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이동순의 가요이야기] 김정구의 노래와 두만강(상)

식민지시대 삶과 애환, 그리고 분단의 슬픔까지

두만강 푸른 물에 노젓는 뱃사공/ 흘러간 그 옛날에 내 님을 싣고/ 떠나간 그 배는 어디로 갔소/ 그리운 내 님이여/ 그리운 내 님이여/ 언제나 오려나

이 노래는 김정구(金貞九)가 불렀던 '눈물 젖은 두만강'(김용호 작사'이시우 작곡, 오케 12094)의 한 대목입니다. 이 노래를 부르면 우리가 왜 지금까지도 애타게 두만강을 목 놓아 불러야 하는가를 저절로 이해하게 됩니다.

또한 이 노래를 목청 높여 부르노라면 일제의 등쌀에 못 이겨 기어이 눈물의 강을 넘어가야만 했던 식민지 시대 주민들의 삶과 애환이 눈앞에 환히 보이는 듯합니다. 남북으로 두 동강난 국토의 애달픔과 그 속사정도 귀에 쟁쟁 들리는 듯합니다. 그로부터 반세기가 넘는 세월이 흘러가도록 두만강은 여전히 피눈물의 공간으로 우리에게 다가오고 있음을 소스라치게 깨닫게 됩니다. 노래 한 곡이 이토록 우리의 가슴을 슬픔과 탄식으로 적시고, 매운 정신이 번쩍 들도록 만드는 경우는 그리 많지 않습니다.

두만강은 백두산 천지의 남동쪽에서 발원하여 한반도와 중국, 러시아의 국경을 두루 거쳐서 흘러갑니다. 1930년대 이 두만강 연안에는 일본군 국경수비대가 삼엄한 눈빛으로 총검을 들고 나그네들을 모조리 검색했습니다. 이런 분위기 속에서도 독립단 소속 열혈청년들과 민족 운동가들은 두만강을 넘어 다니며 피 뜨거운 활동을 펼치곤 했습니다. 당시 악극단 단원들도 만주 지역의 동포들을 위해 순회공연을 떠났는데 반드시 이 두만강을 넘어가야만 했었지요. 작곡가 이시우(李時雨)가 소속된 극단 '예원좌'도 이런 악극단 중의 하나였습니다.

만주의 투먼에서 공연을 마치고 강가 어느 여관에 머물고 있던 밤, 여인의 처절한 통곡이 들렸습니다. 이윽고 날이 밝은 뒤 이시우는 그 통곡의 사연을 물었고, 여관집 주인으로부터 독립군으로 떠난 여인의 남편이 불과 1년 전 일본군 수비대의 총을 맞고 세상을 떠난 내력을 전해 들었습니다. 바로 그날 밤, 이시우는 강이 우는 소리를 들으면서 이 사연을 담은 노래 한 곡을 만들었습니다. 그것이 바로 '눈물 젖은 두만강'이지요. 며칠 후 악극단 공연에서 한 막간가수에게 이 노래를 부르게 했는데, 관중들의 반응은 대단했습니다.

순회공연을 마친 뒤 이시우는 뉴코리아레코드사 소속의 가수 김정구를 찾아가 이 노래의 취입을 제의했고 김정구는 이 제의를 흔쾌히 받아들였습니다. 이시우가 쓴 가사는 1절뿐이었는데, 김용호가 2절과 3절 가사를 새로 붙였습니다. 막상 음반으로 찍어내기는 했지만 판매량은 시원치 않았습니다. 게다가 설상가상으로 총독부 경무국 당국에서는 이 음반에 대하여 발매금지 조치를 내렸습니다.

그로부터 수십 년 세월이 흘러간 1970년대, 이미 원로가수가 된 김정구가 무대에서 부를 노래는 별로 없었습니다. 왜냐하면 그가 취입한 대부분의 노래가 조명암, 박영호 등 월북작사가의 작품이었기 때문입니다. 그런 가운데서 '눈물 젖은 두만강'만큼은 온전하게 어떤 금지에도 걸리지 않았고, 분단과 더불어 북에서 월남해 내려온 실향민들의 향수를 자극하는 유일한 노래로 뒤늦게 유행을 타게 되었습니다. 여기에다 한 방송국에서 제작한 라디오 반공드라마의 시그널 음악으로 선택되면서 이 노래는 더더욱 유명세를 타게 되었던 것이지요.

영남대 국문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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