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성병휘의 교열 단상] 이합집산

국문학자로, 시인으로 활동한 조지훈은 정치적 혼란기에 권력에 야합하면서 신의를 저버린 정치 지도자들에 대해 호된 비판을 서슴지 않았다. 그는 '지조론'에서 "변절은 단순히 '절개를 바꾼다'는 의미가 아니라, 개인의 이익을 위하여 옳은 신념을 버리는 것이다. 지조가 없는 지도자는 믿을 수 없고, 믿을 수 없는 지도자는 따를 수 없다."고 했다. 지조를 지키기란 매우 어려운 일이다. 부정과 불의 앞에서 타협하지 않고 자신의 신념을 지키려면 곤욕을 치를 각오가 있어야 하기 때문이다.

본격적으로 선거철에 접어들었다. 올 12월 대통령 선거를 앞두고 신문 방송에서는 연일 어느 후보의 지지율이 올랐다느니 내렸다느니 발표하고 있고, 전'현직 국회의원을 비롯한 정치인들의 이합집산이 줄을 잇고 있다. 출마 후보자 입장에서는 꼭 필요한 사람이기에 영입을 마다하지 않겠지만 뺏기는 쪽에서는 어느 후보의 말처럼 '아프다'로 함축될 것이다. 스스로 옮기든, 영입됐든 새로운 환경으로의 이동은 쉽게 판단하기 어려운 결정이다.

"그녀는 항상 긴장하여 정신을 흩트리지 않는다." "책상에는 잡지 여러 권이 되는대로 흐트러져 있고 잉크병밖에는 눈에 띄는 것이 없다."

앞서의 예문에 나오는 '흩트리다'와 '흐트러지다'에 대해 알아보자. '흐트러지다'는 여러 가닥으로 흩어져 이리저리 얽히다, 정신이 산만하여 집중하지 못하다라는 뜻으로 "뭔가 마음이 흐트러졌기 때문에 발등이 찍히는 거겠지."로 쓰인다. 이와 비슷한 말로는 '흐트러뜨리다' '흐트러트리다'가 있다. '흩트리다'는 흩어지게 하다, 태도 마음 옷차림 따위를 바르게 하지 못하다라는 의미로 "군사들을 각 부대로 흩트리다."로 활용하며 '흩뜨리다'로도 쓸 수 있지만 '흐트리다'로 표기하면 안 된다. 또 '흩뜨리다' '흩트리다'에 '-어지다'가 결합한 파생어는 '흩뜨러지다' '흩트러지다'이며 '흐트러지다' '흐뜨러지다'는 잘못된 것이다.

'변신'과 '변절'도 구별해 보자.

'변신'은 몸의 모양이나 태도 따위를 바꿈을 뜻하는데 몸집을 불리기 위하여, 자신이나 조직의 발전을 위하여, 긍정적인 변화를 위하여 지금까지의 모습을 바꾸는 것을 말한다. '변절'은 절개나 지조를 지키지 않고 바꿈을 의미하는데 자신의 보신이나 이익을 위하여 지켜온 뜻을 갑자기 굽히거나 바꾸는 것을 뜻한다. "그의 느닷없는 변신은 우선 학교 선생들을 까무러치게 할 만큼 큰 충격이었다." "충신으로 알려진 그의 변절은 뜻밖이었다."로 쓰인다. 한데 자신은 '변신'을 했다고 하지만 타인에게는 '변절'로도 보이니 애매한 부분도 있다. 대선을 앞두고 이동한 정치인뿐만 아니라 후보자도 '변절'이 아닌 '변신'으로 국민을 행복하게 하는 정치에 전념해 주었으면 좋겠다.

성병휘<교정부장 sbh126@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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