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열심히만 일하면 잘살 수 있을까?…희망의 배신

스펙…스펙…회사의 요구

바버라 에런라이크 지음/전미영 옮김/도서출판 부키 펴냄

요즘 흔히 '워킹 푸어'(Working Poor)라는 말을 쓰는데, 샐러리맨의 애환이 담긴 영어 단어다. 일은 하는데 통장 잔고는 계속 줄어만 가는 현실을 나타낸 말이다. 이런 현실적인 공감대를 바탕으로 솔깃한 제목의 서적이 눈길을 끈다. 바로 바버라 에런라이크의 배신 시리즈 완결편이다.

저자는 '긍정의 배신', '노동의 배신'에 이어 '희망의 배신'을 펴낸 것이다. 이 책은 기업이 요구하는 스펙에 매달리며 존재 가치를 증명하기 위해 안간힘을 쓰고 있는 화이트컬러 구직자와 종사자들의 막연한 희망인 '열심히 일하면 잘 살 수 있다'는 말을 철저하게 까부신다.

극단적인 경쟁과 시장주의가 기승을 부리고 있는 이 시대에 현대인들은 무엇에 목을 매고 애면글면했으며 종국에는 어떻게 배신을 당하는지 잘 모른 체 살아가고 있다. 냉엄한 현실이다. 일하는 사람은 따로 있고, 돈 버는 사람은 따로 있는 셈이다. 그렇다고 이런 시장 만능주의의 구조적인 부조리를 타파할 묘안도 없다. 그저 희망을 잃은 채 일하고 있는 것이다. 이 현실이 바로 '희망의 배신'이다.

바버라 에런라이크는 희망으로 시작된 새 밀레니엄의 첫 10년간 대다수 사람들이 내몰려야 했던 궁핍한 삶의 파노라마를 그려내고, 그 이면을 파헤치고 있다. 1990년대 이후 기업의 구조조정이 일상이 되면서 어제까지 정장을 입고 사무실에 출근하던 사람들이 하루아침에 쫓겨나 스타벅스나 월마트 카운터에서 일하며 1시간에 고작 7, 8달러를 받는 처지로 전락하고 있는 것이다. 이것이 '희망의 배신'이자 '노동의 배신'인 셈이다.

이 책은 또 겉만 화려한 화이트컬러의 슬픈 노동 현실을 적나라하게 보여준다. 능력과 경력보다는 쾌활하고 복종하는 태도를 중시하는 기업 문화, 실직자를 볼모로 삼는 코칭 사업, 미끼 상술이 판치는 프랜차이즈'영업직 등 비표준적 일자리, 밀려나지 않기 위해 안간힘을 쓰는 샐러리맨이 바로 화이트컬러의 속살이다. 몸 바쳐 충성해도 버림받고 몰락해 가는 화이트컬러의 적나라한 모습과 그 속에 자라잡은 자본의 속성이 이 책의 핵심이다.

이 배신 시리즈는 원제를 알고 보면 더 흥미롭다. 긍정의 배신은 'Bright-Sided'(밝은 면만 보는), 노동의 배신은 'Nickel and Dimed'(야금야금 빼앗기는), 그리고 이 책의 제목인 희망의 배신은 'Bait and Switch'(미끼 상술).

실제 저자는 이 책들을 시리즈로 집필한 것이 아니라 2000년대 신자유주의 사회의 현실을 다양한 각도로 비추며 현장 체험형 르포르타주 사회 비판서로 엮어낸 것이다. 이 비판서들이 꼬리에 꼬리를 물고 '배신'이라는 키워드로 이어진다는 점에서 한국어판 시리즈로 방향을 잡았다.

투명인간으로 전락하거나 기업의 소모품이 되어 시름시름 죽어가는 중산층 화이트컬러의 쓸쓸한 초상을 이 책을 통해 엿볼 수 있다. 살아있는 시체나 다름없게 된 화이트컬러의 희망은 어디로 날아갔나? 304쪽, 1만4천800원.

권성훈기자 cdrom@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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