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차 대전 후 독일을 점령한 연합국의 우선 과제는 '탈나치화'였다. 그러나 이는 전후 재건 행정 문제 때문에 처음부터 난관에 봉착했다. 당시 미군정청장 루시어스 클레이 장군의 말은 그런 사정을 잘 보여준다. "우리 행정의 주된 난제는 상당히 유능한 독일인 중 나치 정권에 참여하지 않았거나 연루되지 않은 자를 찾는 일이었다… 자격을 갖춘 사람들은 공직자인 경우가 많았는데 그중 상당수는 나치당 활동에서 단순 가담자 수준을 뛰어넘었다."
그의 말은 과장이 아니었다. 당시 독일에는 800만 명의 나치가 있었다. 이 중 상당수가 공직자이거나 전문직이었다. 본에서는 112명의 의사 중 102명이 나치 경력자였다. 폭격으로 폐허가 된 쾰른 시의 경우 시 상수도국의 21명 전문가 중 18명이 나치였다. 문제는 이들이 전후 재건에 꼭 필요했다는 점이다. 서독 초대 총리 아데나워는 나치에 의해 쾰른 시장에서 쫓겨났고 감옥에 갇히는 등 나치의 직접적 피해자였으면서도 이런 현실과의 타협을 앞장서 이끌었다. 그는 1949년 서독 의회에서 행한 첫 번째 연설에서 이렇게 말했다. "정부는 많은 사람이 중하지 않은 죄과에 대해 사적으로 속죄했다고 믿는다. 따라서 정부는 과거를 잊는 것이 받아들여질 듯한 곳에서는 그렇게 하기로 결정했다."
그렇게 해서 수많은 나치 전력자들이 사회에 복귀했다. 골수 나치당원이었던 쿠르트 게오르크 키징거는 1966년 총리까지 됐다. 전후 독일의 이 같은 의식적 과거 잊기는 미래를 위한 타협이었다. 만약 독일이 과거사 청산을 철저히 밀어붙였다면 어떻게 됐을까, 아마도 행정의 붕괴로 혼란과 가난의 구렁텅이로 빠졌을 것이고 연합국에 대한 증오와 국민 분열로 나치로 회귀했을지도 모른다.
대선판에서 '과거 파먹기'가 그칠 줄 모른다. 문재인 민주통합당 후보는 26일 안중근 의사와 김구 선생의 묘역을 참배하고 "역사는 미래를 위해 과거를 되새기는 것"이라고 했다. 이 '옳은 말씀'의 정치적 노림수가 무엇인지는 삼척동자도 알 수 있다. 안 의사와 김구 선생은 여기에 무엇이라고 하실까. "과거 얘기는 그만하면 됐고 대한민국의 미래, 특히 국민이 앞으로 무엇으로 먹고살 것인지에 대한 방도부터 고민하라"고 하시지 않을까. 문 후보가 두 선열의 묘역을 찾은 날 3분기 성장률이 1.6%로 추락했다는 한은 발표가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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