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는 한창 젊고 기업의 중요한 포지션에서 일하고 있는 중년 여자다. 내가 늘 그의 능력과 패기를 부러워하던 후배다. 며칠 전 만난 그는 갑자기 의욕이 없고 만사가 귀찮다고 했다. 더욱 놀란 것은 자신은 너무 보잘것없고 무가치한 사람이라고 넋두리를 풀어놓는다.
그녀는 산의 정상이라는 목표를 설정하고 최선을 다해 살아왔다. 사회에서도 성취하고자 하는 언덕 위에 올라서 보았고, 가정에서도 경제적으로 이루고 싶은 정점에 거의 다가갔다. 아이들의 교육과 성장에 있어서도 만족스럽지는 않지만 그려보고 싶은 그림대로 그려졌을지도 모른다. 자식들이 떠난 뒤 인생의 허무를 느끼는 '빈 둥지 증후군'과는 다르다. 불안증, 정체성 혼돈을 동반한 심리적 우울증이 그녀를 괴롭히고 있는 것이다. 강한 의무감과 업무에 대한 철저함, 주위로부터의 착실하고 성실하다는 평판이 오히려 벗어버리고 싶은 짐이 되어버렸다. 모든 산봉우리마다 깊은 휴식이 있다는 괴테의 말이 있다.
슬픔은 사람의 정상적인 감정으로, 사랑하는 사람과의 이별이라든가, 하고자 하는 일이 좌절될 때 짧은 기간 느끼는 서러움이며, 그 기간이 지나면 점차 회복된다. 그러나 우울증은 주변 상황과 관계없이 또는 상황에 비해 지나치게 우울한 기분을 오래 느껴, 생활에 지장을 초래할 수 있는 병적인 상태를 말한다. 제대로 된 목표와 계획이, 도달이라는 큰 항아리에 넣어지면 이제 모양을 바꾸어 하나하나씩 항아리에서 꺼내어 사용하는 순서만 남게 된다.
무엇이 그의 목을 조르는 걸까.
세상은 늘 어렵다. 과거에도 쉬운 적은 없었다.
요즘 여자들에게는 무서워할 대상이 없다. 그녀를 긴장하게 만들고 대적해서 싸워야 할 대상들이 모두 힘없이 쓰러져 있다.
비가 오나 눈이 오나 일용할 양식과 부의 축적(畜積)만을 생각했던 젊은 시절에는 우울하다고 할 만큼 한가롭지 않았다. 어디에 그물을 던져야 많이 잡히고, 새로운 고기잡이 법이 없는가 하는 것만이 목표이고 관심의 대상이었다.
옛날에는 무서운 시댁 어른들과 끊임없이 군림하려는 시어머니가 있었다. 제사며 명절이며 집안 행사 때마다 간섭하며 태클을 걸어오던 시누이도 없고, 잘 사는 너희가 좀 도와주어야겠다고 감히 괴롭힐 수 있는 일가친척도 없다. 남편이 하늘이고 아내는 땅이라고 말하던 시대는 이미 지났다. 건(乾)과 곤(坤)이 바뀌었다. 하늘은 땅으로 내려오고 땅은 하늘 위로 점점 치솟는다.
모든 것을 다 이루고 고기잡이는 끝났다.
갑자기 항해하던 배는 목표가 없어졌다. 그녀는 평생을 누비던 바다 한가운데 할 일 없이 부유하고 있다. 배는 방향을 잃었다.
고윤자<수필가·약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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