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산사랑 산사람] 영천 기룡산 일대 단풍 즐기기

전국 최고 가을 숲 절경 지나 호젓한 능선길

# 눈 가는 곳마다 울긋불긋, 신선 세계 온 듯

이보다 더 좋은 곳이 있을까. 불타오르는 단풍 산을 즐기고 유서 깊은 사찰과 유적지를 탐방할 수 있다. '아름다운 숲' 대상에 빛나는 환상적인 가을 숲을 즐기고, 추색 완연한 산의 모습이 그대로 투영되는 저수지와 호수를 덤으로 즐긴다. 신선들이 산다는 선계가 결코 꿈속에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우리 곁에 있었음을 실감한다. 지척에 있다는 것 또한 행운이다.

대구에서 1시간 이내 거리에 있다. 영천 기룡산(騎龍山). 산자락에는 천년고찰 묘각사와 영천호, 자양초등학교가 자리하고 있다. 임고서원. 임고초등학교 또한 지척에 있어 오가는 길에 꿈같은 가을을 하루 일정으로 만끽할 수 있다.

산행을 시작하기 전 먼저 임고서원에 들른다. 경북 기념물 제62호로 지정된 임고서원은 1553년에 창건되었으며, 포은 정몽주의 위패를 모신 사액서원이다. 임진왜란 때 소실됐으나 1603년(선조 36년) 현재의 위치에 옮겨 건립했다. 1868년(고종 5년) 흥선대원군의 서원철폐령으로 없어졌다가 1965년에 복원되었다.

최근 약 7년에 걸친 성역화 작업을 마치고 다시 태어났다. 영천시가 2006년부터 일대 4만7천884㎡ 부지에 생활체험관과 유물전시관, 선죽교, 조옹대, 용연(연못) 등을 만들었다. 앞마당에 시도기념물 제63호인 은행나무가 있다. 수령은 500년 정도로 추정되며, 높이는 20m, 둘레는 5.95m에 이른다.

서원을 둘러보고 용연을 지나 임고초교로 발걸음을 옮긴다. 과수원 길을 통과하면 임고초교까지는 10분 정도 소요된다. 임고초교는 개교한 지 약 90년이나 되는 학교로 '2003년 전국 아름다운 숲 대상'에 선정될 만큼 빼어난 숲과 운치 있는 전경을 자랑한다. 가을이면 교정은 단풍과 플라타너스 잎으로 치장된다.

임고서원과 임고초교를 둘러보고 차량으로 이동해 기룡산 등산에 나섰다. 기룡산은 해발 961m로, 영천시 자양면과 화북면의 경계에 있다. 아직 일반인에게는 그다지 알려지지 않은 산으로 때 묻지 않은 능선을 따라 호젓하게 산행을 즐길 수 있다. 산행 시작점은 크게 두 군데로 용화리와 자양면사무소다. 부담 없는 산행과 차량회수가 용이하고 운곡지에 드리운 낙대봉의 잔영을 즐기려면 용화리에서 시작한다. 고깔산(737m)과 연계한 종주산행도 가능하다. 임고초교에서 기룡산 등산 기점까지는 차량으로 15분 이내 거리다.

용화리 경로당 왼쪽 묘각곡 옆으로 난 임도를 탄다. 마을을 가로질러 금강교와 묘각교를 잇달아 건너면 왼쪽 운곡지 방면으로 들어가는 길이 보인다. 계곡을 건너 10m 정도 가다가 오른쪽 깨밭을 가로질러 무덤 왼쪽으로 산자락에 붙으면 산으로 짓쳐든다. 그러나 운곡지의 반영을 그냥 지나칠 수는 없다. 저수지 제방까지 나아가 운곡지에 담기는 기암과 산자락을 카메라에 담는다. 바람이 불지 않는 날은 그야말로 환상적인 잔영을 볼 수가 있다.

다시 되돌아 나와 경주 이씨 무덤을 지나 능선으로 붙는다. 조금 있으면 용화리 전체를 내려다볼 수 있는 전망바위가 나온다. 전망바위 위에서 '배산임수'형 지세를 살피면 용화리는 기룡산을 등지고 자리 잡았고 운곡지와 묘각곡을 품고 있다. 골짜기 끝자락에는 작은 산이 버티고 서서 산의 기운이 빠져나가지 못하게 가두는 형상이다.

작은 성벽처럼 솟은 거대한 암릉을 길게 우회해 통과하면 곳곳이 바위 전망대이고 능선 마루다. 왼쪽 바위 사이를 통과해 5분이면 낙대봉(522.8m)에 도착한다. 둔덕 같은 낙대봉은 삼각점과 표시 리본이 없으면 그냥 지나칠 정도로 볼품이 없지만 기룡산 정상과 그 아래 묘각사, 오른쪽으로 이어지는 고깔산 능선이 조망된다.

주능선 삼거리까지 오른 후, 오른쪽으로 방향을 잡고 851m봉을 지나면 군데군데 바위전망대와 암릉 길이다. 조망은 그야말로 일망무제. 북쪽으로 보현산과 천문대, 청송 면봉산(1,113m)과 베틀봉이 보인다. 동쪽으로는 낙동정맥의 산줄기를 따라 운주산 침곡산이, 서쪽에는 방가산, 봉림산, 화산이 산줄기를 이으며 팔공산을 일으킨다. 남쪽으로는 영천호가 조망된다.

기룡산 정상에는 작은 정상석이 있다. 그러나 산불무인감시카메라가 설치되어 조금은 흉물스럽다. 정상에서 1분 정도 직진하면 갈림길 이정표가 나온다. 더 나아가면 고깔산으로 가는 등산로로 3.4㎞를 더 가야 하고, 오른쪽 묘각사 쪽으로 하산 길을 잡는다. 내리막길을 한참이나 내려서야 1㎞ 거리에 묘각사가 있다. 40분 정도 소요된다.

묘각사는 대한불교조계종 제10교구 은해사의 말사로 신라 선덕여왕 때 의상대사가 창건했다. 설화에 따르면 창건 당시에 동해 용왕이 의상에게 법을 듣기 위하여 말처럼 달려왔다고 해서 절이 들어선 산 이름을 기룡산, 용왕이 의상에게 법문을 청하자 의상이 법성게(法性偈)를 설하였고 문득 용왕이 깨닫고 승천했다고 한다. 용왕이 하늘에서 감로(甘露)를 뿌렸는데, 이 비로 당시 극심했던 가뭄이 해소되고 민심이 수습되자, 이에 의상은 묘한 깨달음을 얻었다고 하여 절 이름을 묘각사라 칭하였다.

묘각사에서 묘각곡을 따라 용화리까지는 임도를 따라 40분 정도 걸어야 한다. 그러나 계곡주변의 단풍이 워낙 아름다워 지루함을 느끼지 않는다. 경로당을 출발해 낙대봉. 기룡산. 묘각사를 경유, 용화리로 하산하는데 약 9.1㎞의 거리에 4시간 정도 소요된다. 좀 더 긴 산행을 원한다면 고깔산을 연계해 용화리나 자양면사무소가 있는 신선암 쪽으로 하산해도 된다. 약 11.6㎞의 거리, 5시간 이상 소요된다. 고깔산에서 신선암으로 하산할 수도 있고 용화리로 원점회귀도 가능하다.

연중 가장 좋을 때가 10월 말과 11월 초다.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단풍 숲과 노랗게 물든 은행나무를 볼 수 있고 추색에 물든 가을 산을 제대로 즐길 수 있기 때문이다. 나오는 길에 자양초교 입구의 단풍을 권한다. 오고가는 길 주변에 삼매리의 매산종택이 있다. 복사꽃이 필 때도 좋지만 꼭 한 번은 들를 만한 곳이다.

글·사진 지홍석(수필가·산정산악회장) san3277@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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