 장소를 잊게 했다. 주최 측 관계자로 보이는 한 남성이 기자에게 강한 경계의 눈빛을 보였다. '정체를 묻는 듯한' 눈빛이었다. 하지만 10여 분이 지나고 투견 싸움이 격렬해지면서 모든 구경꾼의 시선은 경기장 안으로 쏠렸다.

쇠창살로 에워싼 지름 3m 규모의 경기장 안은 도사견 두 마리의 거친 숨소리로 후끈 달아올랐다. 목 주위로 뻘건 피가 흥건했다. 피비린내와 개 특유의 냄새가 구경꾼들을 몰입하게 했다. '둥지'라 불리는 투견은 상대 견의 목줄기를 줄기차게 물었고, 물린 개는 바닥에 드러누워 버티고 있었다.

거친 숨소리가 보는 이를 안타깝게 했고, 눈동자도 이미 초점을 잃었다. 하지만 드러누운 개의 주인은 "싸워, 싸워!"라며 목의 핏대를 세웠다. 구경꾼들이 "그만 포기해라. 개 죽이겠다"고 한 마디씩 거들었지만 주인은 들은 척도 안 했다. 싸움을 시작한 지 50여 분이 지나면서 지쳐 쓰러진 투견이 '끙' 하는 신음을 내자 심판은 지체 없이 휘슬을 불렀다. 경기 규칙상 신음을 내면 패한 것으로 간주한다.

'둥지'의 주인은 의기양양하게 투견을 끌어안고 나갔지만 패한 투견의 주인은 굳은 표정을 좀처럼 펴지 못했다. 개는 오른쪽 앞 다리의 뼈가 부러져 제대로 걷지도 못했고, 목 주변은 온통 피로 물들어 있었다. 두 눈은 초점을 잃은 지 오래. 거의 죽음 직전까지 내몰렸다. 하지만 주인은 걷지도 못하는 개의 목줄을 잡아 질질 끌고는 서둘러 경기장을 빠져나갔다. 투견을 자주 접한 구경꾼들은 이런 장면이 대수롭지 않은 듯 별다른 눈길도 주지 않았다.

경기는 끝이 났지만 계산은 지금부터다. 공식적인 판돈은 680만원. 하지만 비공식적인 판돈인 소위 '뒷방'은 1천만원에 이른다. 이긴 투견의 주인과 베팅한 구경꾼들은 주최 측에 20%의 프로모터비를 준 뒤 남은 돈을 나눠 가졌다. 최소 베팅 금액은 10만원.

경기에 앞서 양측은 똑같은 금액을 판돈으로 걸었고, 주최 측은 경기 도중에도 부지런히 판돈을 키우는 이른바 '다이노케'를 계속했다. 초보 구경꾼인 20대 남성은 "투견보다 주인이 얼마나 성실한 사람이냐를 보고 10만원 베팅을 했는데 정확히 맞혔다"며 즐거워했다.

20~60대 남녀노소 구경꾼 100여 명이 경기장을 둘러쌌다. 여성 10여 명도 눈에 띄었다. 경북 상주에서 왔다는 한 남성은 "지금까지 3, 4차례 아는 형을 따라 투견 경기장을 찾았다. 여건이 되면 투견을 키우고 싶다. 불법인 줄 알지만 경기가 박진감이 넘치고 정말 재밌다"고 했다. 50대의 한 남성은 "오늘은 여성들이 많지 않다. 20대 여성들은 남자 친구를 따라오는 경우가 대부분"이라고 말했다.

경기장 주변에서는 어묵과 커피, 컵라면 등도 팔았다. 어묵은 1만원, 커피 1천원, 컵라면 5천원으로 시장가격이 통하지 않는 '그들만의 세계'였다. 이날 경기는 새벽 4시까지 모두 5경기가 열렸다.

투견들은 경기도, 경남, 울산 등 전국에서 몰려들었다. 투견 자체가 불법인 탓에 경기는 은밀하게 점조직으로 연결돼 이뤄진다. 이날은 이곳과 경남 진주에서 열렸다고 한 참가자는 밝혔다.

◆판돈만 수억원

투견 경기는 도박과 마찬가지다. 판돈이 수백만원에서 수억원에 이르고, 경기를 주최하고 커미션을 챙기는 이른바 '프로모터'가 별도로 존재한다. 투견을 기르고 경기에 참여하는 인원은 전국적으로 2만여 명에 이를 것으로 투견계는 추정하고 있다.

하지만 현장 단속은 결코 쉽지 않다. 일반인의 눈에 띄지 않는 산속이나 외진 곳에서 밤과 새벽 시간을 이용해 열리기 때문. 대구는 팔공산 인근에서, 경북은 경산, 하양, 김천 등지에서 많이 열린다. 이 밖에도 김포, 진주, 울산, 용인 등을 포함한 전국 각지에서 열린다고 관계자들이 귀띔했다.

경기는 오픈게임과 계약게임으로 나뉜다. 오픈게임은 경기장에 투견 10여 마리가 오면 즉석에서 덩치 등을 보고 대결할 투견을 정하고 싸움을 시작한다.

판돈도 즉석에서 결정된다. 수백만원에서 수천만원에 이른다. 내로라하는 투견끼리 벌이는 계약게임은 다르다. 투견 주인들과 프로모터 간 사전 계약을 통해 이뤄지는 계약게임은 판돈이 2억원(각각 1억원씩)이 넘는다. 공식적인 판돈과 별개로 '뒷방'으로 은밀한 판돈까지 존재한다.

주최자는 공식적인 판돈에는 수수료로 20%를 가져가고, 뒷방에는 10%의 수수료만 챙긴다. 이 때문에 공식적인 판돈보다 뒷방의 판돈 규모가 훨씬 크다.

기본 규칙은 싸움 도중 기세가 오른 투견이 한 발짝 앞으로 나가고, 꼬리를 내린 투견이 세 발짝 물러나면 승패가 결정된다. 이를 '하도리'라고 한다. 쓰러진 투견이 3분 동안 일어나지 못하면 '다운패'로 인정된다. 싸우다 지친 투견이 '끙' 하는 신음을 내면 패한 것으로 간주한다. 싸움 도중 다른 투견의 등에 올라타 성행위 포즈를 취해도 패배로 판정된다.

투견으로는 싸움견으로 유명한 도사와 핏불테리어가 대부분. 싸움 형태는 투견마다 다르다. 상대 투견의 귀를 물고 늘어지는 투견이 있고, 다리와 목줄기, 발바닥 등을 공격하는 투견들도 있다. 한 관계자는 "귀를 물고 늘어지는 개를 최상급으로 친다"고 말했다.

게임 장소와 시간은 철저한 비밀. 아는 이들끼리만 은밀하게 정보를 주고받는다. 프로모터들이 경기 개최 2, 3시간 전에야 특정 지역에 모이게 한 뒤 별도의 대회 장소로 이동하는 등 철저하게 물밑에서 진행된다. 한 관계자는 "경찰 단속을 피하기 위해 대회 장소를 수시로 옮기고 구경꾼들도 지인을 통해 연락을 한다"며 "이 때문에 투견으로 수억원을 탕진하는 등 피해자가 속출하고 있지만 경찰 단속이 미치지 못한다"고 했다.

문제는 불법에다 승부조작까지 벌어진다는 것이다. 상대 투견 주인의 최측근을 매수해 싸움 전날 이뇨제를 먹여 밤새도록 오줌을 싸게 해 힘을 빼거나, 주인이 자신의 투견 귀에 소위 '칙칙이'를 뿌리기도 한다는 것. 코가 발달한 개의 특성상 상대 투견 귀에서 냄새가 나면 공격하기를 주저하는 습성을 이용한 것이다. 세 발짝 뒤로 물러나지 않았는데도 '하도리'로 인정하거나, 넘어진 채 3분이 지나지 않았는데도 '패배'로 판정하는 등 승부조작도 암암리에 진행된다고 했다.

한 관계자는 "조직폭력배까지 연계된 대회 주최 측이 승부조작을 통해 승패를 좌지우지하는 등 몸통 조직이 있다"며 "이들을 단속하지 않으면 투견 도박을 절대 근절할 수 없다"고 했다.

한 투견 주인은 "대회를 앞두고 하루에 1시간 반씩 훈련을 시키고, 말고기만 먹인다. 또 아침저녁 건강식으로 태반 물약을 먹이고, 조금이라도 몸에 이상이 있으면 수의 종합병원으로 달려가는 등 온갖 정성을 기울인다"고 말했다.

기획취재팀=이창환기자 lc156@msnet.co.kr'황수영기자 swimming@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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